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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내며
강정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네 눈물은 너무 광대하여 대신 울 수 없다 강지혜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초식동물 고선경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파르코 백화점이 보이는 시부야 카페에서 고영민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새의 기억 권누리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유리 껍질 김근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혼자 있는 사람은 김선오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같은 뼈 다른 바다 김연덕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사랑을 초청하고 밤낮으로 살펴 김이듬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후배에게 류휘석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도랑의 빛 다량의 물 박연준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흰 귀 박철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호객 박형준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밤의 소리 변윤제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한때 우리집 고양이와 성동혁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발레 언뜻 손미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무생물적 회의 신미나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귀로(歸路) 신이인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꿈의 룰렛 안도현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물음과 무덤 안태운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솔방울 안희연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구스베리 구스베리 익어가네 오은경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프랑켄슈타인 유진목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사인 유형진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물망초 이기리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연인의 이름으로 이선욱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규칙 이설야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파묘 이승희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물속을 걸으면 물속을 걷는 사람이 생겨난다 이영광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노인 이영은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title〉〈h1〉〈/title〉 이영주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극지 이예진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부력 이은규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밤의 대관람차 이진우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베이스 이혜미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얼음잠―ASLSP 이훤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백 임솔아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파쇄석 임승유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그 여자 얼굴 임유영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장승리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사랑, 나무들, 범죄란 없다 전동균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구석 전욱진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기억극장 정다연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부재중 전화 정한아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구원받은 사람 조온윤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한밤의 공 줍기 조해주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차가운 사람 