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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64쪽 | 202g | 115*190*12mm
ISBN13 9791159923487
ISBN10 1159923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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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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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산속 농촌. 나가노 8구. 넓은 농업용 작업실. 이른 아침.
머리에 자루가 씌워져 있는 한 남자가 티셔츠에 속옷, 양말 차림으로 손발이 묶인 채 바닥에 누워 있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오쿠데라 가쓰야.
남자는 한기에 몸을 떨며 꿈틀거린다. 가쓰야는 손목시계를 본다. 어렴풋이 바깥이 밝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남자는 겁에 질리기 시작한다.
해가 뜬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조금씩 조금씩 남자를 엄습해온다. 빛이 남자의 발끝에 닿자 남자는 아파하며 발을 움츠리더니 겁을 먹고 어쩔 줄 몰라 한다. 남자는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가쓰야는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남자는 도망치려고 발버둥치지만, 곧 포기하고 얌전해진다. 햇빛이 그의 몸을 감싼다. 남자는 몸이 타 죽는다.
--- p.13

가쓰야 누구야?
준코 저 경찰. 너랑 할 얘기가 있대.
가쓰야 어? 할 얘기는 무슨, 싫어!
준코 일단 너 없다고 하고 돌려보냈어. 밤 11시에 다시 오겠대. 그때까진 말을 맞춰야 해.
가쓰야 오오, 알리바이?
준코 네가 직접 말해, 정신 똑바로 차려.
가쓰야 어어, 괜찮아. 걱정 마.
소이치 시체가 발견됐어. 햇빛에 탄 시체라는 건 보면 금방 알아. 일이 커질 거야. 가쓰야, 자수해.
가쓰야 어? 뭐?
소이치 우리 마을 전체가 위험해져.
가쓰야 자수하면 저놈들은 분명히 날 죽일 거야.
소이치 지금 자수하면 어떻게 해볼 수 있어, 자수해줘.
가쓰야 안 들켜.
--- p.15

세이지 실은 아까 차로 한 바퀴 돌고 왔어요. 10년 경제봉쇄로 이렇게까지 될 줄이야…. 깜짝 놀랐어요. 쇄국 상태라도 그런대로 굴러갈 줄 알았거든요. 어떻게 이 꼴을 만들어 놔, 애향심도 없나 봐요? 하긴 뭐, 나가노 8구는 원래부터 말이 많았어요. 마쓰모토에서 사고 친 큐리오를 잡아놓고 보면, 대부분 이 동네 사람이었대요. 실제로 이 동네 망한 덕분에 우리 동네 범죄율이 낮아졌다니까요. 이왕 다시 시작하는 거, 이젠 좋은 동네로 만들어주세요.
--- p.25

준 유, 나는 말이야, 여기에 남아 있는 이유가 있어. (자료를 보고 있는 데쓰히코에게) 데쓰히코, 너도 잘 들어. 10년 만에 추첨제도가 부활한대.
데쓰히코 …추첨? 그럼 녹스가 될 수 있다는 거야?
소이치 1년에 한 번. 서른이 안 된 사람 중 단 1%만 ‘밤의 인간’이 될 권리를 얻게 돼. 원래는 100명 중 한 명꼴로 뽑히는 확률이었지. 이제는, 우리 마을에 30세 미만은 다섯 명밖에 없어. 그중에 둘이 너희들이고.
데쓰히코 …어? 그러면.
소이치 (웃으며) 뽑힐 확률이 엄청나게 높은 거지.
준코 여기서 계속 산 보람이 있네.
데쓰히코 (웃으며) 오오, 진짜? 신난다, 오오.
준코 10년 동안 잘 참고 살았다고 보상받는 거 같아.
유 밤의 인간이 될지 말지, 난 아직 못 정했어요.
--- p.31

데쓰히코 누나네 엄마도 지금은 녹스잖아.
유 나 진짜 화낸다.
데쓰히코 병에도 안 걸리고, 힘도 세고, 시력도 엄청 좋아. 최고잖아.
유 태양 아래서는 돌아다니지도 못해.
데쓰히코 단점은 그거 딱 하나잖아. 큐리오 시대는 끝났어.
유 …너 그게 무슨 뜻인 줄 알고 쓰는 거야?
데쓰히코 뭐가?
유 큐리오.
데쓰히코 아니. 왜 걔들은 우리보고 큐리오라고 하는 거야?
유 골동품이라는 뜻이야, 큐리오는. 우릴 무시하는 거야, 깔보는 말이라고. 신문에도 안 나오는 단어잖아.
--- p.65

레이코 B&D라는 카페가 있는데, 알아요?
유 아니요.
레이코 꽤 유명한데.
유 B&D.
레이코 우리한텐 ‘브랙퍼스트breakfast’, 당신들한테는 ‘디너dinner.’
--- p.73

