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교육 별곡인가? 새로 쓰는 국민교육헌장인가?
“학교와 집 사이는 후다닥 걸어서 가면 단 오 분 거리. 하지만 나는 다섯 시간이나 걸린다. 수학은 영재 수학 국어는 독서논술 영어는 웰컴 투 영어 나라 컴퓨터 워드 3급 태권도 품새 심사, 학교와 집 사이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아동문학가 김은영 씨가 쓴 『학교와 집 사이』라는 시다
이따금 동시집을 읽다 보면 언제는 아이 마냥 웃다가, 어떤 때는 마음이 짠 해온다. ‘하교보다 등교가 더 즐거운’ 모두가 행복한 학교가 어디 없을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은 20세기 교육정책으로 아직도 19세기 교실에 머물러 있다. 교육이 국민을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교육을 걱정하고 있다. 여기에 답을 주는 책이 나왔다. ‘슬로스쿨@애플스쿨’은 철학박사 한숭동 교수가 오래전부터 고뇌했던 '대한민국 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해답이다.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은 1806년 나폴레옹에게 대패했다. 프랑스와 굴욕적 강화조약을 맺고, 독일국민은 절망에 빠졌다. 패전 후 암울한 시기에 강인한 철학자로서 신념과 열정을 가지고 독일 국민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준 사람이 피히테(Fichte:1762∼1814)다. 그는 ‘독일국민에게 고함’을 통해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무엇보다 ‘새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의 논의는 바로 그곳에서 출발한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사상가요, 교육자인 존 듀이의 교육철학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새교육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새교육운동’은 광복 이후 1950년대 초반까지 처음으로 시도된 교육개혁운동이었다. ‘슬로스쿨@애플스쿨’은 존 듀이의 학맥을 잇는 저자가 가슴으로 쓴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권리장전이다.
‘슬로스쿨@애플스쿨’은 한마디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는 창의융합교육을 말한다. “우리 아이들을 들로 산으로, 박물관·미술관으로 내보내 창의적 사고와 재능을 키워주고, 땀 흘려 운동하고 편안히 쉴 시간도 줘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이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할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교육에도 ‘느림’의 미학,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슬로스쿨@애플스쿨’은 5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는 ‘대한민국 0교시’, 2장 ‘대한민국 교육별곡’, 3장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이야기’, 4장 ‘다시 쓰는 교육학 개론’, 5장 ‘2020 교육 오디세이’. 어느 부문을 먼저 읽든 ‘한숭동(韓崇東)의 대한민국 새교육설명서’라는 부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철학, 역사, 인문학을 통섭하며 교육에의 담론을 쏟아낸다. 책을 덮을 즈음 “올바른 교육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패망하고, 올바른 교육이 존재하는 나라만이 번영한다”는 교육철학자 피히테의 쟁쟁한 사자후를 다시 한번 듣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 책의 서평을 쓴 나태주 시인은 평생을 초등학교 교단에 몸담았다. 시인은 “토끼와 거북이 강아지 중에 누가 1등이냐를 따져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 교육은 토끼와 거북이 강아지 할 것 없이 다 일렬로 세우기보다는 음악은 음악끼리, 미술은 미술끼리, 체육은 체육끼리 여러 줄 세우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입시제도가 해방 이후 30번이나 바뀌었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것은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는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과연 ‘슬로스쿨@애플스쿨’은 길 위의 교육 별곡인가? 새로 쓰는 국민교육헌장인가? 이 질문에 윤여준 전 장관은 답한다. 이제 교육부문에서도 학교 소비자 중심의 교육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시장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다. 교육을 시장으로 본다면, 교육 당국은 생산자고 교사, 학생, 학부모는 소비자다. 교육은 상품은 아니지만, 이미 교육소비자는 무상급식 화두와 같은 정치적 담론을 생산한 적이 있다. 정치는 현재를 바꾸는 것이지만, 교육은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교육에는 좌도 우도 아닌 진화적 교육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단지 교육은 끊임없이 진화할 뿐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교육학원론이나 인문학개론 차원이 아니다. 새로운 ‘사과나무’ 한 그루를 먼저 심는 심정으로 철학적 사유를 통한 대한민국 교육을 성찰하고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교육의 길이 무엇인지를 묻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 책에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갈증을 풀 수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