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스트 젤리 샷 >
○ 저자 : 청예
○ 출판사 :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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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아니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도 존재할 본질적인 질문이 인간을 견본으로 만들어진 데우스, 엑스, 마키나 삼 남매의 사회화 훈련으로 촉발되어 '인봇의 재판'이라는 윤리 심판의 무대로 회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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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예술화라거나 예술의 기계화라거나. 폴로는 그런 말은 머나먼 곳에만 존재하는 다툼이길 바랐다. 자신의 꿈을 침범하는 건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턱 끝까지 쫓아온, 그것도 비인간 따위에게 가장 소중한 걸 내어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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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치마를 나풀거리며 신당으로 돌아갔다. 정갈하게 발을 닦은 뒤 작두 위에 올라탔다. 신이 깃든 인간들이 그러했듯이 두 다리에 힘을 줘 날아오르려 애써보았다. 발바닥 가죽이 작두에 맞닿자 날카로운 압력이 느껴졌다. 무딘 날이 다이아탄탈을 뚫어버릴 듯이 인공 가죽을 파고들었다. 데우스는 겸허한 얼굴로 더 높이 뛰어올랐다. 인간들이 믿는 신이란 작자를 흉내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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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일까, 왜 자신은 인간의 가족이 되지 못했나, 인간은 돌봄을 받기만 하고 정작 자신에게는 베풀지 않는다. 과거 마키나는 생각했었다. 타자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 반해 요구하는 것 없이 잘 인내하니 이것이야 말로 헌신이며 진정한 돌봄이라는 걸. 그러나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것은, 심지어 약자를 돌보는 일조차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상호작용이었다. 일방의 마음으로 완수되는 일은 없었다.
(...)
각각의 인물들 성격과 행동의 반전, '데우스 엑스 마키나' 라는 고전적 장치에 담긴 적나라한 예시적 표현이 독특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흥미로운 소재와 블랙 코미디 같은 인봇들의 행동 속에 담긴 예리한 질문들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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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만 보고는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던 첫인상의 책이었다.
요즘 한참 인기 있는 SF장르문학이라서 그런지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을 수상한 낯선 이름의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가득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큰 기대 없이 읽었던 책에 뒤통수를 치인 기분이다.
읽고 나면 여운이 오래 남는 것에 비해 단상이 정리되지 않는 책이 있는데,
라스트 젤리 샷이 나에겐 그런 책 중 하나다.
쉽게 읽히지만 쉽게 떨쳐내지 못하게 만드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 끝도 없이 그다음의 사고를 일으킨다.
멀지 않은 미래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예측되는 사회적 이슈와 맞물린 꽤나 실현성 있는 이야기가 이토록 낯익은 이유는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과 맞닿아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인간사 삶의 지침 중 중요한 것이 나와 사회의 '가치관의 무게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일 것이다.
인간만의 고유한, 근본적인 사유의 이유를 비극성을 첨가해 인봇에게서 보여주는 풍자적인 장면들과 히스테릭한 결론들이,
[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라 규정하는가? ]
에 대한 질문을 깊게 고민하게 한다.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 믿음을 예리하게 꼬집어 불편하게 만드는 작가의 탄탄한 구성과 서사에 감탄했다.
젤리 하나 만큼의 무게로도 무게중심은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언질을 주는 소재 선택의 달콤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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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읽으면서, 몇몇 소재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가 '넘친다'라고 생각했지만, 저자가 담고자 한 주제가 흩어지거나 하지 않아 그 이면의 이야기를 곱씹어 볼 수 있고 상상할 수 있어서 즐겁기도 했다.
작품에 대한 작가의 북토크나 사담을 들을 기회가 주어지면 참 좋겠다고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똑똑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신예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울 것 같다.
<허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적인 의견을 담아 적은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