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각 정파는 촛불 시민들을 다 자기가 이해하고 싶은 대로만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게 연정형태이든, 아니면 합당형태이든, 아직까지 한국의 어느 정파도 이루지 못한 큰 변화가 지금 진행 중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 정부의 이름은 ‘시민의 정부’ 혹은 ‘시민 대연정’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무지개 정부, 아니고, 좌파 정부, 아니고, 민중 정부, 아니고, 민주 정부, 더더군다나 아니다. --- p.78
반MB 진영에 단일세력으로 집권할 최대 분파도 없고, 독자적으로 국정 운영할 수 있는 그룹도 없다. 지금 이 집단이 가진 가장 취약점은, 집권 때까지만 힘을 모으고, 그 후에도 힘을 모을 수 있다는 보장도, 그걸 주도할 원로도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힘이 잘 모이지 않는 것이다. 그걸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집단지도체제를 전제로 한 연정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 p.122
30~40대 여성에서 20대 여성들에게 지난 수년 동안 폭넓게 퍼진 흐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새로운 흐름에 대한 감수성이다. 이게 지금 세상을 바꾸는 중이다. 이 흐름은 기존의 여성주의 등 여성운동과 묘하게 다르면서도 겹친다. 밥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철학, 이게 지금 유기농 식단을 벗어나 동물 그리고 공동체의 연대의식으로 급진화하는 중이다. --- p.186
우리는 국민을 소비자로만 보거나, 홍보의 대상으로만 본다. 그러나 시민으로서의 경제 주체, 그것에 관한 생각은 한 번도 진지하게 해보지 못한 것 아닌가? 시민의 정부는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경제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꽃마차와 화차 사이의 개인의 선택, 그것이 경제주체로서의 시민의 탄생을 만들어낸다. 결국 한 명, 한 명이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결과는 논리적이며 필연적이다. --- p.233
한국 사회가 아직 도달해보지 못하거나 시도해보지 못한 가치들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당장 복지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다음 정부는 왜 복지 정부면 안 되느냐, 얼마든지 반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대체적으로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정권의 이름을 정할 때, 그 주체를 중심으로 조금씩 전개시켜 나갔던 것들이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참여는 주체의 작동 방식이었다. 증오가 아닌 선택, 나는 그것으로 우리가 시민이라는 사회적 주체가 가지는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시민이라는 개념은 결국은 주체에 대한 얘기일 뿐이며, 출발점에 관한 얘기이다. 시민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본의든 타의든, 생략하게 된 시민사회의 경험, 그것이 지금 단계에서 한 번쯤 전개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 pp.261~262
연정의 진정한 의미는 집권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권 이후에 보다 힘을 발할 수 있다. 일종의 공동 통치인데, 과연 권력이란 것이 나뉘어지는 속성을 갖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흔히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익숙한 사유라면, 권력은 절대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청와대가 여당을 장악하고, 이걸 기반으로 통치하는 시스템에서 권력은 나누기가 어렵다. 그래서 캐비닛 연정이라는 형태를 제시한다. 노동부나 환경부 혹은 기획재정부나 농림부 같은, 진보정당이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들이 있다. 이런 일부 부처의 장관직과 함께 실제 정부 운용을 공동으로 하는 것은, 통치라는 의미보다는 정부 운용이라는 형태로 공동 집권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 p.267
여든 야든 모두 경제 민주화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그 내용이 정말로 무엇이냐, 그리고 누구와 그런 경제 민주화를 만들어낼 것인가, 그런 내용들은 비어 있다. 그러나 그 등장만으로도 이미 대선의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정말로 시민들이 참여한 선거였던 서울시장 선거가 있지 않았는가? (……) 정확히 말하면 성을 중심으로 살던 사람들이 근대적 주체로 등장하면서 보편적 권리를 가진 시민이 되었다. 서울에서 박원순 시장을 만든 사람들이 서울 시민인가, 아니면 보편적 존재로서의 시민인가 혹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경제 시민인가, 그런 질문들 앞에 우리가 서 있다. --- pp.296~297
과정을 생략하고 효율성만을 찾는다고 하는 것, 그게 바로 독재 아닌가? 길게 보면 민주주의에서의 과정이 지루하고 거추장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걸 생략하지 않는 게 민주화의 핵심 아닌가? 경제 민주화도 마찬가지이다. 과정을 생략하지 않는 것, 그게 장기적으로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안정성과 효율성, 그게 내가 이해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 요소이다. --- pp.310~311
시민단체의 지도자들이 정권에 참여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시민의 정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정책 운용기조와 국가 운영 방안을 결정하는데 시민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가, 그게 우리 시대에는 새로운 정권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시대의 중심 주체도 변하고, 또 새로운 주체에 대한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단계에는 그 질문이 바로 시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 p.330
한때 대통령까지 배출한 건설사의 위력이 한풀 뒤로 꺾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자본은 군산복합체로 재조정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크게 보면 롯데 초고층 빌딩과 강정마을 사이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방향 전환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서울공항에 이착륙하는 전투기의 안전을 위해서 군인들은 잠실의 초고층빌딩을 반대했지만, 아파트쟁이들의 힘이 너무 셌다. 군인들이 삽질 앞에 물러난 게 이 사건 아닌가? 반면에 강정마을에서 박근혜가 양보하고 물러날 없는 것은, 군산복합체로 한국 자본이 체계를 정비하기 위한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 어디에서 불도저에서 전투기와 군함으로, 한국의 대자본이 자신의 미래방향을 전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 p.334
한국 사회에서 시민이라는 존재가 정권의 주체로 등장하고, 그들이 많은 것을 결정하면서도 동시에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이 결정되지 않은 변수 중에서 채워 넣을 수 있는 유일한 논리적 해법이었다. (……) 무엇인가를 증오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의 모습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그게 대선을 앞둔 작년부터 내가 고민했던 결론이다. 증오의 반댓말은 용서가 아니라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은 장식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게 내가 배운 것이다.
--- pp.35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