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통제력이 상실되는 불확실한 곳. 낯선 미지의 세계에서 짜릿한 도전을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지만 반대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평범하지 않은 세계 뒤편에는 설렘과 함께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내밀한 곳으로 들어가 깊은 비밀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지만 때론 길을 잃기도 한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를 얻기도 하고, 다시는 이름조차 언급하기 싫은 적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신혼은 위험해서 더 짜릿한, 정글을 닮았다. --- p.4
식사 횟수를 하루 세 끼에서 두 끼로 줄였다. 소식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요리와 설거지에 소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내가 개인적으로 쓰는 시간을 더 가지면 좋겠다는 남편의 바람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정도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가사 노동을 하는 시간이 줄면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식기세척기, 빨래건조기, 로봇 청소기… 행복은 정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돈으로 산 시간을 서로 더 많이 대화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데 썼다. 작은 행복을 켜켜이 쌓으니 관계의 틈이 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 p.59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 시골에서 집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와 인연이 닿는 집이 반드시 나타날 거라 믿었다. 우리는 조용한 시골 마을, 번잡하지 않게 여유로운 일상을 즐길 수 있는 마을을 중심으로 집을 찾았다. 그즈음 나의 마음이 일본 영화 〈안경〉의 배경이었던 바닷가 마을이나 소박하고 느긋한 일상이 돋보이는 〈카모메 식당〉에 닿아있어 그랬던 걸까. 우리는 바닷가를 따라 조깅을 하고 책을 읽고 식탁을 차리는 생활을 꿈꿨다. 몽글몽글한 신혼이 그리는 그림치고는 꽤 아날로그적 투박함이 있었지만 우리는 결연했다.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걸 하고 살자. 그러려고 제주에 사는 거니까. --- p.107
집을 수리하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더디고 더뎠던 공사는 결국 이사일까지 완료되지 않았고 우리는 서울과 제주를 떠돌며 생활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남편과 내 가치관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났는데, 남편은 목수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쪽이었고, 나는 채근과 독촉을 해서라도 빨리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결국 수없이 긴 논의와 토론을 거친 끝에 남편의 선택을 따르게 되었다. 나는 인내와 오래 참음, 배려의 마음 그릇을 확장시켜야 했다. --- p.145
결혼은 인간 개선 프로젝트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다르면 달라서, 같으면 같아서 배우자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그 까끌한 마룻바닥 같은 내 마음이 반질거릴 수 있도록 돕는 일. ‘세상에서 제대로 살게 해줄 유일한 사람’과 맞춰 나가는 것이 바로 결혼인 것이다. 물론 이 변화에는 고통이 따른다. 남편의 기인 성향은 자주 드러나는데, 이에 맞서는 나의 똘끼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