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백작을 알고 있는지, 백작의 성 이야기를 뭐든 해줄 수 있는지 묻자, 두 사람 모두 성호를 긋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출발할 때가 다 되어 이들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 질문할 틈은 없었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의아했고 마음이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 출발 직전에 여자 주인이 내 방으로 오더니 아주 불안한 모습으로 말했다. “정말 가야 하나요? 나이도 젊은 분이 정말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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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왼쪽 먼 곳에서 푸르스름한 불꽃이 반짝였다. 마부도 그 불꽃을 보았다. 그는 바로 말들을 세운 다음 마차에서 뛰어내리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으르렁대는 늑대 소리가 더 가까이 들렸다. 그런데 마부가 다시 불쑥 나타나 말 한마디 없이 자리에 앉았고 마차는 다시 달렸다. 돌이켜보면 내가 잠에 빠져 꿈을 꾼 것 같기도 했다. 같은 일이 끝도 없이 반복되다니 끔찍한 악몽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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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크게 뜰 자신이 없어 살짝 뜨고 다 보았다. 아름다운 여자는 무릎을 꿇고 무척 흡족한 모습으로 몸을 기울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관능적인 모습이 무척 흥분되면서도 혐오스러웠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짐승처럼 핥았다. 혀로 하얗고 날카로운 이를 핥는 동안 달빛 아래 붉은 입술과 혀가 촉촉하게 빛났다. 여자가 고개를 더 숙이자 얼굴이 내 입과 턱 근처까지 왔는데 내 목이 목표인 것 같았다. 여자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혀로 이와 입술을 핥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뜨거운 숨이 내 목에 닿았다. 내 목 피부가 달아올라 욱신거리는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 간지럼 태우는 손이 가까이 왔을 때처럼 피부가 곤두섰다. 달아오른 목 피부로 부드럽게 떨리는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날카로운 두 치아의 끝이 목 피부에 가만히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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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고 싶지 않나요?”
“네, 두려워요.”
“잠이 두렵다니! 왜죠? 다들 잠을 자고 싶어 하는데.”
“제 입장이 되어보면 다르게 생각하실 거예요. 잠이 무서운 일의 징조라고 생각해보세요.”
“무서운 일의 징조라니, 대체 무슨 뜻이죠?”
“잘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 그래서 더 무서워요. 내가 이렇게 허약해진 것도 잠자는 동안 벌어진 일이었어요. 그러니 잠을 잔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해요.”
“하지만 루시, 오늘 밤은 잠을 자도 좋아요. 내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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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왕이야. 자기가 오고 싶으면, 원하는 방식으로 온다네. 웃음은 아무에게도 질문하지 않아. 적절한 때를 고르지도 않아. 그저 ‘난 여기 있어’라고 말할 뿐. 자, 나는 그토록 매력 있던 젊은 여성을 생각하며 마음 깊이 슬퍼하고 있네. 이 늙고 지친 내가 루시에게 피를 주었어. 내 시간과 기술, 내 잠을 바쳤다고. 같이 고생한 다른 사람들도 루시가 인생을 다 누리게 되길 바랐지. 그렇지만 나는 무덤에서 웃을 수 있었어. 교회 인부들이 루시의 관 위에 삽으로 흙을 퍼서 던질 때 쿵쿵 소리가 내 마음에까지 울려서 내 뺨에 핏기가 다 가시던 순간, 웃음이 났다고. 내 마음은 그 가엾은 청년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있어. 계속 살아 있었다면 너무나 고마웠을 내 아들과 그 청년은 나이가 같아. 머리칼이며 눈의 생김새까지 닮았어.
--- p.335
우리는 갈라츠 근처에 왔다. 나중에 일기를 쓸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우리는 불안하게 일출을 기다렸다. 반 헬싱은 최면을 거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을 감안하여 평소보다 일찍 시작했다. 그렇지만 원래 최면에 걸리는 시간에 이르렀는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갖은 애를 쓴 끝에 하커 부인이 최면에 빠졌지만 해가 뜨기까지 겨우 1분이 남았다. 선생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고 부인은 똑같이 빠르게 대답했다. “어두워요. 내 귀 높이에서 물이 소용돌이치는 소리와 나무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요. 멀리서 소 울음소리가 나요. 또 이상한 소리가 하나 더 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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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한줄기가 불어와 불길이 위로 휙 타올랐다. 부인 이마의 붉은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알겠다. 몰랐다 하더라도 곧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안개와 눈발이 빚은 기묘한 형상들이 가까이 다가왔지만 성스러운 원을 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형상들은 육체가 있는 존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 내 이성을 가져가신 게 아니라면, 나는 내 눈으로 확실히 보았다. 방에서 조너선에게 입맞춤하려고 든 여자들과 똑같은 세 여자가 내 앞에 선명한 육체로 나타났다. 너울대는 듯한 둥그스름한 형상, 차갑게 번쩍이는 눈, 하얀 이, 불그레한 혈색, 육감적인 입술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미나 부인에게도 웃어 보였다. 그들의 웃음이 고요한 밤에 번져나갔다. 그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서 부인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했다. 조너선의 표현대로 물잔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처럼 너무 또렷하고 맑아서 귀가 아픈 목소리였다.
“친구, 이리 와, 얼른. 이리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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