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전구 회사에서 조명 기구 회사로 전환하겠다는 방침과 맞물리면서 전구 생산은 중단하지만, 본질은 안 없앱니다. 일광전구만큼 다양한 전구류를 보유한 데가 없어요. 전구를 가장 잘 알고, 광원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다양한 광원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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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온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형광등 색을 주광색(晝光色)이라고 부릅니다. 주광색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 햇빛의 색상이에요. 사실 햇빛 색에는 백열전구가 훨씬 더 가까워요. 노란빛이 나잖아요. 그런데 전구는 그냥 전구색이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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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열전구가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백열전구만 줄 수 있는 매력과 감성이 있습니다. 백열전구는 사람을 예쁘게 만들어요. 백열전구 불빛 아래와 LED 불빛 아래는 완전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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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색을 못 만듭니다. 사람의 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LED를 2700K로 만들어도 자연에서 나오는 불빛하고 느낌이 다릅니다. 작동하는 방식이 다르거든요. LED는 전자파예요. 플러스, 마이너스 전자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만드는 불빛입니다. 반면 백열전구는 천연 금속인 텅스텐에 열을 가해서 만들어 내는 불빛입니다. 모닥불하고 원리가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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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백열전구를 그만하라고 하니 내 업을 다시 정립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왜 전구 회사를 계속해야 하는지, 이런 의문에 부딪혔거든요. 그때 집중적으로 고민해서 회사의 미션과 비전, 코어 밸류를 재정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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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에 들어가는 정보를 소비자가 습득하는 순서대로 배치했어요. 패키지 전면에는 로고와 사진만 넣었어요. 박스를 돌리면 제품명과 볼트, 와트 정보가 나와요. 한 번 더 돌리면 세부 사항이 나오죠. 소비자가 제품을 만나고 보는 순서에 따라 정보를 배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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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마인드를 바꿀 수 있는 문구가 필요했어요. 당시 구성원들은 전구를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는 느낌이었어요. 백열전구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일깨우는 게 브랜드 리뉴얼의 핵심이었죠. 그래서 우리는 전구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빛을 만드는 회사라고 한 거예요. 빛에는 희망의 개념도 있잖아요. 우리는 희망을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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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이든 불만은 있고 한 번씩 문제도 생깁니다. 하지만 이야기하면서 푸는 거죠. 저희는 최근에 입사한 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20년 가까이 일한 분들입니다. 30년 넘게 근무한 분도 있고요. 오랜 시간을 본 사이잖아요. 이야기를 많이 하고, 그래도 의견 충돌이 있으면 그 부분을 또 이야기합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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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 등장한 2007년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오래된 회사가 노하우도 많고 유통망도 촘촘하고 인적 네트워크도 좋으니까 세상의 중심이었어요. 아이폰이 등장한 뒤로는 오래된 회사라고 회사가 존속하나요? 오래된 회사라고 좋은 회사인가요? 디지털 자체가 역사가 짧잖아요. 역사와 큰 관계가 없어요. 회사 역사가 길고 짧은 것보다는 시대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가, 이게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아날로그 양산 회사가 디자인 제품을 만든다는 게 재미있지 않습니까? 많은 고객이 전구 회사가 디자인도 하네, 이러면서 이야깃거리가 되는 거죠. 결국 일광전구의 역사예요. 60년 역사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디자인만 탁월하다고 해서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닐 거예요. 우리 회사에 좋은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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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기구는 따스함과 애틋함을 주는 제품이에요. 이런 제품이 가져야 하는 디자인 랭귀지가 있어요. 예를 들어 차갑고 날카로운 제품은 모서리에 손이 베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조명 기구는 그렇게 디자인하면 안 돼요. 형태도 마찬가지예요. 시각적으로 긴장감 있는 형태를 피해야 해요. 스탠드가 위태로워 보여도 소재를 잘 써서 아래를 무겁게 만들면 안 쓰러지겠죠. 이런 걸 혁신이라고 하지만, 조명 디자인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아요. 안정적인 느낌을 만들어야 해요. 보다가 스르르 잠들 수 있는 편안함이 필요한 게 조명 디자인이에요. 소재나 모서리 처리도 굉장히 따뜻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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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라이프 디자인은 성별에 따른 특징을 지니지 않아요. 중성적인 디자인을 하는 거죠. 특정 세대나 성별을 타깃으로 한다는 건 더 적게 더 한시적으로 쓰인다는 이야기예요. 그 반대라면 누구나 쓸 수 있고 오래가는 거니까 저희 디자인이 다 그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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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가 제창하는 철학 중 하나가 메타포예요. 사물을 보고 연상하게 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게 좋은 디자인이라고 했죠. 이름마저도 제품에 대한 경험을 재미있게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우리에게는 어릴 때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했던 행복한 추억이 있잖아요. 그 추억을 담아서 스노우볼과 스노우맨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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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치면 치트키를 쓰는 거죠. 헤리티지를 등에 업고 있잖아요. 마케팅적으로 소구할 수 있는 좋은 지점이죠. 반대로 생각하면 저희 경쟁사들이 헤리티지 없이도 이렇게 잘하고 계시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제품의 상세 페이지에 보면 브랜드 소개란이 있어요. 거기에 회장님 사진이 항상 들어가요. 일광전구공업사 시절에 버스를 빌려서 야유회를 가셨는데, 버스에 현수막을 걸고 사진을 찍었어요. 그 사진 한 장이 어마어마한 헤리티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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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지금 디자인, 품질, 마케팅 등 다양한 면에서 하이엔드를 지향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어포더블(affordable)한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신발이라면 컨버스 같은 거죠. 브랜드의 가치가 높으면서도 소비자가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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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열전구 직접 생산을 종료하지만, 그게 전환점이 될 겁니다. 저는 마라톤을 좋아합니다. 달리다 보면 제일 힘든 게 맞바람이 칠 때예요. 맞바람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돌아서는 겁니다. 역방향에서 순방향으로 바뀌는 거죠. 2022년은 저희 조명 기구의 시작입니다. 바닥까지 왔다가 이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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