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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아무 꽃이나 보러 가자

파란시선-0117이동
이서영 | 파란 | 2022년 12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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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17쪽 | 188g | 128*208*20mm
ISBN13 9791191897432
ISBN10 1191897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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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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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뭉클을 서랍 속에 넣어 두고 부를 기회를 엿보았지 가끔 사람들 앞에서 여기 뭉클이야 자랑하고 싶었으나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어 뭉클이 아닌 것을 뭉클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울고 싶기도 하고 웃고 싶기도 한 것 답답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심정을 뭉텅거린 게 바로 뭉클이라네 그 후 뭉클은 자주 불려 나왔어 뭉클이 바빠졌지 뭉클뭉클뭉클 뭉클을 너무 쉽게 대했지 친구에게 핫도그 한입 얻어먹고 뭉클이야 말한 적도 있었으니 뭉클은 가볍고 적당한 뭉클이 되어 갔다네 뭉클이라 부르면 연기처럼 흩어졌지 뭉클이 아닌 것 같았지 변한 것 같았어 뭉에 있는 구멍 속에 뭉클은 자기의 일부를 남겨 두고 대충 나오는 것 같았지 그래서 뭉클 자신만 가슴속이 뭉뭉해지는 거라고 점점 뭉클에게 시들해졌네 별 이유는 없었어 작별 인사 없이 찾아온 이별 같은 것 내 오래된 서랍 속 몸을 잔뜩 부풀린 뭉클이 다시 튀어나오려고 해 지금 뭉클 뭉클 불러도 좋을까?
---「뭉클」중에서

나무가 물에 잠겨 있었다
무엇에 잠겨 산다는 것
물이라서

좋았다

다행이잖아 봄이라서

수온이 적당하기를
비가 저수지에 떨어질 때 네가 우산을 꺼냈다
둑방길을 걸으려 할 때 막
비가 와서

좋았다

우산이 커다랗고 동그랗게 펼쳐지고

자리가 생겨
나는 가방을 오른 어깨에 옮겨 멨다
왼손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둘 곳 없는 손이 하릴없이
흔들흔들

저수지 안을 오래 기억하는 나무들
연둣빛으로 흔들리는 표정
두근대는 빗방울
나무를 더 자주 더 멀리 보냈다
흐려지는 물속을 들여다보며
비가 한참 오려나 봐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았다
차가운 살

너는 내 손바닥 안의 비를 만져 보았다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무들이 더 빠르게 흩어지고
---「세량지(細良池)」중에서

나는 사람보다 꽃이 많은 시절에 살았는데
꽃을 보러 간 날을 달력에 표시해 두었다

함께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꽃에 붙여 주면
전생에 내가 잃었거나
낳았던 아이들 이름인 것 같다

은목련이라거나 백동백, 류장미, 진모란
가만가만 불러 보면

떠나 버린 사랑이 서둘러 돌아올 것만 같아

절대 미치지 않겠다

진달래 골담초 사루비아 같은 것을 똑똑 따 먹으며
배가 사르르 아파 오고

가끔 예상치도 못한 꽃이 덜컥 피어나
얼마 머물지 않고 또 떨어졌다
---「안녕 안녕 아무 꽃이나 보러 가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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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애오욕. 부처님께서는 단호하고 결연하셨고, 우리는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망설이고 차질(蹉跌), 차질을 빚는다 빚어낸다. 갈팡질팡하다가 쩔쩔매다가 넋이 나가 있다가 문득 소스라치고 한참을 쳐다보고 쓰다듬고 쓰다듬다가 아등바등 속이 타다가 누군가 떠나가고 모퉁이를 돌아가고 말없이 웃고 고개를 갸웃갸웃 끄덕끄덕 꿈을 꾸고 꿈속에서도 걷고 바라보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혼자 중얼거리고 가만가만 불러 보는데, 딴생각을 하고 발을 헛디디는 동안 세상에는 봄이 오고 꽃이 피고 덜컥 피어나고 사금파리가 반짝이고, 샤락샤락 귓가에 뭉클뭉클 입안에 머물다가 사라지고, 돌아가신 아버지 논에 물을 보고 왔다고 잠시 잠깐 다녀가시고, 조금 전 꾸던 꿈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고, 음주 단속 무임승차 명동성당 주황 신호 길거리에서 길바닥에서 우리는 아무 꽃들 사이에서 아무 꽃이 되어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잘못 부르면서 차질을 빚는다 빚어낸다.
- 박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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