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신학은 위대하고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 역사상 최초의 신학이며 교회의 전승과 정통 이론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남긴 방대한 작품은 그리스도교 진리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고 있는 교회의 중요한 영적 유산이다. 그 작품에 배어 있는 문체와 전개 방식 그리고 언어 표현의 다양성은 탁월하며 후대의 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교부들이 남긴 신학적 유산은 근본적인 기초로, 이후의 모든 신학이 참고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다시 그리로 되돌아가야 하는 기준이다. 그것은 어떤 개별 교회에 독점되지 않은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속한 최고로 중요한 유산이다. 교부들은 후대의 신학자들에게 탁월한 신앙의 스승이자 모범이다. 그들이 남긴 영적, 학문적 유산은 모든 시대의 신앙인들을 위해 성경 다음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완성하도록 인도하는 근본적인 규범의 역할을 해 왔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속적인 쇄신과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교부들의 가르침과 작품을 깊이 있게 알고 연구해야 한다.
---「제1부 교부 시대의 신학: 도입」중에서
“믿기 위해 이해하라”는 말을 통해 신앙의 합리성을 보증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제 “이해하기 위해 믿어라”는 말을 통해 신앙을 이해하고 심화하는 과정을 착수했다. 이는 다름 아닌 신학을 말한다. 신학은 먼저 그 대상이 하느님께서 선조들과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입을 통해서 계시하신 신비스러운 진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신학은 여타 인문 과학이나 자연학들과 구분된다. 신학이 내세우는 진리의 기준은 그것을 증언하는 자의 권위다. 그에 따르면, 권위는 신앙에 어떤 합리적인 과정도 부여하지 못하는 절대적 확실성을 부여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과 교회의 권위에 충만한 신뢰를 보냈다. 성경은 신적 권위에 힘입어 틀림없고, 참되며, 지고하고, 확실하다. 전승과 교회 역시 무류적인 권위를 향유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도적 전승을 충만하게 믿었으며, 사도적 전승의 고대성과 보편성을 주장했다. 그는 교회 안에서 ‘권위의 정점’을 발견하고 경의를 표했다.
---「제1부 교부 시대의 신학: 제2장 제국 교회 시대의 신학(4-5세기)」중에서
13세기로 들어와 마침내 신학은 ‘학문’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12세기가 자율적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배태된 세기였다면, 13세기는 그 실제 탄생과 충만한 성장의 세기이다. 신학에 한정해서 본다면, 이러한 현상은 분명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대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기술적이고 개념적인 노작 기술에 불과한 3학의 소박한 학예인 변증법으로부터 이성적 정식들을 넘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인식을 담지하는 영의 철학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고전 세계의 부흥은 13세기의 인본주의와 자연주의를 포함한다. “지성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대변되는 안셀무스적인 신학이 이렇게 확장된 것은 토마스의 업적이다. 12세기에 아벨라르두스는 ‘거룩한 가르침’에 ‘신학’(theologia)이라는 이름을 주었으며, 알랭 드 릴은 신학적 학문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명확하게 고정하려 시도했다.
---「제2부 스콜라학 시대의 신학: 제2장 전성기 스콜라학」중에서
근대 신학을 특징짓는 것은 교부 신학과 스콜라 신학을 구별하는 표징들을 구체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근대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영성적 단절은 신학적인 연구에서도 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근대 신학은 더 이상 교부 신학과 스콜라 신학처럼 단일체 또는 총체적인 하나의 기관처럼 드러나지 않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성적 체계로부터 해체시키는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교회에 타격을 가한 극적인 사건들(서방 대이교, 개신교 종교 개혁)과 이로 인해 야기된 신앙의 세계와 문화의 세계 사이에 심각한 단절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더욱이, 근대 신학의 발전 그리고 그 특징과 관련해서 거대한 종교적, 문화적 사건들은 다양한 정치적 사건들,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바탕으로 깊이 숙고되었다.
---「제3부 근대 신학: 도입」중에서
현대는 19-20세기를 가리키며, 정확히는 1789-1989년까지의 시기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프랑스 혁명에서 소련의 해체 사이의 시기를 의미한다. 이 틀 안에는 현대 세계 속에 깊이 새겨진 중요한 정치적, 문화적, 전쟁적, 과학적, 종교적, 경제적, 기술 공학적 사건들이 농축되어 있다. 이 두 세기가 흐르면서 인간이 처한 환경은 완전히 변했다. 나누어진 세계로부터 공동의 정치 조직(UN)의 지도 아래, 그리고 대중 매체의 보편적 제국 아래 지구 전체는 통합되었다. 종교 영역에서는 한층 더 큰 무게와 반향을 지닌 사건들, 곧 제1차 및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었고, 교회 일치 운동과 선교 운동이 이어졌다.
반면, 개별 국가들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국가 간 서열과 지구라는 행성 전체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지배를 위한 대륙과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지속적인 전쟁의 대립으로 인해, 기초부터 흔들리는 세계에서 그리고 국가들과 대륙 전체를 노예화한 괴물 같은 이데올로기들(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로 인해,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들과 원리들이 흔들리고 사라짐으로써 영적으로 메마른 세계에서 교회와 신학의 행보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러한 파도에서 오는 충격을 잘 견뎌 냈고, 마침내 끔찍한 폭풍우로부터 3천 년기의 새벽을 벅찬 희망을 품고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신학자들도 자신들의 작업을 통해 이러한 성공에 기여했다.
---「제4부 현대 신학: 도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