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와 같은 여러 가지 고려 사항들은, 비록 한나의 기도를 다윗 왕조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도 있겠지만, 한나의 고난, 사무엘의 출생, 그리고 한나의 기도를 사무엘서에서 열왕기까지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적인 정치, 종교 드라마의 서두로 삼기에 합당하다.
--- p.34
이제 지금까지의 논의와 에슬링거의 방법론에 의지해, 우리가 논의할 부분은 사무엘상 8-12장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통치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갖게 되느냐?’이며, 이러한 논의를 우리의 현실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느냐?’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 p.62
사무엘상 8장에서 백성들의 끈질긴 요구, 야웨의 일련의 행동(해석, 승인, 요구), 그리고 사무엘의 끈질긴 거부는 서로 대조된다. 그러나 백성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사무엘의 강력한 반대 사이에서 야웨는 ‘인간 왕권‘을 승인함으로써 백성들의 손을 들어주시지만, 그것이 인간 왕권에 대한 수동적인 허용이나 적극적인 옹호는 아니었다. 오히려 본문은 필자가 차용한 에슬링거의 모델(절대적인 거부+수정된 수용, 즉 백성의 요구의 수정)을 지지해준다.
--- p.78
세상과 피조세계가 구속되어야 하듯이 인간 왕권(통치력)도 야웨 안에서 갱신되어야 한다. 백성들과 사무엘은 길갈에서 인간 통치력을 언약적으로 갱신했다. 결국 백성의 요구는 야웨의 뜻대로 관철된다. 길갈에서 행해진 ‘왕권의 갱신’은 인간 왕권에 대한 인정과 백성들과 야웨 사이의 ‘타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왕권 자체가 하나님의 재가와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 공포됨과 동시에, 인간 왕권이 제한적이며 신명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점에서 ‘타협’ 이상의 것이다. 결국 인간 왕권은 하나님이 함께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앞에서도 승인되고 집행될 것이다(11:15).
--- pp.89~90
우리는 종종 다윗의 신앙과 의로움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에게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조건적인 영속성은 사울뿐만 아니라,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북왕국의 왕 여로보암에게도 동일하게 제시된 바 있기 때문이다(왕상 11:37-38; cf. 14:7-14; 왕하 9:9).
--- p.100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본 단락에서도 하나님이 다윗을 세우시고 왕권을 유지시키시며 전쟁을 승리케 하신 분이시라는 점과 아울러, 다윗 왕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병치되거나 혼재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우리는 주로 다윗의 행위가 얼마나 정당화되고 의로울 수 있는가를 논의했지만, 화자는 여기에 나타나는 역사적 비극의 경중과는 상관없이, 다윗이 갖는 사울 왕가와의 악연, 이방 민족들과의 전쟁 그리고 다윗 왕조의 모순들을 모두 적나라하게 보여주려는 목적이 우선적으로 있는 것 같다.
--- pp.202~203
많은 사람들이 갖는 선입견과는 달리, 오히려 본문은,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사울을 격하시키거나 다윗을 격상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말해준다. 사실 사울과 다윗 내러티브들에서 나타난 왕의 선택과 유기의 원인에 대한 신적 국면과 인간적 국면은 서로 대립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병행적으로 나타난다.
--- p.207
사무엘서와 열왕기에 묘사된 다윗(과 그의 후손들)은 사무엘과 사울처럼 야웨의 통치 이상에 훨씬 못 미치는 불완전한 왕들 중 하나였다. 이러한 분석은 역대기의 경우와는 달리, 사무엘서와 열왕기의 저자들의 실제 의도가 다윗의 이상화보다는 야웨의 신적 통치의 이상과 인간 통치의 현실에 대한 극명한 대조를 독자에게 제시하려는 것이었음을 더 명확히 해준다.
--- p.213
이처럼 다윗과 솔로몬이 추구했던 ‘무조건적인’ 영원한 왕조와 성전 건축 시도들은 그 방법론상의 모순점이 내포하듯이 실패로 끝나버렸다. 비록 왕조와 성전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위한 왕들의 다양한 노력들이 승인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다윗과 솔로몬의 피의 숙청과 국제 맹약과 교역을 통한 시도를 결국 승인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집에 가두어질 수도 없고 인간의 노력으로 강제될 수 없다. 야웨의 평화와 번영은 과정과 방법론을 무시한 채 행해지는 전쟁과 인간의 수고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p.266
그 어떤 것이든지 절대 권력화 된 종교는 성속 이원론을 통해 기독교와 하나님을 (교회를 포함한) 종교적 상징물들 속에 고립 고착화시키고 더 나아가 예배의식을 세분화하며 계량화하고 절대화함으로써 신앙 공동체에 내재하는 성령과 진리와 자유의 숨통을 조이고 지속적으로 옥죌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게 해 준다.
---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