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에서 밝힌 많은 이야기들은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귀결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므로 시각에 더 중점을 두었다. 세상처럼 우리 아이들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시각예술을 강조한 것이지 그것이 결코 청각예술이나 신체예술보다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세상도 예술도 ‘아는 만큼 보인다’가 아니라 ‘알고 싶은 만큼 보인다’.
알고 싶은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그 마음이 크면 클수록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고,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행복도 배가된다. 예술교육의 목적이 여기에 있다.
--- 서문 중에서
“프랑스 오기 전에 아이가 어떤 교육을 받았죠?”
(가능한 한 짧게) “발레와 피아노.”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예? 그게 다입니까? 또 없어요?”
“예?…….” (속으로는 ‘뭘 원하는 거야?’)
“왜 이런 교육을 시키셨나요?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여서 시작했는지요?”
(더듬더듬) “여자 아이라서 이쁘고 바르게 크길 원해 발레를 시켰고, 피아노는 음악의 기본이라…….”
“음악의 기본이 피아노!”
“피아노는 치는데 왜 생명교육은 따로 안 시켰지요?”
“…….”
대한민국의 많은 엄마들은 아이가 유치원 때 기본기를 잘 다져놔야 초등학교 가서 고생 안 한다고 생각해 문화센터며 공연장으로, 미술관으로, 체육관으로 아이와 함께 순회를 한다. 늘 그렇듯이 이런 순회는 레슨이라는 짜여진 시간에 맞추어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게 정말 기본일까?
단지 어린 나이에 시작한다고 그 모든 것이 기본일 수 있을까? 기본은 나이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파리에 있는 아이 학교의 많은 엄마들과 선생님들을 통해 기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음악의 기본은 청음이지 피아노가 아니었고, 미술의 기본은 그리기, 종이접기, 만들기가 아니라 색과 공간의 분별이었고, 무용의 기본은 나의 몸을 제대로 아는 것이었다. 그렇다. 기본에서 출발했어야 했다.
--- 1장 '도대체 기본이 무엇인가' 중에서
어릴 적 난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무척 열심히 레슨을 쫓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유명 교수들의 짧은 레슨을 받고 동네 선생님을 통해 연습해 동아일보 콩쿠르에 나가 입상을 하자 난 그야말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스케줄에 매달려야 했다. 연일 계속된 예술중학교 입시 연습에 지친 어느 날 난 피아노 문을 잠그고 열쇠를 그대로 한강에 던져버렸다. 더 이상은 못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 뒤 부모님께 공부해서 대학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피아노는 단 한번도 뚜껑을 열지 않았다. 지금도 난 피아노를 잘 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너무 가혹할 만큼 충격을 받아서일까? 음감의 구별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는데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손만 안 가는 것이 아니라 음반으로 즐겨야 할 때도 가끔은 맘 편히 듣지를 못하고 누군가 물어볼까 몇 악장인지, 어떤 악기가 연주되는지 뭔가를 말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의 많은 아이들은 뛰어난 천재에 의해 희생되는 것이다. 몇몇 특별한 분야의 천재로 인해 내 아이의 진짜 천재 영역이 묻히는 것도 모른 채.
--- 1장 '1퍼센트의 천재를 위해 내 아이를 희생할 것인가' 중에서
우리에겐 미술관을 갈 때 한번에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매번 이런 모습을 대할 때마다 난 질문을 던진다. 도서관에 가서 하루에 도서관 책을 다 볼 수 있느냐고…….
도서관에 가서 하루에 도서관 소장 서적을 모두 보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왜 미술관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을 못할까? 아마도 우리가 이미지의 힘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는 그저 단 몇 초에 눈에 들어온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이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게 바로 이미지의 매력이자 힘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마력이 있다. 이 역시 이미지의 힘이다. 그러니 이미지에 홀리고 끌리는 것이 아닌가. 미술관에 갈 때도 도서관에 갈 때와 같은 마음으로 갔으면 한다. 그저 이미지를 아이쇼핑하러 간다고.
--- 4장 '쇼핑하러 미술관 간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