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 상상력과 철학적 주제가 결합, 철학이라는 해석학적 그림을 제공하고 있는 시. 시 「음시」는 저자가 한자를 붙이지 않아서 吟詩, 淫視, 蔭試, 音嘶, 陰市등의 단어들의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제목은 음시吟詩라 생각되지만 시 자체는 죽음과 지하의 반세계를 노래하고 있으니 음시陰詩라 읽어도 된다. 한자를 붙이지 않은 것을 보니 시인은 이 모든 의미를 아우르는 종합의 시를 쓰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이 시는 언어의 상상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는데 요즈음 유행하는 진술의 먼 거리가 아닌 은유와상징의 먼 거리를 동원한 전통적 수사가修辭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김백겸 (시인, 시인광장 전임주간)
이 시는 '에포케'에 관한 시다. 에포케는, 우리가 객관적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세계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다. [오늘 밤 장미는 견고한 유머고 종이요새다 벼락 속에서 지상의 모든 이름을 버린 어휘들이 태어나 웃을 때 섬광으로 피는 꽃들은 혼들의 무수한 편재다] 에서처럼 우리 앞에 현존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반 시적인 고찰로 형상화된 이 시는,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 있는 세계의 폭력성을 직시하고, 장미라고 이름 지어진 '아름다움'의 이면에 가려진 죽음과도 같은 세계의 존재성(비극성)을 드러내는 시이다. 결국 우리가 '아름다움'이라고 규정짓는 것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을 들추어내고, 그 실뿌리들을 뽑아내어 진정한 '아름다움'에 이르게 하는 의식의 고투가 시의 주제를 이루고 있는 이 반시적인 상상력이 잘 형상화된 이 시를 수상작으로 내밀었다.
- 김신용 (시인, 시인광장 전임주간)
에포케epoche, 판단을 중지하라고? 에포케 씨는 펜을 던져, 천둥이 살던 지하의 관시를 파묘하라. 13번째 맞는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좋은시賞]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5명의 전/현직 시인광장 임원들이 12월 8일 일요일 오후 2시, 대한민국 정부청사들이 군집되어 있는 행정복합도시 세종특별자치시에 모였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며 다채롭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호수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국립대통령기록관 관내 아늑하고 전망 좋은 카페에 4명의 심사위원(우원호 발행인, 김신용 전임주간, 김백겸 전임주간 및 김영찬 현 편집주간)들과 심사진행을 맡은 이령 부주간이 배석했다.
우리는 100선에 뽑힌 시인들의 투표에 의해 이미 선정되어 있는 무기명의 10편의 후보작을 놓고 토론 없이 각자가 3편씩 선호하는 시 제목을 적은 뒤에 이를 부주간인 이령 시인이 집계하도록 했다. 결과는 강기원 시인의 「물도서관」 2표, 최문자 시인의 「오렌지에게』 3표, 함기석 시인의 「음시」가 4표를 얻어 다득표로 함기석 시인이 영예의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다. 심사위원 4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음시」에 방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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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epoche를 의인화 한 에포케 씨를 통해, 편견이라는 사냥개와 선입견이라는 똥개를 몰아내고 일단, 판단을 유보한 뒤 ?펜을 던져, 관념의 무덤 클리셰를 파묘하라, 고 외친다. ‘거대한 홀이 뚫린 이 세계의 중앙국 음부에서’ 음산하고 난해한 음지ombre란 어떤 것인가. 함기석의 시는 구멍 뚫린 청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용케도 빠져나가 안주하게 될 뽈랑공원 이후의 또 다른 아토포스atopos를 에포케를 통해 설정하려 한다. 그것은 빌보케bilboquet(르네 마그리트)의 세계이며, ‘지상의 모든 이름을 버린 어휘들이 태어나 웃을 때’ 를 대비한 장소이다.
그러므로 음시란 암묵적인 시, 뽈랑공원시절의 명랑한 비눗방울 속으로의 귀환이 아니라 검은 독수리가 드넓은 날개 펼쳐 태양을 가려서 생기는 거대한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활달한 상상이 철학적 이데올로기와 화합한 「음시」는 그러므로 ‘장미(음시)는 장미의 유턴이고 돌에 고인 번개’ 에 지나지 않듯이 모든 것은 즉물(卽物)적 오브제로 환원될 뿐, 참으로 유마힐경(維摩詰經)에 씌인 현상들조차도 기껏 유머humor에 지나지 않는다는 매력적인 해학을 담고 있다.
이렇듯 음시를 암시로 오독하며 읽어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시, 호기심의 눈을 크게 뜨고 심독하면 할수록 내밀한 언어조직과 빈틈없이 농밀한 상징적 서술에 매료되는 시. 함기석 시인의 특장인, 활달한 상상력에 신령스런 상징이 더해져 묵직하게 무게감이 실린 시로 성공한 예이다.
평소 언어유희를 즐기는 주이쌍스jouissance의 시인으로 인지되던 함기석 시인. 그에게 작지만 새로운 창문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제는 현상학적 진실에 대응하는 멋쟁이 시인이라는 칭송과 함께 갈채를 보낸다.
- 김영찬 (시인, 시인광장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