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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적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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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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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년 03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01쪽 | 518g | 140*210*30mm
ISBN13 9791189898236
ISBN10 1189898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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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형이상학의 디컨스트럭션(탈구축) 같은 논의가 번성하였습니다.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오히려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 자체가 건축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1991년에 시작된 ANY라는 건축가 회의는 디컨 건축[Deconstructivism Architecture]을 주창한 피터 아이젠만이 주도적이었는데, 그뿐만 아니라 자크 데리다도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회의는 이후 로스엔젤리스, 규슈 유후인, 몬트리올, 바르셀로나를 거쳐 이번에 서울에서 개최됩니다. 저는 올해에 미묘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단순한 예감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한신의 지진에서 제가 감지했던 것은 탈구축deconstruction이라기보다는 파괴destruction가 더 근저적인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건축은 무엇보다 자연에 의한 파괴에 대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좀 더 말하자면, 저는 형이상학의 탈구축보다도 그 비판적 재구축, 체계적인 건축을 지향해야 한다는 예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새로이 칸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칸트와 지진」중에서

제가 데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데모로 혁명을 일으키라거나 데모로 사회를 바꾸자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데모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데모의 존재는 그 나라가 전제국가가 아니라 민주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데모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예컨대 일본의 헌법 11조에는 ‘집회?결사?표현의 자유’라고 되어 있지만 데모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데모가 집회(어셈블리)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데모과 집회를 구별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에 쓸데없는 혼란이 생기고 있습니다. 집회는 허용되지만 데모는 제한된다는 식이죠. 그런 혼란을 파하기 위해서 저는 데모나 집회라는 단어를 대신해 ‘어셈블리’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실은 의회 또한 어셈블리인 겁니다.

어셈블리란 ‘모임’이고, 일본어로 하자면 ‘요리아이寄り合い[모임?회합?집회]’입니다. 그것은 근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회에도 옛적부터 요리아이와 같은 것이 있어왔습니다. 그것이 의회(어셈블리)로 발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데모?집회와 의회는 뿌리가 같습니다. ---「일본인은 왜 데모를 하지 않는가」중에서

민회에 가는 것은 아테네 시민의 특권이며 의무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있는 곳에 나타난 다이몬이 말했던 것은 그렇게 민회에 가는 일을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아테네 시민에게는 큰일 나는 것입니다. 민회에서 활약함으로써 한 사람 몫의 시민으로 불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의 자손이 소피스트에게 돈을 지불하고 배운 것은 민회에서 훌륭히 거동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이몬이 지령했던 것은 그런 민회에 가지 말 것이며 정의를 위해 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행했던 것은 아고라(광장?시장)에 가는 일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거기서 사람들과 문답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민회가 공적인 장인 것에 대해 광장(아고라)은 사적인 장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사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민회 이상으로 보편적으로 열려진 장이었습니다. 예컨대 민회에 여성, 외국인, 노예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광장에는 모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장은 민회와는 다르지만 일종의 의회(어셈블리)였던 것입니다.
---「철학의 기원과 해바라기 혁명」중에서

저는 1990년대에 『트랜스크리틱』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칸트와 마르크스를 근본적으로 다시 읽고자 했던 겁니다. 그러나 90년대 말에 이르러 저는 그러한 비평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저의 ??트랜스크리틱??은 문학비평과 같지만, 최후 지점에서 다릅니다. 문학비평이란 말하자면 텍스트 속에서 ‘제3의 길’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90년 말의 단계에서 그런 방식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칸트로부터도 마르크스로부터도 나오지 않는 교환양식이라는 사고방식을 도입했었습니다. 나아가 저는 거기로부터 사회운동의 실천으로 향했습니다. (…)

저는 저 자신의 사상을 포함해 그때까지의 사상이 오류였다거나 허위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언제 어디서나 진리일 수 있는 언설은 없습니다. 냉전시대의 텍스트는 그 시대 속에서는 비평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그것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의 텍스트는 언제가 다시 다른 형태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저는 『트랜스크리틱』 이래로 10년 남짓 『트랜스크리틱』에서 제기한 ‘교환양식’의 문제를 발전시키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세계사의 구조』이고, 또 『철학의 기원』이며 『제국의 구조』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이후에도 계속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과 동시에 저는 과거의 작업들을 되돌아보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동과 비평: 트랜스크리틱」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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