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 파튼. 그녀는 1946년 1월 미국 테네시 주 조그마한 마을의 찢어지게 가난한 은둔자의 열두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빼어난 몸매와 중남부 특유의 리드미컬하고 섹시한 목소리로 대성공을 거둔 컨트리 뮤직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그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돌리’하면 떠올리는, 풍만한 젖가슴이다.
1996년 7월 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근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실험실(Roslyn 연구소)에서 또 다른 ‘돌리’가 태어났다. 그녀는 여섯 살의 양(洋)으로부터 얻은 세포의 핵을 다른 양에서 얻은 난자에 이식한 뒤, 그 난자를 세 번째 양의 자궁에 이식해서 나온 네 번째 양이다. 그 새 생명에게 ‘돌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 과정이 한 암양의 젖샘세포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풍만한 젖가슴을 가진 미국 가수 돌리에게 바치는 애정 어린 헌사인 셈이다.
그녀는 277번의 시도 끝에 단 한 번 성공한 산물로서 성체세포에서 복제된 최초의 포유류였다. 이것은 인류가 생명을 다뤄 온 역사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됨을 알린 것이었다. 돌리가 태어난 첫 6개월 동안 그녀의 존재는 비밀에 붙여졌었다. 그러나 1997년 2월 그녀의 소식이 언론에 새 나가자, 전 세계는 시끌벅적했고, 세계 언론을 사로잡았다. 또한 성행위 없이 이루어지는 번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무수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정확한 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핵이식과 줄기세포 추출을 개발하기 위한 전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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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을 드러낸 채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봤을 때 당신은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저 사람이 남자인가? 여자인가?’라고 한다. 숨이 붙어 있는지 아니면 끊어졌는지, 얼마나 다쳤는지는 그 다음 고려 사항이라는 것이다. 인도 탄트라 철학의 대가 오쇼 라즈니쉬의 강의록 첫머리에 나오는 얘기다.
강남구 청담동. 앞쪽으로 도산대로를 내려다보며 한강을 뒤로하는 언덕 위의 빌라는 신흥부촌으로 꼽는 대표적인 곳이다. 고급빌라라는 말이 워낙 흔해 빠지게 쓰이고 있지만, 이곳 렉스빌라야말로 그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신흥부촌. 이 말 속에는 적지 않은 함의(含意)가 있다. 화려하지만 감출 수 없는 경박, 그리고 음습한 퇴폐의 내음이 묻어 나온다.
한껏 멋을 낸 실내. 연보라색 실크 벽지가 호화스런 샹들리에 불빛에 진보라 색을 띠고, 최고급 페르시아산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다. 고가구의 고풍스러움이 원색의 서양식 소품들과 뒤섞여 있고, 어딘지 모르게 집안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다. 거실 응접세트 테이블 위에는 하늘색 에비앙 생수병이 놓여 있다. 두 개의 글라스와 함께. 바닥에는 여자의 옷가지가 널려 있고, 하이힐이 동댕이쳐 있다.
호화롭게 치장된 침실의 큰 침대 위에 한 여인이 누워 있다. 깊은 잠에 빠진 듯 양팔을 늘어뜨린 채 고요하다. 눈은 감겨 있지만 빼어난 미모는 전혀 감춰지지 않는다. 특히 얇은 분홍빛 네글리제 사이로 풍만한 젖무덤의 윤곽이 눈부시게 드러나 보인다. 움직임이 없고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프롤로그」중에서
혜리는 수술 부위인 가슴과 겨드랑이를 드러낸 채 앉아 거의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복부 아래 부위는 초록색 무균시트에 가려져 있었다. 입에는 기관 내 삽관튜브가 들어가 있었지만 아직 마취가 다 되지 않았는지 약간 뒤척이는 기색이었다.
“애너스띠지어 나인.”
박 선생이 마취가 90퍼센트 이상 진행됐다는 사인을 보냈다. 현구가 수술용 형광펜으로 혜리의 가슴과 겨드랑이에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상주가 혜리의 가슴을 만져 보더니 놀라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석화(石化)가 진행됐지.”
“말했잖아.”
수술 부위는 이미 간호사가 베타다인 소독약을 발라 놓았지만 현구는 다시 수술 부위를 중심으로부터 시작하여 바깥쪽으로 원을 그리며 베타다인을 바르고, 수술 부위만 제외하고 다른 부위는 무균시트로 가리고 여몄다.
