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보면 알게 될 거야. 그건 그렇고, 너한테 보인다는 단어 얘기 좀 더 해 줘. 그 단어들, 막 손으로 찔러 볼 수도 있어? 발로 찰 수도 있어? 잡을 수도 있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비누 방울을 손에 쥘 때처럼 금방 사라져. 사라지지 않는 동안에는 예뻐. 늘 다른 모습이야. 깜빡깜빡 빛날 때 도 있어. 불꽃처럼 밝을 때도 있고. 그림자일 때도 있어. 적어 두고 싶은 데 내 파란 공책에 자리가 없으면 신발에 적어 둬.” “보여 줘!” 조나의 초록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는 신발 한 짝을 벗으며, 제발 내 보라색 줄무늬 양말이 죽은 스컹크처럼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조나는 내가 신발에 적어 놓은 단어들을 살펴보았다. “가끔씩은 모여서 나타나기도 해. 구름처럼.” 나는 발꿈치 쪽을 가리켰다. “단어들이 막 뭉쳐 있어서, 서로 떼어 내고 고르느라 좀 고민을 했어.” --- p.82
“제일 자주 보이는 단어는 뭐야, 펠리시티?” “외로움. 항상 보여. 대체로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마트에서나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나 사람들이 잔뜩 모인 곳에서는 그 단어가 항상 보 여. 이상하지 않아?” “이상한 게 아닐 수도 있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 같아. 지금 내 주 변에도 단어가 보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웃음이 터질 뻔했다.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단어야. 어떤 사람한테서도. 스플렌디퍼러스. 이게 네 곁에 있는 단어야. 노란색에 다리 여섯 개가 달렸고 네 팔을 기어 올라가고 있어.” “스플렌디퍼러스?” 보이지 않지만 조나는 팔을 내려다보았다. “마음에 드는데. 그 단어한테 사라지지 말고 좀 있으라고 말해 줄래?” 그런데 조나가 그 말을 하며 나를, 내 얼굴의 주근깨와 내 입술의 웃음과 내 눈 속의 슬픔을 똑바로 보았다. 조나의 초록색 두 눈이 레이저였다면 나를 뚫고 지나갔을 것이다. --- p.86
조나는 내가 듀얼에 나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신이 나 하겠지.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티스푼 하나 만큼의 행복도 끌어모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내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하고 무거웠다. “나 기적이 필요해, 프래니 조.” “아멘! 큰 기적을 주세요.” 프래니 조는 매트리스가 트램펄린인 양 그 위에서 방방 뛰고 있었다. “그래, 커어다란 기적을 달라고 기도해 줘. 그리고 급하니까 서둘러 달라고도 기도해 줘.” 내가 알기론, 기적은 빨리 나타날 때도 있지만 우리 앞에 한참을 걸려 도착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우린 그 기적이 나타나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기적은 커다랗고 화려하지만, 어떤 기적은 달콤하고 단순하다. 환호성을 지르고 싶어지는 기적도 있고, 노래가 부르고 싶어지는 기적도 있다. 그리고 어떤 기적, 최고의 기적은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나타난다. --- p.118-119
언젠가 내가 블랙베리 선라이즈 아이스크림을 맛볼 용기가 생긴다면, 그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기억이 바로 이 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퍼지고 있다. 우리가 걸어가는 숲길에는 반딧불이 깨어나 깜박거린다. 쓸쓸한 삼촌의 휘파람 소리를, 참 우아하고 멋스럽게 구불구불 올라가는 이모의 담배 연기를 기억하고 싶었다. 자꾸 구름을 올려다보는, 나무 사이를 휙휙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고 미소 짓는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날 우리 모두가 그림자로, 햇빛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을 절대 잊고 않고 싶었다. 콩닥거리는 가슴과 별 같은 ‘어쩌면’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을……. 부러진 우리 날개의 소리 없는 날갯짓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을……. --- p.153
옛날에 미드나이트 걸치는 비밀의 장소였습니다. 높이 솟은 산들이 이 마을을 숨겨 주었죠. 산을 둘러 흐르는 강 역시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 주었고요. 그 강 주변에 높이 자란 나무숲은 마을의 비밀과 노래들을 모두 나뭇가지로 붙들어 새어 나가지 않게 했습니다. 마을은 이 세상 이 모르는 비밀이어야 했죠. 마을 사람들에게 마법의 피가 흐르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어떤 가족들에게는 다른 가족들보다 더 센 마법이 있었죠. 아주 화려한 마법이 있는 가족 중에 트리플렛 가족이 있었어요. 오웬 트리플렛은 유리병 안에 별빛을 가둘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 병 속 에 가둔 별빛을 관광객들에게 팔다가 문제가 생겼지 뭡니까. 별빛이 결국은 병을 비집고 탈출해 하늘로 돌아가 버리니 사람들은 그걸 돈을 주고 사고 싶어 하지 않았던 거죠. 별빛은 가두어지고 길들여지는 일을 끝 내 받아들이지 않으니까요.” --- p.215
조나가 ‘심술궂은 진의 모카 코코넛’ 맛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 때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가 집 안에 흘렀다. 그 소리에 문득 세상에 음악보다 나은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가 없고 무게도 없는 자 장가 바람 같은 음악, 악보와 현에서 솟아 나와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음 악. 스레드베어 형제의 음악이 이곳에 있었던 시절 왜 사람들이 걱정 근심을 밀어 둘 수 있었는지, 왜 이곳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곳이었는지 다 알 것 같았다. 사실 토스트가 피아노를 친다고 했을 때 나는 [징글벨] 같은 걸 두드릴 줄 알았다. 그런데 토스트가 어린 모차르트였을 줄이야. “꼭 피아노로 햇빛을 연주하는 것 같아. 안 그래?” “토스트는 뭐든 연주할 수 있어. 꼭 말로 하길 두려워하는 이야기를 전부 피아노로 표현하는 것 같아
--- p.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