모리시게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볼일 없어도 괜찮아요. 여긴 여러분의 땅이니까요. …그 런데 웬일이세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저희한테는 점심시간이지만. …데쓰히코 친 구 맞죠? 그 앤 정말 대단해요. 홍차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더라고요. 장인이에요. 존경스러워요.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죄송해요, 조용히 할게요.
유 차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예요.
모리시게 그게 좋은 걸 수도 있어요. 장인이나 예술가 보면, 일류는 전부 큐리오잖아요. 아, 죄송해요, 아, 그게… 죄송해요.
유 사과하지 마세요.
모리시게 저는 늘 당신들이 만든 작품을 보고 놀라거든요. 뭐랄까, 독특한 감성이… 정말 대 단한 거 같아요.
--- p.87

세이지 자외선 대책에 효과적인 효소를 발견했다는 기사도 봤어요. 해결 못할 문제는 없 어요.
가네다 그렇게까지 우리가 완벽하다고 보세요?
세이지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렇다고 우는 소리만 하고 있어야 하나?
가네다 아니, 죄송해요. 옛 친구를 만나서 태양이 그리워진 건지도 모르겠어요.
세이지 (웃으며) 아니, 음. 가네다 씨, 우리가 나이를 먹은 건지도 몰라요.
가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이지 음. 우리의 몸은 여전히 젊어요. (머리를 가리키면서) 근데 여긴? 뇌세포도 과연 여전히 팔팔할까요?
가네다 당연하죠, 뇌도 우리 육체의 일부니까요.
--- p.91

가네다 몸이 바뀌면 마음도 바뀌는 법이에요. 몸이 지치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거랑 같아 요.
세이지 난 열다섯이었어요. 눈을 떠보니까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는 거야. 경치도 사람 도 전부 다 다르게 보였어요. 어린 시절 특유의 결벽증, 그때 했던 고민들, 분노,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거지.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느꼈어요. 천성으로 사람한테 이성이 있다면, 난 모든 걸 이성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맘대로 잘 안 되던 내 감정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내 뜻대로 안 되던 나 자신을 완벽하게 지배하게 된 거예요.
가네다 전지전능해진 느낌이었겠네요.
--- p.92

세이지 30년이에요. 우린 큐리오와 공존할 수 있다고 믿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관 리가 필요한 집단이란 걸 알아요. 그들은 너무 감정적이고, 하여튼 안 돼, 말이 안 통해.
가네다 음… 녹스도 완벽한 건 아니에요,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죠. 그래도 차별한다는 걸 자각하고 그런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아직 이성적인 거예요. 녹스는 전지전능 하다는 선민의식이나 특권의식을 갖기 쉬워요. 정 걱정되시면 상담치료 받아보지 그래요?
--- p.98

모리시게 잠깐, 잠깐, 잠깐. 너 수갑 끊을 거야, 아니면 내 손목 자를 거야?
데쓰히코 당연히 수갑이지.
모리시게 그럼 잘 좀 맞춰봐.
데쓰히코 알았어.
준코 시간 없으니까 정 안 되면 손목이라도 잘라서 도망가야지. 뭐, 너희는 강하니까.
모리시게 아니요, 잠깐만요, 저희도 그렇게까지는 안 강해요.
데쓰히코는 손도끼를 다시 휘둘러보지만, 위치 선정이 어렵다.
준코 뭐하니? 이리 줘봐.
준코는 손도끼를 받아들고 휘둘러본다. 데쓰히코는 우산을 펴 모리시게를 가려준다.
모리시게 (우산을 보고 웃으며) 고마워, 근데 이걸로는 소용없어.
준코 아, 날이 나갔네. 생각보다 이게 단단하구나.
데쓰히코 빨리 좀 해! 해 뜨잖아.
--- p.110

모리시게 제발요. 햇빛 쐬는 것보단 손 잘리는 게 회복이 빨라요.
준코 아, 그래도.
모리시게 제발요. 빨리!
준코 ….
모리시게 빨리요! 저 녹스라 괜찮아요.
준코는 도저히 모리시게의 손목을 자를 수 없다. 준코는 데쓰히코를 본다. 데쓰히코는 자기가 하겠다는 뜻으로, 수건으로 입을 막는다. 데쓰히코는 준코에게서 손도끼를 빼앗아 들지만, 망설인다.
모리시게 잘라! 빨리!
--- p.118