조혜은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손차양 최지은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홀 한여진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꿈속의 꿈 한정원 시란 무엇인가 신작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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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로 노래를 흥얼거리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너는 세상의 끝에 다녀왔어요, 답한다 너의 호주머니 속에서 심해어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안희연, 구스베리 구스베리 익어가네」중에서 켜지 않은 양초가 가득한 한밤에 앉아 있지. 좋은 것을 좋아해. 문명이 우리를 빛으로 심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플랜트. 죽어도 괜찮아. 자꾸만 죽어봐야 해. 그래야 화분은 거대해져.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것은 그저 인간의 일. ---「이영주, 극지」중에서 그 사람의 첫 집은 갓 생산된 사랑과 콘크리트로 지은 호텔이었는데 재료들을 모을 당시 그는 자신의 건축 계획이 그렇게나 반항적이라는 것을 도면의 열정적이고 순진한 냄새가 어쩌면 그의 인생에 단 한 번뿐일 것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뒷산에서부터 옮겨와 호텔에 난 큰불은 그 혼자 떠안아야 하는 것이었다 투숙객들 중 한 명이 호텔의 안락한 침대 대신 산에 올라 친 무심결의 장난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랑의 세계에서는 꼭 무너짐이 무너짐을 뜻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투숙객들이 남기고 간 그을음들을 지불해 서로 다른 집 여러 채를 열심히 지었다 집은 현실에서 지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김연덕, 사랑을 초청하고 밤낮으로 살펴」중에서 나는 매 발톱을 삼켰지만 병원에 가지 않는다. 내게는 문제가 없다. 매 발톱을 삼킨 젊은 남자나 중장년, 나와 사적으로 친밀했던, 부유하며 존경받는 인물들, 야생 족제비와 삵이 그러하듯이. 원판의 시선에서, 나는 젊은 여자라는 구역을 벗어나 있다. 나는 돌아가고 있다. 귀밑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들. 내 멋진 장식들. 의사는 깃털이라고 진단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마지막까지 남아 내 신원을 확인해줄 것이다. ---「신이인, 꿈의 룰렛」중에서 원한 없고 인생 없고 노인 없는, 노인이 웃으며 온다 노인들이 웃으며 몰려온다 노인을 사랑하라 원수를 기뻐하라 꽃처럼 불꽃처럼 타올라라 안개처럼 음악처럼 흘러가라 ---「이영광, 노인」중에서 어떤 기분이야? 몸이 백 쪽으로 갈라졌다 다시 돌아오는 건? 한 사람의 밤을 지켜보는 동안 다른 사람의 낮에 다녀올 수 있는 건? 너무 많은 사람을 들어갔다온 날 네가 잠들 수 있는지 궁금해 ---「이훤, 백」중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게 있어서 주웠더니 누군가 먹다 뱉은 사탕이었어요 축축한 입안에서 사탕은 얼마나 많은 말을 견디고 있었을까요 잠깐 만졌을 뿐인데도 끈적함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다연, 부재중 전화」중에서 잠자는 사람은 모르지 어둠이 내리면 그 잔디 위에서 벌벌 땀 흘리며 흰 것을 줍는 밤이 있다는 걸 온몸이 젖어 들키기 싫은 밤이 아주 많다는 걸 미화되지 않는 인생 스위치를 내렸다 올리듯 요란함이 간단히 정리되는 마법은 없네 ---「조온윤, 한밤의 공 줍기」중에서 최선을 다해 느리게 멀어진다면 헤어지는 게 아니야. 머무름만으로 노래가 될 수는 없잖아. 음악은 무한한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의 형식이니까. 노래와 미래가 교차하는 자리에 눈송이 하나를 묻어두었어. 그 위에 작은 목소리로 안녕, 처음 만난 날처럼 다시 인사를 ---「이혜미, 얼음잠─ASLSP」중에서 네 관심이 끝나고 언젠가 내 관심도 끝이 날 때에 그때에 우리에게도 남을까. 마지막까지 남아서 무언가를 지키는 마음. ---「임솔아, 파쇄석」중에서 나도 너처럼 습관적으로 한숨 쉬지만 네가 얼굴 뾰루지랑 새치를 걱정하면서도 솟아오르는 웃음을 터트리면 좋겠어 어쩌면 삶에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사는 걸 꽤 좋아하면 좋겠어 ---「김이듬, 후배에게」중에서 희는 말했고, 그러니까 논이든 들이든 기왕이면 산이 좋겠구나, 그 위에 몸이 놓인 채 내내 그러고 있기를, 부패할 텐데, 몸은 산에 사는 생물들 하나하나에 휩싸여서, 천천히 먹힘의 대상이 될 텐데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 제는 말했어, 죽은 몸이 불타 재가 되기를, 화하여 흩뿌려지는 게 좋다고,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영화의 결말에서도 모든 게 불타버릴 때 그렇게 끝나면 얼마나 좋은지, 수분 없는 깨끗함, 영에 대한 갈망, 오롯한 소멸 ---「안태운, 솔방울」중에서 |
‘시란 무엇인가’ ‘당신이 최근에 쓴 시는 무엇인가’ 50명의 시인이 답하다
