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인들은 이런 분노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방출하는 방법을 은연중 모색해 왔었다. 원래 정신역학적으로 보면, 행복에 겨우면 새로운 창조와 혁신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능(entertainment)이었다. 예능은 분노 분출의 가장 효과적이고 긍정적인 통로의 하나이다.
---「김재은_한국인은 가슴에 불을 안고 산다」중에서
조조는 중국 문학사상 올바른 문인 의식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최초의 시인이다. 여기에 그의 아들 문제(文帝) 조비(曹丕, 187~226)와 조식(曹植, 192~232) 및 그들을 따르던 문인들이 가세하여 동한 말 헌제(獻帝)의 건안(建安) 연간(196~219)에 이른바 건안문학을 발전시키어 중국의 전통 문학이 이루어지며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중국의 전통 문학은 조조로부터 이루어져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김학주_잠참(岑參)의 시 「등고업성(登古?城)」을 접하고」중에서
태산 같은 도량을 가슴에 품은 채 흙처럼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괜히 이웃을 원망할 필요도 없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낼 필요도 없을 것이며, 불필요한 재화를 탐하다가 소유의 덫에 걸려 헛된 발버둥을 칠 필요도 없을 테니, 안분지족(安分知足)이 거기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까닭이리라.
---「안삼환_겸괘(謙卦)」중에서
평등 혹은 평등주의는 모든 정치이념이 표방하는 최고의 가치이고 그 자체로 흠잡을 데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평등을 원하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외치지만 그 본성이 이기적이고 교활하고 간악해서 평등을 향한 소망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근자에 우리 사회를 크게 흔들었던 사건들이 그 점을 거듭 확인해 준다. 그러므로 평등주의 이념이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는 하나의 유토피아요 허상일 뿐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이상옥_평등주의 허상」중에서
당시 1970년대는 한국 현대 무용사의 관점으로 봐서 중대한 전환기다. 국가 문화정책이 수립 공포되고 문화부 관료 행정직이 예술영역 현장에 깊이 개입한다. 무용의 해, 대한민국 무용제의 개최, 창작무용 대극장 수렴… 거기에 대학무용과의 확대 설립과 전문 무용수들의 많은 배출, 대학 기반의 동인 무용단들의 창립, 거기에다 무용과 교수세(勢)와 무용학원장들이 지켜 온 개화기 이래의 신무용 세대 간의 잠재적 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이상일_70년대 한국 창작무용 사조의 형성기」중에서
그러고 보면 작은 것이 위대하다. 과연 한 알의 밀알이 큰 밀밭을 이룬다. 육당이 당장은 맹꽁이 한 마리의 외로운 울음이지만 그것이 온 들판을 채우는 개구리 소리를 이끌어 내리라고 외쳤을 때의 그 외침은 막막하게 막힌 세상에서 희망이 안 보여 더욱 크게 울부짖은 애절한 기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도는 예견이기도 하였던 것일까. 그 맹꽁이 소리는 모두를 불러일으켰다. 지금 우리는 너도나도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지 않은가.
---「이익섭_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중에서
타고르처럼 맑은 긍정의 마음을 지닌 시인과 그의 시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이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는 한, 우리는 누구도 외로울 수 없다. 우리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는 시인의 그의 아름다운 시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모두가 외롭지만 물리적인 외로움을 뛰어넘어 마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기에.
---「장경렬_환란의 시대, 이 시대의 시인과 시의 역할」중에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계층을 구분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으나 아주 먼 고대에는 정신적 수준 곧 영성(靈性)의 등급에 따라 계급이 정해졌다. 가령 문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제사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았던가? 중국 최초의 정복왕조인 은나라의 임금은 사제와 통치자를 겸한 무군(巫君, Shaman King)이었다. 동양사회에서의 사-농-공-상의 신분 서열도 대체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정재서_성인·신선·부처는 시대의 산물」중에서
삶이란 ‘과정’임을 되생각하게 해 줍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퇴락하고 죽음에 이르는, 잠시도 머물지 않는 흐름의 이음이란 사실을 조망하게 해 주는 거죠. 머무는 것 없음, 정지하는 것 없음, 무상함이 삶의 본연임 등이 이때 되살핌에서 솟는 두드러진 터득일 겁니다.
---「정진홍_“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순례기」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서로의 암묵의 합의로 정해졌다고 할 늦은 잠자리 시간에 그가 들어왔고, 우리들은 각각 달리 힘들인 삶으로 인해 잠에 떨어졌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사태가 벌어진 때는, 창문이 밝은 달빛으로 훤하던 것이 곧 알게 될 이유로 너무나 뚜렷이 기억되므로, 밤 시간이 한참 깊어진 시점이었을 것 같다. 나는 갑자기 깊은 잠에서 소스라쳐 깨어났다.
---「곽광수_프랑스 유감 IV-9」중에서
공자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勿施 於人).”[『논어』]고 가르쳤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데 이와 같은 진정성을 전제하고 사심을 버린 상태(狀)에서 배려하고 함께 아파하고 더불어 행복을 나누는 부드러운 마음가짐이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에서 부드러움의 극치가 아닌가 싶다.
---「김경동_부드러움의 미덕」중에서
중고등학교 때 우리가 만난 조 선생님은 친구와 같이 얘기가 통하는 선생님, “구질구질하게 살지 마. 멋있게 살아야 돼.”라고 늘 당부하면서 전쟁 직후 암담한 현실을 직면한 젊은이들에게 현실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눈을 들어 멀리 보고 자기만의 가치를 추구하라고 가르쳤던 선생님, 그리고 당신 자신이 자기만의 멋을 추구하며 사는 자유인임을 전범적으로 보여주었던 선생님이셨다.
---「김명렬_조병화 선생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