세이지 그 앤 힘들어했어, 자기가 큐리오라는 걸.
레이코 내가 도와주고 싶어.
세이지 어리석은 게 죄라고 하고 싶진 않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범죄나 다름이 없어. 그 앤 그 사실을 깨달았어요.
가네다 그건, 그들 문제예요.
레이코 너무 잔인하네. 그런 동네에 그 앨 그냥 두자는 거야?
가네다 그 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요.
세이지 극복한 결과가 우리잖아요. 가네다 씨, 이제 와서 왜 이래?
가네다 정답이네요.
세이지 그 앨 구해줘야죠.
레이코 큐리오는 질병이야, 약으로 고칠 수 있어.
가네다는 다른 방으로 가서 유를 본다.
가네다 왜 태양을 버리려고 하지? 이런 짓이야말로 병이야.
--- p.148

유는 팔을 걷고, 가네다는 주사기를 든다. 레이코가 겁을 먹은 유를 달래준다.
가네다, 백신을 주사한다.
가네다 걱정 마. 레이코도 준비해야지. 채혈할게.
레이코 그럴 필요 없어.
레이코는 유를 일으켜 세워 뺨을 만져주는 듯하다가, 갑자기 입을 맞춘다. 유는 깜짝 놀라 저항하지만, 레이코는 힘으로 그녀를 누른다. 두 사람이 떨어지자, 둘 다 입술 주변에 피가 묻어 있다. 이 ‘피의 키스’로 레이코는 그녀를 감염시킨 것이다.
레이코 이거면 됐나?
세이지 (가네다에게) 미안해요, 이렇게 해주고 싶었나 봐.
레이코는 유에게서 떨어져 손수건으로 입을 닦는다.
유의 호흡이 가빠진다. 그리고 숨이 끊어질 것처럼 기침하기 시작한다. 세 사람은 유를 지켜본다.
가네다 많이 힘들 거야. 침대에 묶어둬.
유는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고통스러워한다.
레이코와 세이지는, 마치 갓 태어나 우는 아기를 보듯 유를 내려다본다.
바닥에서 몸부림치던 유가 레이코를 덮친다. 레이코는 그것을 받아준다. 유는 레이코와 세이지의 품안에 안겨 기절한다. 두 사람은 그녀를 안고 다른 방으로 간다.
--- p.149

소이치 해가 뜨고 져야 하루가 가는 거야.
가네다 우리한테는 달이 있어.
소이치 달은 태양 빛이 반사되어서 빛나는 거야. 그거 알아?
가네다 …정답. 우린 너흴 이길 수가 없구나. 도둑이나 해적끼리는 사회를 만들 수 없어. 아무리 영웅처럼 보여도, 결국은 다 기생충이야.
소이치 맞아, 그러니까 우린 이제 더는 너희한테 기대지 않을 거야.
가네다 그래. 너흰 자립할 수 있어. 소이치, 너한테만 알려줄게. 녹스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 못할 거야. 불가능해. 출산율이 오른다, 태양을 극복할 방법도 알아냈다, 신문에선 그 러는데 다 꿈같은 얘기야. 언론은 진실을 감추고 있어. 녹스로 태어나는 아이는 1% 밖에 안 돼. 나머지는 전부 큐리오 아이를 사 오는 거야. 녹스는 자립할 수 없어. 도 둑은 너희가 아니라 우리야.
소이치 …그래도, 지금은 너희 시대야.
--- p.154

가네다는 겉옷을 벗더니 소이치 앞에 무릎을 꿇는다.
가네다 미안해.
소이치 ….
가네다 정말 미안해.
소이치 왜 그래? (웃으며) 일어나.
가네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면목이 없어!
소이치 …난 괜찮아.
가네다는 몸을 일으킨다.
소이치 집에나 가. 곧 해 떠.
가네다는 재킷을 던져놓고 넥타이까지 풀고 신발을 벗더니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소이치 뭐 하는 거야?
가네다 옆에 있어 줘. 여기서 해가 뜨는 걸 볼 거야.
소이치 (웃으며) 너 미쳤어?
가네다 너랑 같이 보는 아침 해를 내 인생의 마지막으로 삼고 싶어.
소이치 (웃으며) 농담도 참.
가네다 태양을 등지고 살면 안 돼.
소이치 돼, 돼. 그만해, (웃으며) 이러는 거 민폐야.
가네다 소이치, 녹스는 질병이야.
소이치 …내가 처음부터 그랬잖아.
준코는 웃기 시작한다.
가네다는 땅에 대자로 눕는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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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태양을 등지고 살아보겠다는 발칙한 상상.
작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떠올렸을까.
돌이키기엔 너무나 멀리 갈라져버린 인간들,
그 사이를 메워보려 한 것일까.
저 잘난 척 떠들어대며 달아나도
결국 해가 뜨고 지는 하루를 벗어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아니,
우리 모두는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안도감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강렬하면서도
나른하고 따듯한 포근함을 주는 작품 『태양』
- 김정 (연출가, 「태양」 한국 초연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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