문학동네시인선 200 기념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문학동네시인선은 지난 2017년 12월 100번째 시집을 기념해 펴낸 ‘티저 시집’(『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의 독특한 형식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기존 시집의 대표작을 엮어 펴내는 것이 시인선 기념호의 통상적인 형식이었다면, ‘티저 시집’은 이름 그대로 앞으로 펴낼 시인들의 신작시를 엮은 ‘미리 보는 미래 시집’으로, 문학동네시인선이 그려나갈 ‘이다음 세계’를 담고 있다. 200번째 시집 역시 티저 형식을 유지하였다. 2023년에 등단한 신인부터 이제 막 첫 시집을 펴낸 시인은 물론, 시력 40년이 넘은 중진 시인까지, 앞으로 문학동네시인선에서 펴낼 시인 50명의 신작시가 이 한 권에 담겼다. 강정, 강지혜, 고선경, 고영민, 권누리, 김근, 김선오, 김연덕, 김이듬, 류휘석, 박연준, 박철, 박형준, 변윤제, 성동혁, 손미, 신미나, 신이인, 안도현, 안태운, 안희연, 오은경, 유진목, 유형진, 이기리, 이선욱, 이설야, 이승희, 이영광, 이영은, 이영주, 이예진, 이은규, 이진우, 이혜미, 이훤, 임솔아, 임승유, 임유영, 장승리, 전동균, 전욱진, 정다연, 정한아, 조온윤, 조해주, 조혜은, 최지은, 한여진, 한정원. “이미 시인이 되어서가 아니라 매번 시인이 되기 위해서”(신형철) 시를 쓰는 이 이름들과 함께 문학동네시인선은 ‘세상의 끝’과 그 이후를 상상해보고자 한다. 웬일로 노래를 흥얼거리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너는 세상의 끝에 다녀왔어요, 답한다 너의 호주머니 속에서 심해어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_안희연, 「구스베리 구스베리 익어가네」에서 켜지 않은 양초가 가득한 한밤에 앉아 있지. 좋은 것을 좋아해. 문명이 우리를 빛으로 심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플랜트. 죽어도 괜찮아. 자꾸만 죽어봐야 해. 그래야 화분은 거대해져.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것은 그저 인간의 일. _이영주, 「극지」에서 최선을 다해 느리게 멀어진다면 헤어지는 게 아니야. 머무름만으로 노래가 될 수는 없잖아. 음악은 무한한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의 형식이니까. 노래와 미래가 교차하는 자리에 눈송이 하나를 묻어두었어. 그 위에 작은 목소리로 안녕, 처음 만난 날처럼 다시 인사를 _이혜미, 「얼음잠─ASLSP」에서 네 관심이 끝나고 언젠가 내 관심도 끝이 날 때에 그때에 우리에게도 남을까. 마지막까지 남아서 무언가를 지키는 마음. _임솔아, 「파쇄석」에서 나도 너처럼 습관적으로 한숨 쉬지만 네가 얼굴 뾰루지랑 새치를 걱정하면서도 솟아오르는 웃음을 터트리면 좋겠어 어쩌면 삶에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사는 걸 꽤 좋아하면 좋겠어 _김이듬, 「후배에게」에서 이번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에는 신작시 외에 ‘시란 무엇인가’라는 공통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함께 담겨 있다. 근본적이면서도 광범한 이 질문을, 어느덧 12년의 시간을 담아낸 시인선을 돌아보며 한 번쯤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답변의 조건은 ‘한 문장’일 것. 그렇게 모인 시인 50명의 한 문장들은, 길건 짧건 시를 향한 가장 간결하고 간절한 고백으로 읽힌다. 시란 무엇인가. “시란 머물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집을 짓는 것”(김연덕)이자 “작아지지 않는 슬픔, 그게 좋아서 첨벙첨벙 덤비는 일”(박연준)이다. “세상에 아직 발설되지 않은 비밀이 실재한다는 증거”(권누리)이자 “죽은 이의 심장으로 다시 사는 것”(신미나)이며, “절망과 슬픔을 정직하게 통과하라고 말해주는 것”(이승희)이기도 하다. “언제 단종될지 모르는 맥도날드 애플파이를 먹으며 다음 파이에 넣어 구워버릴 재료를 찾는 일”(한여진)이거나 “세상을 아주 느리게 다시 쓰는 것”(정다연)은 아닐까? 어쩌면 “익사자의 코에서 나오는 기포”(장승리)나 “세상의 모든 방들과 이어져 있는 거실”(조해주) 같은 것일지 모른다.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데려가는 신발”(안희연)을 신고 “쓰는 자와 읽는 자를 생각의 외계로 데려”가는 “언어로 이루어진 탈것”(이혜미)에 몸을 실어본다면, 그때 우리가 마주하게 될 풍경은 무엇일지 무척 궁금하다. 시인과 독자 각자의 고충은 상호 적대적이지 않다. 동시에 해결할 수 있으면 그러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것이 시인선의 역할이다. 시인과 독자 모두를 편들기. 그것은 ‘읽히는 시, 그러나 혹은 그래서, 시인과 독자 모두 스스로 당당해지는 시’의 판을 벌이는 것이다. 시가 가진 섬세한 인지적 역량을 신뢰하고, 그를 통해 시인과 독자 모두의 삶이 깊이를 얻게 되길 꿈꾸기. 매리언 무어가 ‘시’라는 제목의 시를 “나 역시, 시가 싫다”로 시작했으면서도 결국은 시가 “진실한 것을 위한 하나의 장소”임을 긍정하며 끝냈듯이 말이다. 문학동네시인선은 지난 12년 동안 199권을 채웠다. 199건의 고충을 해결하려 노력해왔다는 뜻이다. 시인선의 고충? 그런 건 없다. 시인도 독자도 더는 고충을 견디려 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에 대한 염려만이 유일한 고충이다. _문학동네시인선 기획위원 신형철,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펴내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