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개인의 삶은 모두 그 자신에 이르는 길 자체이다. 그 삶은 그 길에 이르려는 시도이며 그 길에 대한 암시이다. 그 누구도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자기 자신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서투른 방법이건 보다 현명한 방법이건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 누구든 탄생의 흔적, 원초적 과거의 점액질과 알껍데기를 죽을 때까지 지니고 간다. 어떤 이는 인간에 이르지 못하고 개구리, 도마뱀, 개미 상태에 머물고 만다. 어떤 이는 허리 위는 사람, 그 아래는 물고기로 되기도 한다. 그 모두 자연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도박을 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기원을 지니고 있으니 모두 한배에서 나왔다. 우리는 모두 같은 문을 통하여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들은 각자 저 심연에서 행해지는 실험처럼 각자 자신의 운명을 향하여 분투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해명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 pp.12~13
그 시절을 다시 회상해보면 나는 저절로 감동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지내던 황폐한 세계로부터, 다시 한번 오로지 혼자 힘으로 내면의 ‘빛의 세계’를 세우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으로부터 어둠과 악을 몰아내기 위해, 완벽한 빛 속에서 신들 앞에 무릎을 꿇고 머물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게다가 내가 찾으려는 그 ‘빛의 세계’는 어느 정도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창조한 것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도피도 아니었고, 어머니의 품으로, 아무런 책임도 없는 안전한 곳으로 물러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창안해 낸, 내가 스스로 간절히 욕망한 나의 새로운 의무였으며 책임감과 극기가 함께 하는 예배였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으며 계속 도피하려고만 했던 나의 성(性) 문제는 이제 이 성스러운 불 속에서 하나의 영성(靈性)으로, 하나의 기도로 승화되었다.
--- pp.132~133
“우리들 안에 세계를 단순히 품고 있느냐와 그것을 알고 있느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야. 미친 사람이 플라톤을 연상시키는 말을 뱉어 놓을 수도 있고 신학교에 다니는 보잘것없는 경건한 학생이 영지(靈智)파나 조로아스터교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연계되어 있다는 심오한 신화적 사유를 다시 생각해낼 수도 있어.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자기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은 몰라.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 그들은 나무나 돌, 기껏해야 동물일 뿐이야. 하지만 그의 내부에서 인식의 불꽃이 번쩍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비로소 인간 존재가 되는 거야. 자네는 저 길에서 만나는 두 발 달린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직립 보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새끼를 아홉 달 동안 배 속에 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인간으로 간주하지는 않겠지?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고기나 양인지, 벌레나 거머리인지, 개미나 벌인지 알고 있나? 맞아! 그들 각각은 모두 인간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어. 하지만 그 가능성을 예감할 때만, 부분적으로는 심지어 그 가능성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법을 배움으로써만 비로소 인간이 되는 거야. 그럴 때만 그 가능성이 그의 것이 되는 거야.”
--- pp.177~178
“진정한 연대(連帶)란 아름다운 거야.” 데미안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도처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진정한 연대란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각자 알게 됨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한동안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어. 지금 우리들에게 보이는 연대란 다만 떼거리 본능의 표출일 뿐이야. 사람들은 서로가 두려워서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고용주들은 고용주들끼리,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끼리, 학자들은 학자들끼리!”
--- pp.227~228
“지금 오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걸 거야. 유럽의 영혼은 너무나 오랫동안 묶여 있던 짐승이야. 그 영혼이 속박에서 풀려났을 때 처음 보이는 행태는 결코 얌전한 모습이 아닐 거야. 하지만 영혼이, 그토록 오랫동안 반복해서 호도당하고 마비되어온 그 영혼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모습이 드러날 수만 있다면 그 길이 어떤 길이건,-설사 우회로라 할지라도-아무 상관이 없어. 그때 우리들의 날이 올 것이고 우리들이 필요해질 거야. 물론 지도자나 입법자로서가 아니라?우리들은 그 새로운 법을 직접 겪지 못할 거야?의지를 지닌 인간으로서, 함께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으로서, 운명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으로서…….”
--- pp.246~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