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2년 동안 국가 안보 관점에서 희귀 금속 문제를 다뤄왔다. 중국이 이따금 으름장을 놓을 때마다 미국 군대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 미사일, 에이브럼스 탱크, F-35 스텔스 전투기 제조에 엄청난 양의 희귀 금속이 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과의 무역 전쟁은 곧 미국의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 p.10, 「개정판을 내며」 중에서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수많은 위성을 하늘 높이 띄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주로 위성을 쏘아 올릴 발사체가 필요하며, 적정한 궤도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파동을 송신하며 디지털 기기의 통신 내용을 암호화할 수 있는 막대한 수의 컴퓨터도 필요하다. 물론 폭주하는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사단도 동원되어야 한다.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차원의 해저 케이블 망,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지상-지하 전기 망, 수백만 개의 정보 처리용 단말기, 무수히 많은 데이터 저장 센터, 수십억 개의 태블릿 PC, 스마트폰을 비롯한 온갖 사물인터넷과 배터리와 충전기 등을 갖춰야 한다. 비물질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토록 커다란 물리적 영향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이른바 비물질화 시대로의 행복한 전진은 기만에 불과하다. 디지털 리바이어던이라는 이 거대한 괴수의 탄생을 위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를 태우는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풍력과 태양광 발전소가 필요하며, 지능형 네트워크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희귀 금속이 필요하다.
--- p.69,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물질성」 중에서
그런데 중국과 콩고, 카자흐스탄이 무책임한 광업으로 환경을 피폐화하는 동안 미국과 유럽 등 서양 국가는 무얼 한 걸까?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과연 중국과 콩고, 카자흐스탄만의 잘못일까? 아니, 다시 질문해야겠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이나 콩고, 카자흐스탄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이들 국가가 열악한 환경에서 금속을 채굴하고, 환경을 파괴할 줄 뻔히 알면서도 그들 손에 일을 맡긴 것은 누구였을까?
--- p.84, 「새로운 풍요의 시대라는 환상」 중에서
중국 정부는 광업 생산의 중심축을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시키려는 어마어마한 무역 계책을 꺼내 들었으며, 오늘날도 이를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덤핑’이다. 생산 비용을 무지막지하게 낮추었으니 경제 덤핑이고, 오염 방지 비용을 부담하지 않았으니 환경 덤핑이다. 2002년 중국에서 생산된 희토류 1킬로그램의 값은 평균 2.8달러로, 미국보다 2배나 낮은 가격이다.
서양이 이렇게 손 놓고 있는 사이 중국은 희귀 금속 시장을 휩쓸었다. “유럽과 미국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희토류를 얻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한 전문가는 단언한다. “그리고 중국이 그들의 환경을 파괴하면서 희토류를 채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그렇지만 모른 척하는 편을 택한 겁니다.”
--- p.90~91, 「미국이 희토류 시장을 지배하던 시절」 중에서
희토류 공급 문제에 부닥친 제조업자들은 가고 싶지 않은 2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원활하지 않은 원자재 공급과 느린 가동 속도를 무릅쓰면서 공장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혹은 무제한으로 원자재를 공급받는 대신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는 길이었다. 일본은 이 딜레마 앞에서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원자재에 허기졌던 일본은 그들의 값진 기술을 챙겨 들고 서둘러 중국으로 떠났다.” 영국의 한 분석가는 말했다. (…)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일본, 미국, 유럽이 자석 시장의 90퍼센트를 장악했지만, 현재는 중국이 세계 자석 생산량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한 마디로, 광물 생산 독점권을 가지고 있던 중국은 ‘자원을 원하면 기술을 내놓으라’는 협박으로 광물 가공 기술에 대한 독점권까지 확보한 것이다.
--- p.140, 「서양의 탈산업화 오디세이」 중에서
“중국이 이룬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는 다른 독재 국가들에 무척 고무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인도의 한 대학교수는 분석했다. 견고한 경제성장과 정치적 안정을 모두 보장할 수 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신흥국가들은 ‘베이징 합의’, 즉 중국식 경제 발전 모델을 모범으로 삼으려 할 수도 있다. 베이징 합의는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진보가 필연적으로 연계된다고 주장하는 워싱턴 합의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러므로 희귀 금속 전쟁과 녹색 산업 일자리 전쟁이 곧 중국과 서양의 이데올로기 갈등이라는 주장은 과연 타당한 것이다.
--- p.169,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의 미소」 중에서
우리 연구팀은 장-이브 뒤무소에게 소형 카메라를 건네주고 공장 내부 영상을 찍어와 달라고 부탁했다. (…) “중국은 이제 전기차, 발광 물질, 풍력 발전기 터빈까지 제작합니다. 가치 사슬 전체를 장악했다고 봐야겠죠.” 우리의 내부 목격자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게다가 선용거가 열렬히 홍보한 바에 따르면 바오터우는 연마 자재 1만 톤, 촉매 광물 1,000톤, 발광 자재 300톤을 생산한다죠.” 바오터우는 이제 구질구질한 광산 지대로 소개되지 않는다. 중국은 ‘희토류 실리콘 밸리’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 p.143, 「희토류의 실리콘 밸리를 찾아서 」 중에서
세계 주석 생산량의 34퍼센트를 책임지는 인도네시아는 이 ‘첨단 기술 광물’의 세계 수출 1위 국가다.2014년부터 인도네시아는 그들의 땅에서 캐낸 모든 광물자원을 (그것이 모래든, 니켈이든, 다이아몬드든 간에) 채굴한 상태 그대로는 수출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 이유를 ‘우리가 광물을 제련하여 완성된 제품으로 판매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이러한 정책은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훌륭한 전략일터였다. 계산에 따르면 이런 방식으로 부가가치를 보존할 경우 인도네시아가 얻는 이익은 철은 4배, 주석과 구리는 7배, 그리고 보크사이트는 심지어 18배, 니켈은 20배나 커질 수 있다고 한다.
--- p.149,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의 광업 비전」 중에서
중국의 차이날코 그룹이 캘리포니아의 마운틴 패스 광산을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뒤 2017년 미국의 MP 머티리얼스가 마운틴 패스를 사들였다. 그러나 MP 머티리얼스 지분의 일부를 중국의 광산 기업인 셩허 리소시스 홀딩스가 보유하고 있었다.43 중국은 다른 경쟁 기업에도 버젓이 투자자로 참여한다. 셩허 리소시스 홀딩스는 우라늄과 희토류가 풍부하게 매장된 그린란드 크바네필드 광산의 대주주다. 이것야말로 지능적인 책략이자 치명적인 경쟁자의 출현을 막는 뛰어난 전략이 아니겠는가?
--- p.209,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광업 전선」 중에서
세계는 지구 전체 표면적의 71퍼센트를 차지하는 바다가 그저 물고기들만 노니는 액체 사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다. 이른바 ‘청색 경제blue economy’, 즉 해양 기반 경제 활동에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희토류(그리고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를 둘러싼 전쟁은 이제 육지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벌어진다. 새로운 광산 개발 열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캐나다 기업 노틸러스는 파푸아뉴기니 인근 해역으로 광물 탐사 활동에 나설 준비를 마쳤으며, 향후 작전을 위해 약 20여 곳의 잠수함 부지를 확보해 두었다. 다른 나라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중국은 기록적인 심해에서 해저 탐사를 할 수 있는 잠수정을 설계했다.
--- p.221, 「청색 경제 정복에 나선 나라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