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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불가능한 세계

아무튼 불가능한 세계

시인동네 시인선-19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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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88g | 127*203*20mm
ISBN13 9791158965792
ISBN10 1158965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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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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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리본 하나를 달아둔다 해서 위로가 제작되지 않는다.

앞으로 수많은 사건이 갱신될 것이고
이듬해 너는 공원 벤치에서 시를 읽어볼 수도 있었겠다.

훗날 이태원 골목은 그냥 이태원이 될지 모르고
잊히기 싫은 너희들도 언젠가는 잊혀갈 거다.
신문 1면에는 무한히 주가, 금리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릴 것이다.

가라앉은 배처럼 끌어올릴 것조차 없다.
넌 여럿 겹쳤으나 외로울지 모른다. 겹이 되지 못한 생각마다 나도 외롭지만 이 골목은 지워버릴 수도 없고

수백 년이 흘러도 이태원은 이태원일 텐데 오래 슬프지 않겠니?

아무 일 없는 하루가 흘러갔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미리 수백 개의 검은 리본을 풀어두었다는 것이다.

매일 지나던 골목 불현듯 립스틱 뭉개지는 이 참극에 너에게 죄 없다는 말 어쩜 당연하다지만

나는 한다.
---「이태원을 어떻게 걸어다닐까」중에서

2550년 그는 시계 없어도 손목을 자주 올렸고, 안경을 두고 나온 날에도 관자놀이를 쓸어 올렸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는 불안하지 않아서 이런 것들이야말로 인간만이 실감하는 환상통이라 생각했다. 2555년 약속장소에는 AI 시인이 작품집을 갖고 서 있었다. 그(미래적 관점에서 ‘그’라 불러 본다면)가 앉아 있던 곳은 모두 명소가 되었다. 식물들은 2580년에도 아직 존재했지만 인간과 함께 모두 그루터기가 되었다. 우주의 시는 일종의 신앙이나 현학적인 의식으로 변모했다. 인간들은 한때 이것을 있다―없는 변증이나 환치로 불렀다고 한다. ‘-nmlamcw eigo3, alkf0 @kffj of eikgm.!#**’ 이 문장은 2620년 올해의 감동적 문장으로 손꼽혔고 2623년, 재앙을 예언하는 새들이 둔치 원목에 머리를 꽂고 있다. 동년 AI 시인 포에고(Poet-ego)의 이름을 따 포에고문학상이 제정되었다. 그때 나는 불안해지는 알고리즘을 따라 안경을 닦고, 기계와 사랑에 대한 것들을 써보려 했다.
---「사라진 미래의 서」중에서

꽃말을 정해줄게
이곳은 사철 우기뿐이고 음습한데

내게 건너오는 무모한 너에게
사막의 돌풍이라거나
소침함의 정복자라 부르는 것도 가능하겠지

이름을 적어내려 앨범을 켠다
너에 대해서는 그 어떤 단어를 그러모으는 것도 불가하니
색채를 묘사하거나
조그만 오브제를 끌어놓는 것만이 가능하겠지

우리 앞으로 사진 많이 찍으러 다니자
네 컷 사진 디에스알 뭐든

정원사의 부드러운 가위질,
잎등을 타고 내리는 하늘의 점들
두 점이―
---「일랑일랑」중에서

영화는 이렇게 시작하겠지.
터지지 못한 옥수수 알갱이가 팝콘 밑에 깔려 있고
두 사람은 둔치 강변에 앉아 있다.

스케이트 보더나 바이커 모두 지긋지긋해. 애인은 영사기를 돌린다.

사진이 현상되듯 비가 오네,
바닥을 치는 모든 박수로 인해 뺨이 달아오르는

아름다운 무성영화 이 소리는 무엇일까. 몸을 스치는 부스럭거림. 빗길을 걸어갈 때 모든 추락을 피하는 소음과 살을 만지는 비 아프고

건물 입구에서 어깨 젖는 구세주를 기다리다
때론 너무 늦는 저녁도 있었지.

이렇게 한 사람으로 인해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네.
필름은 돌아가고
아무튼 불가능한 세계
이 세상에 대해 적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하다가

뭉개진 비를 파랗게 그려봐도.
흰 옷을 입고 걷는 애인아. 세상에 파란 비는 없어. 물은 몸을 검게 물들인단다.

나도 알아 몰랐겠니.
장우산은 접어둬 검은 꽃이 입 닫는 것처럼
끈적한 묵화가 점점 흘러내리듯

괜찮아 다정한 애인이시여
주머니에 파란 물을 담아주세요. 금붕어가 흘러나오고 비늘의 쓸림, 근육의 뒤틀림과 필름의 찢어짐. 이런 길을 걷는 것도 괜·찮·겠·네.
---「파란 행복」중에서

되어볼 수 없으나 내 몸을 관통하는 한동안, 너 이렇게 아팠고 이리 어지러웠구나. 침대에 누워 들뜬 마음을 펄펄 끓인다. 기뻐, 이마엔 물수건도 두지 않았고 그저 1온스의 미온수만 머그컵에. 나도 이제 홀짝이는 네가 되었고 훌쩍이는 일부분을 이해하고 있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 했었으나 서럽고 기뻐. 쌀쌀한 집에서 우리는 가득 찬 만추를 건너가고 있었다. 그맘때 좋아하는 마음은 얼마나 깃들고 괴었다가, 비로소 잠기는 끝끝내입니까? 창을 할퀴는 추체험(追體驗)은 이미 가을에 대한 경험이 아닌데
---「유행성 독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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