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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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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42g | 124*205*20mm
ISBN13 9791167241108
ISBN10 116724110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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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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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이 풀 밟으며 맨발로 걸어왔네
들쥐처럼 숨어들던 햇꼴 안막
고사리 꺾던 어린 손
봄마다 철죽꽃 풋 피 쏟아
멧부리 타오를 때
관솔 기름 흐르던 서낭당 골짜기
똬리솔 몇 그루 오스스 오스스 떨고 있네
온통 땜질 당한 들판 구릿빛 식솔
칡넝쿨 핏줄 감아 여름 해 키우고
소쩍새 피꺽피꺽 울섭 매달던 동네 우물가
일구덩이 갈퀴 손 다 모여있네

찌꾸리 구름 먹고 내리꽂는 들길
고들빼기 풀캥이 칭얼대던 어린 동생
찔레순 꺾어 먹고
찔레꽃 하얗게 피워 대던 밤
애장 골짝 생솔가지 덮인 채
두메자운 되었네
철다리 건너 솔가리 숲 터지던 날
잘려나간 손가락의 아픔보다
고픈 배가 더 무서웠던 아이
붉게 물든 맨발의 어미 등
베등거리 등짐 골 팬 두 어깨
호롱불 너머 벙어리 달 둥둥 떠가네
---「지평리 사람들」중에서

내일 비가 온다는 면사무소 방송을 들은 아버지
다 거두지 못한 벼 비에 젖어 타작 날짜 늦어질까
급한 마음에 저녁 먹고 가깝지 않은 말미 논으로 갔다
청명한 밤하늘 자연의 실체를 낱낱이 비추는 대낮처럼
밝은 달빛 산골짝 다랭이논
우리에겐 너무 소중한 수확물 겨울 양식이고 희망이다
작은 풀벌레들 사르르 울고 사방은 조용하다
달빛 등지고 볏단을 묶는 아버지와 곰탱이
넓은 벌판 조촐하고도 평화로운 풍경 속
입이 더 바쁜 엄마 손은 느려 허우적거리는데
나는 볏단을 들고 재빠르게
논둑을 오르는 발걸음 신이 났다
집에선 말썽꾸러기지만
지금은 한몫 단단히 하는 일꾼이다
달빛에 땀이 흐른다
부대 옆 탄약고를 지키고 있는 군인 아저씨
새벽 교대병을 기다리며 서 있다
들국화 향 앙팡진 새벽안개 속 아득하게
감싸오는 피곤함을 안고
우리 네 식구 논둑길을 따라
달빛을 밟으며 소복소복 걸었다
---「달밤」중에서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나는 어두운 마음으로 교무실에 갔다
선생님이 조용히 말을 한다
너는 기성회비를 두 달 밖에 안 냈더구나
10개월 치는 선생님이 내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알았니?
그리고 나는 전근 가거든 선생님 없어도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 응?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나를
선생님은 안쓰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선생님이 육성회비 내준 것도 고맙지만
전근 간다는 말에 더 눈물이 났다
이영자 선생님 학교에서 제일 멋쟁이
한 달에 50원 하는 기성회비 3.4월 딱 두 번 내고
10개월분 500원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기성회비를 빨리 내라고
1년 내내 한 번도 나를 교무실로 부르지 않았다
찢어지고 밑바닥이 다 닳은 코고무신 서툰 바느질로
꿰매 신고 옷도 다 떨어지고 헤져 살이 보일 정도였다
가난이란 거 맑고 깨끗한 어린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수치심과 상처를 만들어 준다
추운 겨울 맨 앞자리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를
난로 앞에 앉게 했던 오학년 겨울
따뜻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선생님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
---「기성회비」중에서

윗말 정순네 할머니 동네 마실 나갔다 그만 미군을 만났는데
무작정 샥시 샥시 하며 쫓아오더란다
정순 할머니 무서워 뛰다 뛰다 숨이 차
쫓아오는 미군을 향해 돌아서서
야! 이 호랑말코 같은 놈아! 니네는 애미 애비도 없냐!
늙은일 왜 쫓아와! 하며 웃저고리를 확 걷어 올리자
축 늘어져 쭈글쭈글한 할머니 젖가슴을 보더니
오~ 노노 하며 도망가드란다
또 아무개 집 며느리 미군이 샥시 샥시 하며
쫓아오는 걸 보고 도망치다
길옆 밭에 겨울에 꺼내먹으려고 묻어 놓은
무 구덩이 짚으로 막아놓은 입구 짚 뭉치를 열고
급한 대로 머리만 넣고는 발을 버둥거리자
역시 미군이 노! 노! 하며 갔다고 한다
피난길에도 미군들이 젊은 여자만 보면
샥시 샥시 하며 덤벼들었다고
그래서 아버지는 여동생에게 남장을 하게 하고
얼굴엔 일부러 검댕이 칠을 해 피난길을 갔다고 한다
피난길이든 동네서든 미군들한테 욕본 사람이 많다고 한다
---「샥시 샥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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