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도나는 높은 톤의 목소리였지만, 괄괄한 사내같이 던지는 말투를 구사했다.
"그 손목, 거기 왜 그래요?"
필성에게 껌을 내밀며 다짜고짜 말을 건넸다. 아니 던졌다.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필성의 손목을 보고 그렇게 말한 사람도 없었고,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이 묻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성인 젊은 여자가 필성에게 사적인 이유로 먼저 말을 거는 일이었다. 그건 필성이 사십이 넘는 동안 그러니까 필성이 기억하는 한, 처음이었다.
필성은 이 여자가 무례한 건지 호감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때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도 판단할 수 없었고 머릿속이 하얘졌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췄다. 필성은 '순간 얼어붙었다'라는 문장으로 그 순간을 회상했다.
"봐봐요."
도나는 필성의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필성은 너무 놀라 손을 빼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생각뿐이었다. 도나는 필성의 손을 쥐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흠... 아팠겠네."
여섯 번째 자해 자국이었다. 이 상처는 유독 잘 아물지를 않았다. 이제 마흔이 넘어서 그렇다고 혼자 진단하고 그 다음 포기해 버린 상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늘 감추고 다녔던 자국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때 도나가 필성의 손을 잡았을 때, 필성은 도나의 손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상처가 낫는 느낌까지 들었다면 망상일까. 도나가 처음부터 필성에게 호감을 느끼고 손을 잡은 것인지 아니면 도나가 원래 호기심과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런 것인지 그것을 도나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날 이후 새벽 두 시가 되면 도나는 필성이 있는 편의점으로와서 필성의 지난 상처를 어루만지며 둘만의 시간을 가지는 사이가 되었다. 도나 서머의 핫 스터프가 흐르던 그날 거침없고 따뜻한 필성의 도나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필성은 그녀를 '도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뵤」중에서
"악!"
집 현관을 향해 몸을 돌리던 희정은 소리를 질렀다. 희정의 집 현관문 앞에는 깨진 달걀 껍질과 끈적한 달걀 물, 그리고 흙들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 앞에는 그 소름 끼치는 글씨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조용히 '
'해' '죽일거야?’
희정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덜커덩덜커덩거렸다. 눈앞이 캄캄해져서 넘어질 것 같아 오른손으로 문을 짚었다.
"악!"
하필이면 손이 미끈한 계란물에 닿았다. 그 때 앞집 1101호 문이 열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앞집 여자였다.
"아니요."
희정은 간신히 대답을 했다. 그러나 발성이 또박또박해서 희정이 괜찮지 않음은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에휴, 처음이죠? 이사 오신 지 얼마 안 돼서...”
"이거 아세요?”
"그럼요. 1002호 아저씨예요."
"1002호면...제 아래층...이요?”
"거기 종종 그래. 그리고 우리 집도 붙어 있어요. 봐요."
여자가 1101호 현관문을 반쯤 닫으니 달걀물과 흙, 그리고 포스트잇이 차례로 보였다.
"아마 1402호까지 붙었을거야. 그 아저씨 좀 이상해요.“
---「포스트잇」중에서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정림은 비명과 함께 무너졌다.
왼쪽 날갯죽지
견갑골이던가.
무언가 끊어진 듯한 통증에
몸을 세울 수 없었다.
상체가 바로 서질 못했다.
정림은 쓰러지듯 다시 누웠지만,
눕기도 전에 고통에 비명을 질러야 했다.
고통 없는 자세를 찾기가 어려웠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뭐라도,
자세를,
찾아야 한다.
상체를 웅크렸다.
아팠다.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는 고통이
"아이고. 아."
한동안 계속되었다.
---「정림이」중에서
"혜진아. 꼭 그만두기까지 해야 하냐? 휴가도 있고. 그때 좀
쉬면 되지. 그 좋은 직장을...애들도 다 커서 이제 손도 안 가잖아.
일하기 좋을 땐데. 적당히 쉬면서 하면 되지 않냐?"
"쉬는 게 아니라 엄마..."
"응?"
"쉬려는 게 아니라..."
"그럼 뭐 다른 일하게?”
"아니 일을 한다기보다는..."
"그럼?"
"두 가지밖에 없나... 내가 사는 게... 일하거나 쉬거나..."
"뭐래? 얘가."
"......."
"나이 오십에 사춘기냐, 너?"
혜진씨는 버스가 온다는 거짓말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끄응."
혜진씨는 버스정류장 의자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정자항'임을 알리는 플랭카드 위로 탁한 하늘이 떠 있었다. 흐려도 여름은 여름이었다. 햇빛은 뾰족하리만큼 강렬했고, 가자미들이 콘크리트 바닥에 널린 채 무력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걷던 혜진씨는 자신의 살갗도 따끔따끔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오류리 1793 염혜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