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무명작가다. 지난 2021년 4월에 출간한 『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먹고삽니다』로 내 처지(?)를 고백한 바 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지 않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하는 프리랜서 작가다. (이 업(業)이 절대 프리(free)하지 않다는 걸 우리 프리랜서들은 잘 알지요) 연예인처럼 소속사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일 찾기나 스케줄일랑 알아서 자~알~ 관리해야 한다.
--- p.7
이번 책은 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비상구’이기도 하고, 나 같은 누명을 뒤집어쓴 채 살아가는 전국의 수많은 프리랜서 작가님들의 ‘대변인’ 역할로 쓴다. 물론 억울함만 글로 쏟아낸다면 재미없겠지. 방구석에서 일할지라도 더 큰 꿈을 향해 전진하는 ‘긍정녀’의 모습도 담겨 있으니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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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글감으로 글을 쓸지 생각한다. 글감이나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스치기라도 하면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메모한다.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중요한 내용이다 싶으면 메모한다. 글쓰기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 덕질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쓰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다. 메모장을 채울 때마다, 메모장에 쌓인 글을 제대로 된 한 편의 글로 완성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 p.21
오늘 할 일을 기록한 날과 기록하지 않은 날의 차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써 놓으면 그 순간부터 ‘이 일만큼은 오늘 반드시 해야지!’라는 책임감이 생기지만, 그저 머릿속에만 두었을 때는 실행하기는커녕 마음마저 황무지가 따로 없다. 가뜩이나 미루는 걸 밥 먹듯이 하는 나인데, 적어두지 않으면 하루에 서너 가지 일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다. 오늘 할 일의 기록을 다른 말로 바꾸면 ‘나 자신을 위한 매일의 훈련’이다.
--- p.41
회사에 다니며 업무시간 외의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뭔가를 하려 했다. 잠을 줄여서라도 해야만 했다. 나를 혹사하려는 게 아니라, 당시에는 그렇게 해야만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별도 달도 잠든 밤, 한층 무거워진 눈꺼풀이 내려오려 할 때마다 차디찬 물로 세수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썼다. 오롯이 나를 알게 되고 나를 만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 p.48
지금처럼 글을 써서 책을 출간하고 강의하면서 사는 나의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로 못했는지는 책 『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먹고삽니다』에 친절하게 적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별것 아닌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을 만난 지금이 기적이다. 이름을 알리고, 많은 돈을 벌어야만 성공이 아니다. 나 스스로 행복하고 감사하다 여기면 성공을 말할 자격이 충분하다. 내가 그렇다. 풍족하진 않아도, 크게 아프지 않은 이 몸으로 감사히 하루를 건널 수 있다는 자체가 성공이다. 그러니 매일 “감사합니다”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52
아무리 내가 꿈에 눈이 멀어 책 쓰기 7주 과정에 수백만 원을 투자한 이력이 있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더는 대출 받을 수도 없거니와 사재기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고 해도 내 기분이 과연 좋을까 싶었다. 당연히 거절했다. 만약 ‘오케이’했다면, 내가 산 약 1천 5백 권의 책을 볼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게 뻔하다. 수많은 독자가 아니라 나 혼자서 사들인 책이니 기쁨을 가장한 슬픔 속에 파묻혀 살겠지. 이 사건(?) 이후로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서점에 있는 베스트셀러 중 몇몇 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버릇이 생겼다.
--- p.66
누구도 내 미래를 기대하지 않았다. 나 자신조차도. 그러다가 5년 전,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다고 여긴 ‘책 쓰는 삶’에 발을 내디뎠다. 6년이 지난 지금, 전국에 있는 여러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 제안을 받고 있다. 한 달 수입으로 따지면 회사에 다닐 때가 더 많지만(곧 추월할 것 같다), 실제로 일한 시간만 따지면 지금이 5배 이상 높다. 무엇보다 삶의 만족도가 그저 그런 하루하루를 보냈던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다.
--- p.100
듣고 싶은 수업을 찾아서 수강하던 ‘수강생’ 입장에서 이제는 전국에 있는 도서관 사서님들의 강의나 강연 제안을 받는 ‘강사’가 됐다. 이런 변화가 아직은 어색하다. 어색하다고 해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을 즐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쫙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은 그런 낯선 느낌은 아니다. 하루아침에 로또 1등 당첨금이 생긴 것도 아니고, 인기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중 지민 님이 자신의 SNS에 내가 쓴 책을 소개한 것도 아니지만, 하루하루 내게 닿는 작은 변화가 그저 놀랍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런 내 인생의 흐름이 그저 신기하고 감사하다.
