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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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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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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502g | 140*210*26mm
ISBN13 9788947548335
ISBN10 8947548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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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 손에 쥐고 있던 노란색 리걸 패드 종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종이를 펼치지 않은 상태였다. 조용한 집 안에 잠시 서 있는 동안, 갑자기 종이를 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에 적힌 글을 읽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종이는 그냥 장난이고 실수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어도 되는 순간까지, 하지만 사실은 이제 더는 멈출 수 없는 일이 시작되었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까지, 그저 이 종이를 손에 쥐고만 있고 싶었다. 마침내 나는 종이를 펼쳤다. 짧은 글이 보였다. 무슨 뜻인지 모를 한 줄짜리 글이었다.
--- p.18~19

오언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이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겠다고 떠난 오언에게는 정말 맹렬하게 화가 났다. 하지만 그가 신경 쓴다는 걸 알았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오언이 베일리를 사랑한다는 걸 잘 알았다. 오언이 떠난다면, 그건 베일리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떠나야만 해서 떠난 것이다. 그가 떠난다면, 그것만이 베일리를 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베일리를 보호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일은 모두 베일리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것 말고 나머지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 p.67

“오언 마이클스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그 순간 나는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터무니없었고, 틀린 말이었다.
“물론 당신이 알지도 못하는 말을 마구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제이크. 하지만 단언하건대, 그 사람은 존재해. 불과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사람 딸이 자고 있어.”
“그럼 다르게 표현해줄게. ‘당신의’ 오언 마이클스는 존재하지 않아. 오언과 딸 모두 출생증명서하고 사회 보장 번호는 일치하지만, 나머지 정보는 당신이 말해준 정보와 전혀 일치하지 않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복도 카펫에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머리와 가슴이 쿵쿵 울렸다. “당신의 오언 마이클스는 이 세상에 없는 오언 마이클스야”라는 말이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나를 관통했다.
--- p.193~194

베일리는 기억의 공백을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로 채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나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채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기억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그 이야기들로 기억의 공백을 채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오언처럼 거짓말을 했다면?
오언은 누구일까?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사라져버린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한, 자신이 신기루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내가 믿었던 사랑이 거짓이라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인데, 그 같은 거짓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거짓들을 어떻게 끼워 맞춰야만 그 남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주어야 그 남자의 딸도 자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 p.210

“베일리,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 이미 싼 짐만 챙겨서 나가자. 어서 가야 해.”
하지만 호텔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베일리는 더는 그곳에 없었다. 베일리가 사라졌다.
“베일리?”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베일리에게 전화를 걸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려고 전화기를 찾았다. 하지만 곧 내가 전화기를 부숴버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전화기가 없었다. 복도로 달려 나갔다. 청소 카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재빨리 카트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층계로 뛰어갔다. 베일리는 없었다. 그 누구도 없었다. 베일리가 간식을 사러 호텔 바에 갔기를 바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호텔 식당으로, 스타벅스로 달려갔다. 베일리는 두 곳 어디에도 없었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 p.31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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