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도 유머가 있어야 한다. 민사사건에서 원고 측 변호사가 원고 좌석을 혼동하여 피고 대리인 석에 앉는 일이 가끔 있다. 상대방 변호사가 얼굴을 붉히지 않고 여유롭게 유머 한 마디.
“재판장님, 원고 측 변호사가 저희 피고 측에 앉는 것을 보니 이 사건은 조정이 잘 되겠습니다.”
과연 그 사건은 원하는 대로 합의가 잘되어 소송이 종결되었다.
형사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최종 변론을 하는데 앞의 피고인이, “앞으로 석방되어 나가면 공인중개사시험을 보아 열심히 잘 살겠다”고 했다. 재판장이 판결 선고를 하면서 바람직한 생각이라고 격려하자, 뒤의 피고인들도 따라서 공인중개사시험을 보아 성실히 살겠다고 했다. 이에 재판장이 한 말씀 하신다.
“그러다 공인중개사시험 경쟁률이 높아지겠습니다.”
--- p.19
요즈음 서양화에 대한 감정 평가는 미술평론가나 화랑이 내리는데, 그중에서도 영국의 미술평론가 사치(Saatchi, 런던 첼시에 사치 갤러리가 있는데 내가 품평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의 진수가 전시되고 있었다)의 평가가 유력하다고 한다. 그가 해당 작품을 보고 독창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그림의 가치가 높아진다. 보통사람이 보아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독창성이 인정되면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자개장 장인의 작품이 국내의 모 국회의원에게 고작 500만 원쯤에 팔렸는데, 그 작품이 사치 갤러리에서는 1억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처럼 같은 작품을 두고도 관점이나 평가 주체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예술품의 가치라는 것이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문제는 예술품을 획일적으로 평가해 거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보고 또 보아도 싫증이 나기는커녕 볼수록 새로운 맛을 느끼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 아닐까. 내게 뭔가를 말해주는,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라면 더 좋다.
--- pp.58-59
대법원의 판결에는 다양하고 훌륭한 소수의견을 펼친 대법관의 의견을 기재한다. 소수설은 그 자체로 후에 다수설이 될 수 있는 논거가 될 수도 있고, 현재의 열악한 당사자의 입장을 다독여 줄 수도 있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다만 그 제비가 가져오는 봄, 그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니 소수의견을 지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대가 변하면 법리도 변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함축한 말이다. 나는 형사 단독재판 시절에 간통죄에 해당하는 당사자에게 징역 6월 등의 징역형을 선고하기도 했고, 여호와의증인 신도 중에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건에서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의 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간통죄 등이 위헌 결정이 났고, 무죄의 판결들이 선고되고 있다. 당시에는 대다수 판결이 유죄의 형을 선고했지만 아무래도 개운하지 않다. 당시에 유죄의 실형 선고 판결을 받은 분들에게 미안하다.
--- pp.86~87
준비 없이 정의를 주장하는 것은 정의를 추구하는 정성이 소홀하다고 볼 수도 있다. 법철학 교수인 내 친구는 이럴 때 두 가지 문구를 인용한다. 하나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하이몬이 연인인 안티고네를 변호하느라 왕인 아버지 크레온에게 맞서 충고하는 말이다.
“아버지,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만 품지 마십시오. 아버지 말씀만 옳고 다른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누가 자기만이 현명하고, 말과 정신에 있어 자기만한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막상 알고 보면 공허하다는 것이 드러나지요.”
또 하나는 《장자》 〈제물론〉에 나오는 구절로, 장자가 친구 혜자에게 논쟁의 시비를 두고 반문하는 장면이다.
“나와 자네가 논쟁한다고 하세.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를 이기지 못했다면, 자네는 정말 옳고 나는 정말 그른 것인가?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옳고 자네는 정말 그른 것인가?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그른 것인가? 두 쪽이 다 옳거나 두 쪽이 다 그른 경우는 없을까? 자네도 나도 알 수가 없으니 딴 사람들은 더욱 깜깜할 뿐이지. 누구에게 부탁해서 이를 판단하면 좋을까?”
--- p.108
고향 집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허리 무릎이 좋지 않아 계속 물리치료 중이다. 어느 날 내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식사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상대방에게 이른다.
“증거를 많이 대라. 화해를 해보라.”
통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니, 어머니 지인이 무슨 사건에 대해 어머니 아들인 판사에게 물어봐달라고 한 모양이다. 아들의 입장을 배려한 어머니는 청탁의 말을 아들에게 옮기는 대신 그 지인이 서운해하지 않도록 어머니가 아는 법률상식에 근거해서 성심껏 조언한 것이다. 평소에 법원의 송사(訟事)를 들어보니, 증거가 있어야 이기고 그렇지 않다면 화해하는 것이 낫다고 본 모양이다. 참으로 어머니다운 슬기로운 자문이다. 나도 그 후에 동문회나 모임에 나가서 지인들이 사건 관계를 물으면 두어 번 사양하다가 답한다.
“증거를 많이 대라. 화해를 해보라.”
--- pp.159~160
이른 봄이면 남쪽 지방에서는 고로쇠나무의 수액이 인기다. 고로쇠는 도선국사가 한겨울에 참선하고 이른 봄의 수액을 마신 후 원기회복을 했대서 골이수(骨利水)로도 불린다. 겨울의 묵은 때를 벗고 새봄의 신선한 수액을 섭생하면 머리도 상쾌해진다. 해마다 봄철에 지리산, 백운산, 조계산의 고로쇠와 거제수나무 수액을 골고루 마시는 한량도 있다. 저녁에 장작으로 덥힌 방에 들어가 북어포, 오징어 등을 고추장에 찍어 먹고 목이 마르면 옆에 놓인 큰 대야에 고로쇠 수액을 가득 넣고 한 대접씩 떠 마시는 풍습은 건강하다. 이른바 ‘물 대접’이다.
여름에는 삼계탕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보신탕을 즐기는 고관대작들이 있다. 보신탕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이 거세지고 있는데 병원 환자들의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소수의 의견도 있다. 그런데 보신탕집에 가면 삼계탕 주문하는 분과 보신탕 주문하는 분으로 나뉜다. 주인은 손님들에게 보신탕인지 삼계탕인지 주문을 확인한다.
“여기 개 아닌 분 있어요?”
“…….”
“그러면 다 개예요?”
어떤 사람은 자기를 찾아온 손님한테 보신탕을 사주고는 사과한다.
“개 대접해서 미안해.”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보신탕을 사양한다. 초봄의 물 대접, 여름의 개 대접은 결코 푸대접은 아니지만, 어쩐지 개 대접은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 pp.257~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