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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 양장 ] 소설Q이동
성해나 | 창비 | 2023년 03월 1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2 리뷰 29건 | 판매지수 5,739
베스트
한국소설 65위 | 소설/시/희곡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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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1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72쪽 | 256g | 128*194*20mm
ISBN13 9788936439002
ISBN10 893643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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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불완전하지만 찬란했던 시절을 보내며] 성해나 소설가의 따스한 시선으로 그린 ‘가족 아닌‘ 가족의 만남과 이별. 부모의 재혼으로 인해 형제로 4년간 지냈던 기하와 재하가 그 시절을 다시 뒤돌아 보게 된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으로 살아온 그들은 과연, 놓쳤던 마음을 재발견할 수 있을까? -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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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삶의 어느 순간, 누군가를 보냈던 이들에게
도서1팀 김유리 (asalighter@yes24.com)
훌륭한 소설의 덕목 중 하나가 있다. 어떤 소설은 가끔 한순간을 압축해서 파노라마처럼 선보인다. 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은 그런 면에 있어서 훌륭한 소설이다. 기억의 파노라마를 잔잔한 수채화처럼 독자의 추억에 잘 스며들게 펼쳐냈다. 소설 속 이야기는 기하와 재하라는 두 사람이 한 시절을 저마다의 기억으로 풀어가며 시작된다.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홀아버지 밑에서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싶을 정도로 귀한 아들이었던 기하. 그러던 어느 날, 19살 그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 새어머니(라고 쓰고 ‘저기’라고 부르는)와 여덟 살 더 어린 재하다. 고등학생인 기하에게 갑자기 생긴 가족이 반가울 리가 없다. 사춘기 시절 모두가 그렇듯 기하는 새어머니에게도, 동생 재하에게도 다가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새어머니와 재하는 기하에게 무던히 정을 주고자 한다. 그마저도 기하는 ‘애쓰는’ 것 같아 불편해하지만. 그러나 기하도 중국 냉면의 땅콩 소스가 풀어지는 듯한 감정을 조금씩 가지게 된다. 그러다 뜻밖의 사건으로 기하가 새어머니와 재하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원인은 아버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가 재하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며, 감정의 끈이 끊어지고 만다. 정작 자신은 새어머니의 ‘애쓰는 모습’을 가장 힘들어했으면서 말이다.

한편 새로운 인연이 힘들었던 건 초등학생 재하도 마찬가지였다. 비정엔 익숙하지만, 다정엔 낯설었던 어린 재하는 ‘가감 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형 기하를 부러워했다. 형이 좋아하는 중국 냉면을 맛도 모르지만 따라 먹고, 새아버지에게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4년을 살았다. 그 사이 형에게 상처받은 엄마의 등을 받아주기도 하면서.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기하와 재하에겐 과연 서로가 어떻게 기억되고 있었을까? 감정의 온도는 다를 수 있지만, “꿈결같이 묘연한 한여름의 오후”처럼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 중 하나로 그 시절을 꼽고 있을까? 그들의 이후는 소설의 끝까지 달려야 알 수 있다. 피를 나눈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이들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진정한 가족이었는지는 충분한 여과의 시간이 필요로 할 테니.

누구나 한 번씩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기분’을 주는 인연을 만난다. 야박하게 ‘시절인연’이라고 단정 짓기엔, 어쩌면 삶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들이 이 『두고 온 여름』에 녹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는 사진들처럼 말이다. 소설 속 가족을 따라 인릉을 서성이며, 그들이 만든 가느다란 연대의 길이를 가늠해 보기를.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어느 새, 기하와 재하처럼 나의 흘러간 인연 속에서도 미처 보지 못했던 진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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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는 강북에 있는 오십년 넘은 적산가옥을 개축해 일터 겸 거주지로 삼았다. 가옥은 가벽 하나를 두고 이편은 사진관, 저편은 세칸의 방을 둔 가정집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두 공간을 넘나들며 아버지와 백반을 시켜 먹고, 「태조 왕건」이나 프로야구를 시청하고, 문제집을 풀거나 콘솔 게임을 했다. 그러다보면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간혹 알은척을 할 때도 있었다.
쇼윈도에 걸린 사진, 아저씨 아들내미 맞죠?
그럴 때 아버지는 내 머리칼을 마구 흩트리며 웃었다.
맞아요. 우리 아들놈.
--- pp.8~9

