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지 않은 짓을 하자고 생각했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짓을. 거부감이 느껴질 만한 짓을. 설령 나 자신까지 불쾌해질 만한 짓이라도. 내 존재의 경향이라는 것이 있다고 치고, 그것과는 반대되는 짓을, 때로는 무리를 해가면서라도.
--- p.12
“마지막으로 한 가지. 그 사나에라는 여자, 실은 유명한 사람이야.”
나는 다시 남자의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당신, 그 여자와 같은 중학교에 다녔지? 아, 미안해, 실은 어제부터 당신들을 내내 미행했거든. 그 여자는 학기 도중에 전학을 왔다가 곧바로 다시 전학을 갔을 거야. 그 여자, 중학생 때는 어머니 쪽 성씨를 썼을걸? 소문, 들은 적 없어?”
남자가 계산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히오키 사건, 알지?”
“예?”
“그 여자가 현장에 남아 있던 유가족이야. 그 미궁 사건의.”
--- p.27
언제부턴가 묘한 예감을 품게 되었다. 딱히 변태적인 성향 따위는 없을 텐데도, 나는 하고 싶지도 않은 바보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파멸해 버리고 말 것 같은 예감. 몸을 한없이 무겁게 만드는 우울에 벌레에 파먹혀 들어가는 사과처럼 모든 것을 잃고 언젠가는 목을 매고 죽어버릴 것 같은 예감. 나 자신의 성격과 앞으로 예상되는 내 인생을 생각했을 때,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 내 인생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해 본다. 나답지 않은 짓만 골라서 하다 보면 조금쯤은 그런 예감을 한참 나중으로 미룰 수 있지 않을까, 멍하니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평소 같으면 회피했을 유형의 상황을 자진해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 p.56
히오키 사건의 현장 사진. 압도적인 색채에 나는 놀랐다. 거실에 아로새겨진 무수한 종이학. 하양이며 빨강, 파랑, 노랑, 초록, 검정의 종이학. 그 속에 매몰되듯이 세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장식장에 엎드리듯 쓰러진 파자마 차림의 남자. 그가 히오키 다케시일 것이다. 사다리를 올라가던 중에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듯한 자세였다. 소파 옆에 마찬가지로 엎드려 있는 비쩍 마른 소년. 아들일 것이다. 그들 주위의 종이학은 배색이 약간 침침하게 낮춰져 있다. 창문 근처에 여자의 벌거벗은 몸이 있었다. 입을 조금 벌리고 죽어 있었다. 아내 유리라는 여자. 나는 숨을 죽였다. 분명 여자는 아름다웠다.
--- p.90
“10년 후…….”
그녀가 돌연 입을 열었다.
“10년 후에 다시 만나러 온다고 했어.”
그녀의 눈이 왠지 내게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닐 텐데도. 나는 숨을 죽였다.
“그건…… 범인이?”
“응.”
심장의 두근거림이 빨라졌다.
“근데 10년이 지나도 나타나지를 않아. 무서웠어. 올 거라면 와도 좋아. 오지 않는 게, 그 유예가, 괜히 더 무서워. 나한테 말했었어. 네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때는 아름답게 죽여주겠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해져야만 해. 하지만 행복했던 적이라고는 없었어. 그런데도 오질 않아. 언젠가 틀림없이 올 거면서.”
--- pp.104~105
다시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기즈카가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상큼한 표정, 센스 있는 옷차림. 그의 연하장은 항상 아이들 사진이었다. 저렇게 되고 싶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런 선량한 인간이 되어보고 싶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대가 불임 치료를 받건 말건, 독신이건 말건, 태연히 자신의 행복을 흩뿌리는 선량한 인간. 그에게 딱히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는 아무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행복한 인간은 때때로 난폭하고 지독하다.
--- pp.117~118
“분명히 말해서, 지금 내가 얘기한 그런 추리 혹은 그 비슷한 추리 이외에 다른 건 생각할 수도 없어, 이 사건은……. 근데 말이야. 그런데도 이게, 들어온 흔적이 전혀 없어. 범인이 들어온 흔적이, 어디에도……. 실은 그 집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모든 장소에 방범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어. 현관, 뒷문, 작은 마당으로 통하는 유리문, 부부 침실의 창문에까지 모조리. 그 밖의 다른 창문들은 모두 방범창이었어. 창문 바깥쪽에 쇠창살로 된 철조망이 쳐저 있어서 그걸 절단하지 않고서는 들어올 수 없었어. 물론 그걸 잘라낸 흔적은 없었어.”
--- pp.126~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