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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242g | 128*188*20mm
ISBN13 9791186198797
ISBN10 1186198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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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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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의 분위기는 젊은 남녀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애라와 사나이는 어느 사이에 눈웃음으로 인사를 교환하기도 하며 혹시 동행이 되었을 때는 그날의 날씨에 대하여서나 또는 허물없는 이야기에 소리를 내어 웃을 만치 친밀해졌다.
그것이 그 사나이와 처음 만나서부터 불과 칠팔일 뒤의 일이었다. 생각하면 작은 우정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사이에 상대방이 오지 않는 것을 ‘겁낼’ 만큼 발전했다는 것은 그들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 p.28

“이름은?”
영호가 다그쳐서 묻자 애라는 순간 “김숙희”라고 대답했다.
“김. 숙. 희. 씨.”
영호는 마치 맛있는 음식을 씹듯이 그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되풀이했다. 그러나 실상 놀란 것은 애라 자신이었다. 설사 이름을 알려 준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이름이 있건만 어째서 하필 김숙희의 이름을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숙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보다도, 한순간 무심코 흘러나온 이 말에 자신도 몹시 놀랐으나 이미 영호가 그 이름을 되풀이한 뒤였다.
--- p.34

“사회면 마감!”
이 소리가 들리면 사회부에서는 갑자기 해방된 것 같은 환성이 일어난다. 점심을 시켜 먹는 사람, 담배를 피우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혹은 염치 좋게 책상 위에 두 발을 올려 놓는 사람……. 이런 와중에 그들은 제각기 뽐내며 잡담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개 먹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다음에는 여자의 이야기로, 그리고 나중에는 돈 이야기로 들어가는 것이 순서였다. 매일같이 이런 순서는 변함이 없었다.
--- p.69

숙희는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석진 씨! 석진 씨는 그런 알지 못하는 사람의 풍문은 믿으면서 이 숙희의 말은 못 믿으시나요?”
마지막으로 용기를 다해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네. 나는 아무것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석진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리고 견딜 수 없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짚고 테이블에 엎드리더니 부르짖었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려 합니다.”
--- p.83

휘황찬 아크등 아래 뚜렷이 드러난 그 얼굴은 예상 밖에도 삼방에서 만났던 그 여자, 숙희라고 자칭하던 그 여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것이 무슨 까닭일까? 최 의사는 그것이 도리어 놀라웠다. 이름이 같고, 나이가 같고, 만났던 장소가 같고, 모든 것이 부합됨에도 불구하고 단지 얼굴만 다른 사람이라니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나마 지금 수술대 위에 드러누워 있는 그 여자의 얼굴은 어디서 언제인지 본 듯한 기억이 그의 머릿속을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잠깐 놀란 것이었다.
--- p.110

애라는 그만 무슨 진저리칠 만한 것을 바라본 것처럼 몸을 돌려 걸음을 빨리했다. 그녀는 헐떡거리며 걸어가
면서 속으로 ‘그 사나이도 분명 나를 알아본 것이다. 아아……’ 하고 부르짖었다.
그녀는 그만 가슴이 떨리고 겁이 나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 무슨 기막힌 우연인가? 숙희의 무덤을 찾아갔다 오는 이 길에서 하필 그 사나이를 만나게 되다니.
--- p.128

“오늘 밤은 눈도 오고 하니 눈을 맞아 가며 걸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럼 그래 볼까요.”
그래서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시 종로를 향해 올라갔다.
밤이 그리 으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드물었다. 가끔 큰길에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번쩍거리고 지나갈 뿐 그다음 순간부터는 소리 없는 흰 눈만이 이 세상에 모든 더러운 것을 덮어 주려는 듯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눈 오는 깊은 밤에 쓸쓸한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 같았다. 더구나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까닭 없이 센티멘털해졌다.
--- p.163

“오늘 애라 씨를 나오시라 한 이유는 이겁니다. 나는 애라 씨를 사랑합니다.”
영호는 미친 것처럼 이렇게 부르짖으며 불이 붙는 것 같은 입술을 애라의 얼굴 위에 더듬었다. 애라는 놀랐다기보다는 거의 본능적으로 반항했다. 그녀는 필사의 힘을 다해 사나이의 두 팔에서 몸을 빼려고 허우적거렸다. 이렇게까지 영호가 야폭(野暴)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애라는 입술을 깨물고 압박해 들어오는 사나이의 가슴을 떠밀었다.
그 순간 영호의 입에서
“앗!”
하는 날카로운 비명이 흘러나오자 그의 몸은 허공을 끌어안은 채 그들의 발밑에 있는 너덧 길이나 됨직한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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