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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한마디

손가락 한마디

어울문학동인-2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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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96쪽 | 13*210*15mm
ISBN13 9791187716716
ISBN10 1187716715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울은 별이다
홀로 반짝이지 않고
밤새 손 맞잡고 깔깔대며
어둠을 무섭지 않게 하는 은하수이다

어울은 시계이다
멀리 떨어져 있다가
1년 열두 번 지나치지만
하루를 분 초 삼아
동서남북 동그랗게 동인 카페 둘러앉아
초침으로 소곤대는 벽시계이다

어울은 자갈밭이다
모난 글 뾰족한 글 뭉툭한 글 거친 글
물로 쓰다듬고 품에 보듬어
맨들 하게 윤기 내는 자갈들의 詩냇물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물 맷돌이다

어울은 안마의자이다
살다 보면 생기는
멍든 곳 아린 곳 쑤신 곳 뭉친 곳
모두 주물러 피 돌게 하는
엉덩이 뻘겋게 지져대며 수다 떨어대는
글쟁이들의 사랑방이다

어울은 물방울이다
칼바람 허리를 잘라내도
천둥 번개 고막을 찢어대도
천 길 낭떠러지 팔다리 찢어대도
가슴은 동글동글 토해내는 詩 꽃이다

어울문학동인 회장 박기을
책 속으로
---「여는 글_어울진법」중에서

어머니 잘 지내시는지요
지금 밖에는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가 요란하네요
저는 김치찌개 밥, 콩나물국, 생선조림
1년 전에도 먹었던 반찬들로 식탁을 차립니다
오늘도 밥그릇의 밥풀을 떼고 국그릇의 기름기도 닦고 있어요
어제 씻어 건조한 그릇과 냄비를 또 닦고 있어요

어느 날엔가 장롱 한 짝을 버린 적 있지요
오래 신은 신발 한 짝보다 가벼웠습니다
비어 있는 곳은 또 다른 옷과 짐들로 채워지겠지요
빈 곳은 채워지는데
저는 매번 빠져나가 빈 것으로 남았습니다
바짝 들이밀어 깎은 손톱 둘레를 핏빛 봉숭아 잎으로 물들였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가 진한 붉은 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_정유진」중에서

소리는 아무리 퍼내도 금방 차요
검은 막대기는
어찌 그리 같은 곳을 치는지요

출처가 무궁무진한 냉기를
베개 밑으로 긁어모아요

11월은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흔들린다는 건
아직 버틸 것이 있는 것이니까요

밤이 시간을 감추는 동안
안개를 뭉쳐 잠의 계단을 만들어요
생각 한 마리는 종횡무진이어서
이리저리 앞뒤가 꼬여요

초침은 퍽 퍽 거침이 없으니
슬픔이 심심해질 때까지
흠씬 매를 맞아야 할까 봐요
---「시계가 날 때리기 시작해요_임경순」중에서

이번 생에 나라는 구하지 못했으니 치킨이나 뜯자

리펄스 베이 해변 걸은 적 있는데
같은 모둠 중년 커플이 어찌나 사이좋던지
제니퍼 존스 정도면 불륜도 괜찮을 거라 했지

니들 중 모정이란 영화 아는 애 있니?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로맨스 빼면 인생은 시시하잖니

수직으로 오르는 관광열차에서 본 야경은 황홀했어
아침 민낯으로 마시는 해장술은 적나라했지만

오, 미안 오랫동안 실존과 묘사를 오해했어
이젠 고통만이 유일한 감각이야

소년 장국영도 소녀 장만옥도 사라졌지만
검은 화면 속 유덕화 가슴에 핏물이 번지면
내가 죽일 악당 하나는 꼭 살아 있었지

취두부 냄새 자욱한 시장 골목에서
성냥개비 하나 입에 물고 미래를 점쳤어
몇몇 놈팡이랑 연애도 할 거래
내 단편은 술술 읽히고 통장은 털릴 거래

뭐야, 뭐야 핵노잼 꺄르륵 꺄르륵

죽기 전에 하는 게 무용담이지만
산란이 끝난 하늘 좀 봐
터벅터벅 소멸로 가는데
얼마나 작렬한 노을이야?

그런데 닭 다리는 하나밖에 없었니
이거 너무한 거 아냐?
---「쓸쓸한 뉘앙스_김미옥」중에서

남한강으로 벚꽃이나 보러 갈까
벚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 펴고
하르르하르르 떨어지는 꽃잎 보며 멍이나 때려 볼까
벌이 붕붕거리는 소리 귓속에 쟁이며
불룩이 불러올 버찌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얼굴 있거든 전화나 걸어볼까
운 좋게 나온다는 녀석 있으면
〈달이 동동〉 집으로 달려가 주거니 받거니 해볼까
이른 달을 만지작거리다가
방바닥을 뒹굴다가
버찌의 그늘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순간
멍하니 멀어지는
꽃잎들
---「꽃멍_김민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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