--- p.101
문득 4~5년 전 일이 가슴에 떠올랐다. 커피 한 잔 사 마실 여윳돈이 없던 그때가 말이다. 주변 친구들이 한 회사에 진득하게 다니며 몸값을 올리는 동안, 반드시 꿈을 이루겠다며 자기 계발로 천만 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고, 글을 쓰며 빚을 갚으려 계약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나. 남들 눈에는 소위 ‘루저’라 불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의 내가, 미래에 책을 써서 많은 분 앞에서 글쓰기 경험과 지식을 전하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음,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모습은 예감했다.
--- p.116
나는 글쓰기에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 2011년에 처음으로 메모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있는 메모 앱을 열어 두 줄을 적은 게 전부였다. 하루하루 한두 줄을 적다 보니 어느새 서너 줄을 넘어 열 줄 이상의 글을 적고 있었다. 그렇게 5년을 쓴 어느 날, 생애 첫 책을 출간했다. 처음 메모할 때만 해도 내가 작가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책부터 써내라고 했으면 할 수 없었을 거다. 생각날 때마다 꾸준히 써서 모은 글이 있었기에 책 출간이 가능했다.
--- p.128
간절한 마음은 비단 운동 경기에만 있지 않다. 나도 이 간절함을 찾고 싶은 요즘이다. 작가로서의 간절함이 있다면 오늘 좀 피곤해도, 딱히 쓸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해도 매일 글을 쓰는 게 당연할 테다.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이 내게 왔다는 건, 행운이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목표만을 보고 나아가는 것! 그만큼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 앞에 뵈는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간절함의 끝에서, 어쩌면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지경으로 인도되는 것이 아닐까?
--- p.142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인 글로 책을 기획했다. 미리 써둔 글이 많아 초고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역시 미리미리 메모하길 잘했다. 첫 종이책은 목차를 먼저 만들고 글을 썼기 때문에 하루 10시간, 꼬박 한 달 동안 초고에 매달렸지만, 이제는 그렇게 안 한다. 벼락치기와도 같은 글쓰기로 몸이 남아나질 않아서다. 이삼일에 한 편씩 쓰는 ‘소소한 노동’이 좋다. 켜켜이 쌓인 글의 주제가 같으면 (크게 ‘글쓰기’라든지, ‘육아’라든지) 책 작업이 훨씬 수월하다. 이러니 꾸준히 글을 써서 모을 수 있는 공간인 블로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 p.168
‘지금은 유명하지 않으니까 싫고, 나중에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때는 누구를 만나든 내 본업을 밝힐래’라는 생각이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통장에 찍힌 인세 금액을 보며 기쁨의 춤을 출 일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내 글이 좋고, 많은 분께 동기를 부여하고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 무엇보다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지금이 좋고, 도서관 글쓰기 수업 및 동기부여 강연 등으로 많은 분과 삶을 나누는 요즘이 더없이 행복하다.
--- p.176
“안녕하세요, 여러분!” (잇몸 만개는 필수!)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부담스러운 미소와 활기찬 목소리에, 화면 속 13명의 수강생분이 놀란다. 예상한 결과다. 대부분 글쓰기(가 아니어도)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님들의 태도는 단아함이 기본이며, 목소리의 높낮이가 크게 구별되지 않는 평온함을 유지한다. 그와는 정반대인 내 모습에 놀랄 만하다. 아마 나처럼 “제 목소리가 걸걸하지요?” “보시는 것처럼 저는 리액션이 좋습니다. 과거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맨 앞자리에 앉아 호응을 참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지요. 하하.”라며 누구 하나 묻지도 않은 말에 오지랖 세우는 강사는 많지 않으리라. 이건 뭐,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들장미 소녀 캔디’에게 명함을 내밀 만큼의 발랄함이다.
--- p.186
딸아이를 등원시키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단지 곳곳에 있는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 삼매경에 빠진 엄마들을 본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 “저도 끼워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가뜩이나 육아는 ‘정보력’이라는데, 그야말로 ‘독고다이(스스로 결정하여 홀로 일을 처리하거나 그런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나라서 모임이 절실할 때가 있다. 엄마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도 없다. 그러나, 목구멍까지 차오른 ‘함께 해요!’라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거두기를 여러 차례. 이유는 하나다. 얼른 집으로 가서 도서관 글쓰기 온라인 수업을 진행해야 하고, 다음 책을 기획해야 하며,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할 사진이나 글감을 수집해야 한다.
--- 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