박 선생이 정맥마취로 애용하는 소디움펜토탈과 흡입마취제로 애용하는 엔플루란의 약효가 퍼져 나갔다고 생각되는 순간 현구가 환자의 겨드랑이에 메스를 갖다 댔다. 역시 박 선생의 마취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이미 두어 번 수술을 했었고 그 부위가 떡처럼 뭉쳐 있어 내시경 튜브를 넣는 일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이후부터 발생했다. 워낙 석화가 심하게 진행되어 있어 박리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근막 아래쪽의 식염수 주머니 주변이나 근막 위 지방조직도 마찬가지였다. 상주의 특장 흡입기술도 그리 효과적으로 먹혀들지 않았고, 용해제를 주입해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좀 더 크게 절제하면 제가 손을 넣어 물리적으로 박리해낼 수 있겠는데요.”
김지돌 선생이 거들었다.
“그 방법도 있지만, 흉터를 더 이상 남기지 말아달라는 요청이 너무 강해서…….”
현구는 손을 멈추고 잠시 머리를 맞대야 했다. 역시 상주가 리페어의 대가답게 최상의 의견을 냈다.
“지금 보면 석화가 가로 쪽으로 심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측면의 흡입으로는 제대로 결착을 떼어 낼 수 없잖아. 그러니 아래쪽에서 튜브 매천바움을 쓰면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러네요. 아래쪽 배꼽 절개를 하지요.”
세 명이 모두 동의했다.
“마취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취과 박 선생도 거들었다.
--- p.25
김지돌이 배꼽 안으로 메스를 대고 세모 시저스로 튜브 내시경과 흡입기가 들어갈 자리를 냈다. 배꼽에서 유방 아래쪽까지 15센티 정도의 길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혜리의 복근이 생각보다 잘 발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근육 사이의 근막을 따라 미끌미끌 터널을 뚫는 것이 지방층을 뚫고 가는 것보다 훨씬 용이했다. 내시경 튜브에 비춰진 근막과 유하선 조직의 결착은 역시 아래쪽에 틈이 있었다.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박리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스코프를 들여다보는 상주의 손이 작은 동작이었지만 힘 있게 움직이면서, 흡입기를 탑재한 매천바움이 결착의 틈을 파고들었고, 지돌이 마사지 하듯 그 부위를 주무르자 그 완강했던 석화 결착들이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완강했던 결착이 떨어져 나오자 지돌이 겨드랑이 쪽에서 흡입튜브를 하나 더 삽입했다. ‘슈욱-’ 하는 흡입소리가 조용한 수술실을 작게 진동했고 흡입통에는 조직덩이의 부스러기며 피고름 같은 결착의 잔해가 상당한 분량으로 쌓여갔다. 하긴 한쪽에서 300cc만 빠져나온다 해도 흡입통을 두 번 갈아대야 했다.
근막 아래에 위치한 식염수 주머니를 빼내는 일이 마지막 난관이었지만 상주의 매천바움 불독을 사용하는 기술은 예술의 경지였다. 비닐 팩을 먼저 잘게 부숴 낸 후 흡입기로 하나하나 끄집어냈는데, 평소 덜렁대는 친구가 이렇게 침착하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는 경이에 가까웠다. 돌덩이와 같았던 결착과의 전쟁이 끝났고, 이제 본격적인 재건에 돌입해야 했다. 현구가 본격적으로 솜씨를 발휘할 차례였다.
자연스러운 모양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보형물이 들어갈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그 공간 내부에서 보형물의 움직임이 한정되지 않고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술 기법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개 보형물의 넓이만큼만 공간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럴 경우 결국 가슴의 모양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p.28
현구가 먼저 주입기를 통해 혜리의 가슴 공간에 스타치 마이크로백을 투입하여 자리를 잡은 뒤 공기를 주입하자 주머니가 풍선처럼 팽창했다. 그리고 팽창한 주머니 안에 지난번 채취하여 배양한 혜리의 자가 지방 줄기세포를 투입했다. 팔순 노파의 그것처럼 짜부라져 아래로 쳐져 있었던 혜리2의 가슴이 서서히 모양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환자의 가슴이 모양을 잡아갈 때 현구는 늘 뿌듯한 보람을 느끼곤 했다. 성형외과를 두고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를 자처하는 인술이 될 수 없다는 이런저런 색안경 낀 소리들이 즐비했지만 현구가 그에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내세울 수 있는 까닭도 이 보람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영국의 비평가 레비가 『천국의 달』에서 ‘여성의 가슴은 천국의 베개이고, 사막의 선인장이며, 출발점이자 귀향지이다’라고 찬양했던 것처럼 유방은 풍요와 아름다움과 여성의 성적 매력을 나타내는 상징적 기관으로, 그리고 자비로운 어머니의 실체로 여성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 p.31
“외모에 대한 상대방의 자극은 상처를 넘어 성격의 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형 수술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찾는 환자를 보면 의사로서 보람을 느끼곤 하지요. 성형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시각이 많은데 성형의 순기능을 생각하면 부정적으로만 치부할 의술이 아닙니다. 성형외과 의사는 메스를 든 정신과 의사입니다.”
--- p.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