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
“모든 아이들은 자란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아이들은 자기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웬디 역시 그랬다. 두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정원에서 놀고 있던 웬디는 꽃 한 송이를 꺾어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때 웬디는 무척 사랑스러워 보였나 보다. 그 모습을 본 달링 부인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오, 이 모습 그대로 영원히 남았으면 좋으련만!” 하고 외쳤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오간 말은 이 한마디가 전부였지만 그 후로 웬디는 자기가 어른이 된다는 걸 알았다. 두 살이 지나면 누구든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살은 끝의 시작이니까.” ---「『피터와 웬디』 1장 피터, 모습을 드러내다」중에서
“아, 날면 얼마나 신날까.”
“바람의 등에 어떻게 올라타는지 내가 가르쳐줄게. 그러고서 우리 함께 가는 거야.”
“우와!” 웬디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웬디, 웬디. 넌 그 바보 같은 침대에서 쿨쿨 자는 대신 나와 함께 별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며 이리저리 날아다닐 수 있어.”
“와아!”
“웬디, 게다가 그곳엔 인어도 있어.”
“인어라니! 꼬리 달린 인어 말이야?”
“그것도 아주 긴 꼬리지.”
“아아.” 웬디는 감탄했다. “인어를 볼 수 있다니!”
피터는 더 그럴싸하게 웬디를 구슬렸다.
“웬디, 우린 널 철석같이 믿고 따를 거야.” ---「『피터와 웬디』3장 어서 떠나자! 어서!」중에서
눈을 감아보자. 운이 좋으면 아름답고 은은한 빛깔의, 형태가 일정치 않은 웅덩이가 어둠 속에서 떠도는 걸 가끔 볼 수 있다. 여기서 눈을 더 꼭 감으면 웅덩이는 형태가 생겨나고 빛깔 역시 더욱 선명해진다. 그리고 한 번 더 눈을 감으면 웅덩이는 곧바로 불타오를 것만 같다. 하지만 웅덩이가 불타오르기 직전 에 호수가 보일 것이다. 본토 육지에서는 딱 여기까지가 호수를 볼 수 있는 황홀하고도 유일한 순간이다. 만약 한 순간이 더 있다면 파도와 인어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피터와 웬디』 8장 인어의 호수」중에서
어어이, 어기여차, 매서운 고양이 채찍,
꼬리는 아홉 개라네, 너도 알겠지,
그 채찍이 네 등짝을 후려갈기면…….
하지만 그 노래의 마지막 소절은 결코 들을 수 없었다. 느닷없이 선실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에 노래가 끊겼기 때문이다. 비명은 처절하게 울려 퍼지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이어서 꼬끼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소년들에게는 익숙했지만 해적들에게는 비명보다 더 해괴했다. “도대체 저게 뭐야?” 후크가 소리를 질렀다. “둘.” 슬라이틀리가 엄숙하게 말했다. 이탈리아인 세코는 잠시 머뭇거리다 선실 안으로 휙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휘청거리며 나왔다.
---「『피터와 웬디』15장 결판을 낼 테야」중에서
어렸을 때 피터 팬을 알았느냐는 질문에 여러분의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실 것이다. “물론이지. 당연히 알았단다, 얘야.” 그리고 피터 팬이 염소를 타고 다녔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실 것이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딨니, 당연히 타고 다녔지.” 그럼 이번에는 할머니한테 어렸을 때 피터 팬을 알았느 냐는 질문을 해보자. 그럼 이렇게 대답하실 것이다. “물론이지. 당연히 알았단다, 얘야.” 하지만 피터 팬이 염소를 타고 다녔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이야긴 난생처음이라고 하실 것이다. 아마 할머니는 피터 팬이 염소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셨는지도 모른다. 가끔 깜빡하고 여러분을 엄마 이름인 밀드레드로 부르시는 것처럼.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할머니가 피터의 염소 같은 중요한 이야기를 잊으셨을 리는 없다. 그러니 여러 분의 할머니가 어린 소녀였던 시절에는 피터에게 염소가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므로 피터 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염소 이야기부터 꺼내는 건(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만) 조끼를 입기도 전에 재킷을 입는 것처럼 이상해 보일 것이다.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2장 피터 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