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흙투성이, 주름투성이의 투박한 손으로 쌈지에서 담배를 꺼내고, 그것을 정성 들여 말고, 불을 댕기고…… 그 모든 행위에는 이미 신성함이 내포되어 있었을 겁니다. 이런, 제가 신성이라고 했나요? 그렇지만 인간이 소중하게 여겨온 것, 인간이 그토록 의지하여온 것에는 그만한 신성함이 있지 않을까요?
[……]
인간은, 아니 인류는 늘 무엇엔가 기대어 살 것이 필요했을 겁니다. 에덴의 이브에게는 사과가 필요했고, 신대륙을 정복한 사람들은 담배가 필요했고, 비탈진 밭을 일구던 아낙네들에게는 한 자락 노래가 필요했을 겁니다. 어지러운 속도감을 견뎌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도 술이나 담배가 필요하겠지요. 그럴 겁니다. 인간은 무엇엔가 기대어 살 것이 필요할 겁니다. 그걸 이해했어야 했는데…… 제가 진작 그 행위에 깃든 소중함을 이해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 p.56
그러던 어느 날, 발견했지요. 제가, 제가 남편의 담배를 꺼내 이렇게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요. 가슴 안에 딱딱한 것이 쌓여 온몸이 돌덩이처럼 차고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다고 느껴지던 때, 그때 담배를 피웠을 겁니다. [……] 지금은 담배를 피울 때마다 온몸의 맥이 낮은 곳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 그 느낌 하나만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괜찮은 일입니다. 온몸의 맥이 가라앉으면 견딜 수 없는 자괴심이나 외로움이나 배고픔이나 추위…… 그런 모든 일들이 그 맥처럼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모든 긴장이 이완되고, 모든 갈등이 제풀에 풀려나가죠. 바로 그걸 겁니다. 담배가 인간을 붙드는 힘은.
--- p.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