재하 어머니는 내가 저기요, 하고 불러도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라고 부르길 강요하지도 않았다. 가타부타 없이, 그저 속없는 사람처럼 그러마고 할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재하 어머니는 객(客) 같았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젠가는 떠날 사람. 그렇게 생각한 탓인지 시간이 지나서도 그녀에게 뭘 부탁하거나 전하는 게 영 어렵기만 했다.
--- pp.12~13

검진이 있는 날이면 재하는 평소보다 더 말이 많아졌고 더 크게 웃었다. 겁이 나는 걸 감추려 안간힘 쓰는 게 빤히 보였다. 내가 모르는 재하의 표정. 그런 것이 언뜻 비칠 때마다 그애를 향한 묵은 오해나 염오가 한층 누그러졌다. 면을 건져 먹는 재하를 보며 저 애가 내 친동생이라면 어땠을까, 잠시 가정해보기도 했다. 투박하고 거침없이 속엣말을 쏟아내며 보다 친밀해질 수 있었다면. 서로에게 시큰둥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끈끈한 우애 같은 것을 우리가 처음부터 나눌 수 있었다면.
--- p.26

오래되어 코팅이 벗겨진 사진들 틈에 낯선 사진 한장이 끼여 있었다. 아버지가 찍었다기엔 초점이 맞지 않고 노이즈도 심한 사진이었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숲을 골똘히 살펴보다 그것이 재하가 찍은 사진이라는 걸 깨달았다. 뻣뻣하게 걸어가는 나와 그런 내게 다가와 슬며시 팔을 두르려는 재하 어머니의 뒷모습.
그 사진을 오래, 아주 오래 들여다보다 나는 서랍 깊숙이 그것을 숨겨두었다.
--- p.42

말보다는 표정이나 분위기, 실루엣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하 형이 제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안경 뒤에 숨겨진 표정이 늘 어두웠던 형. 나보다 두뼘 정도 더 커서 늘 올려다봐야 했던 형. 변성기를 지나 목소리가 굵직했고, 가끔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다 내게 들키면 얼굴이 굳어졌던 형.
형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 p.53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버릴까, 멀어져버릴까 언제나 주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가감 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것도 어떤 관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태어난 것일까요.
--- p.58

사진 속에서 새아버지는 저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습니다. 부드럽게 미소 지은 채 손을 맞잡은 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버티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들, 가중한 책임을 이기지 못해 도망쳐버린 것들은 다 지워지고, 그 자리에 꿈결같이 묘연한 한여름의 오후만이 남습니다.
--- p.88

재하는 피로해 보였다. 그애의 충혈된 눈과 거무스름한 눈가를 훑어보았다. 홍반이 사라진 것을 빼면 얼굴은 어릴 때와 비슷했지만, 하는 말이나 행동은 영 다른 사람 같았다. 의식적으로 존대를 하는 것부터 그랬다. 반말이 나오면 그애는 재빠르게 말을 고치며 예의를 차렸다. 그럴 때마다 왕래하지도, 안부를 묻지도 못한 지난 시간들이 절감되었다.
--- p.102

같이 찍을래요?
재하가 소리쳤다. 독사진을 찍은 지 너무 오래되어 민망하다고, 같이 찍으면 그나마 덜 부끄러울 것 같다고 그애는 말했다. 조금 망설이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
잘 나왔네.
잘 나왔네요.
역광이 심해 누가 그애고, 누가 나인지 구분조차 어려웠다. 잘못 찍은 사진이었지만 누구도 다시 찍자고는 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재하는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빛 아래 우리는 두점 그림자 같았다.
--- pp.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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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대부분의 소설 속 인물들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뒤늦게 묻는다. 마음에 커다란 틈이 생긴 뒤에야. 혹은 틈이 너무 벌어져 무너진 뒤에야. 그러면서 틈이 생기기 이전, 아주 가느다란 실금이어서 거의 보이지도 않던 그 순간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좋은 소설은 여기에서 결정된다. 뒤돌아보는 자의 시선, 뒤돌아보는 자의 태도, 뒤돌아보는 자의 윤리. 성해나는 제대로 뒤돌아볼 줄 아는 작가이다. 손쉽게 단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해하지 않는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곱씹고 곱씹는다. 작가의 사려 깊은 시선은 문장 곳곳에 스며든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의 찰나를 문장으로 건져 올린다. 성해나의 문장은 정확하면서 예민하고, 명확하면서 깊고, 단정하면서 힘이 세다. 책을 읽다보면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천천히 스며든다. 그래, 이게 읽는 맛이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윤성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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