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박할 사이에 무거운 에이치-빔 10여 가닥이 파일 할 자리로 옮겨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비비꼬고 무시 여기던 사람들이 놀란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저 무거운 에이치-빔이 아무 손도 거치지 않고 괴청년의 눈짓하나로 공중으로 날아올라 목적지에 한 결 같이 나열되느냐 그 말이거든, 그렇다고 다른 장비의 도움을 받는다거나 유도 기구를 동원한 것도 아니다. 현장사무실에서 그냥, 눈동자를 한번 찔끔 떴다가 감으면 어김없이 에이치-빔이 날아올라 지정된 장소로 옮겨졌다.
“햐!~, 기차네, 기가 차! 도대체 저게 뭐지?”
야, 야~. 정신적 충격도 충격이려니와 인기도 아주 폭발적이었어. 생각해 봐 최첨단 장비로도 3개월 이상 걸릴 빔 공사를 단 40분만에 해치웠으니까 너도 짐작이 갈 거 아냐. 하기는 그 정도 속도는 되어야 몇 광년씩 걸릴 광활한 거대우주를 넘나들며 탐사하고 개척할 거 아냐.
“그건 그렇다 치고, 너 초능력으로 공사장을 발칵 뒤집어 놓은 그 불청객 말이야. 우리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건 아닐까?”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기분이 좋아진 최두식이 얼큰하게 오른 고경민을 향해 여태 하던 얘기와는 달리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차원이 다른 건 분명하지.”
저 정도의 초능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면 아마 10차원쯤 될 거라고… 그런데 차원이란 개념을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야, 뭐. 공간의 범위라고나 할까 아니면 능력의 계단이라고 말해야 옳을까?”
10차원을 대충 이해하려면 제일 먼저 ‘뫼비우스 띠’(Mobius-strip: 수학의 기하학과 물리학의 역학이 관련된 곡면으로 경계가 하나밖에 없는 2차원 도형, 즉 안과 밖의 구별이 없음)부터 이해해야 한데요. 그 다음으로는 라마누잔의 모듈 함수(매직넘버=24)인 숫자 24를 이해해야 하고요. 그 다음은 이런 것들을 일반화시키는 아인슈타인 방정식도 이해해야 하고, 거기에서 매직넘버 24가 왜 8로 대체되는 지 초끈이론도 이해해야 하고, 그런 절차적 체계를 하나씩 풀어나가면 결국은 초끈이론에서 8+2=10이 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된데요.
“햐~ 소설 쓰고 있네… 까짓것 나선 김에 더 찬찬하게 짚어 보고 넘어갈까요, 미래를 더듬어 가는 과정이니까 그것도 좋지.”
“얼씨구, 고차원적 얘기를 귀담아듣더니 말솜씨가 제법인데?”
다음으로 드리고 싶은 충언은 의제에 관한 충언인데요. 쟁점을 보는 눈도 ‘참’이어야 해요. 색채나 감각을 에둘러치면 다른 색깔이 된다고 앞에서 말씀 드렸죠? 초능력사회에서는 그런 것들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따라서 사물을 관망하는 시야도 명확하게 초점을 짚어야 해요. 아까 말씀드리다가 만 은하계의 구조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진리를 논하고 해답을 찾는 세계는 이전 세상(데카르트 방법론)의 산물이고, 앞으로의 초능력사회는 이전 세상에서 정립한 진리를 응용하는 시대로군요.”
어쨌든 데카르트 사고 자체를 초탈한 세계라 보면 되겠네요? 맞습니다. 잘 이해하고 올바로 받아들였네요. 그렇다면 아까 말하다가 만 은하계의 구조를 좀 더 살펴볼까요? 은하계도 태양계처럼 초은하단이 제일 중심에 있고, 그 주위로 은하단이 공전하고 국부은하군 주위로 행성은하가 공전하고, 행성은하 주변은 위성은하들이 맴돌고, 그렇게 겹겹이 톱니바퀴처럼 물려 있는 거죠.
직녀성의 터전이 아름다워서 그럴까? 외계인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천성이 고우세요? 정말 우리가 이사할 때 성심성의껏 도와 줘서 모두들 감격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직녀성이 여기서 어디쯤 되나요?
“저기 거문고자리라고 보이죠? 바로 거기 베가은하예요.”
칠월 칠석 날은 전에 살았던 지구촌에서도 명절로 맞이해 맛있는 음식도 해 먹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오작교도 구경하고 그랬는데… 맞아요. 그 이튿날 머리가 벗겨진 대머리까마귀를 찾느라 아이들이 얼마나 수선을 떨고 난리였는데 이렇게 인근으로 이민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호호, 여기 천칭행성도 많은 미담설화가 전해오고 있어요. 선과 악을 저울로 다는 행성이라느니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했다는 받침대 없는 접시를 실로 매달은 저울이라느니, 알파별과 베타별이 서로 우정을 나누고 있다느니, 갸륵하고 기특한 얘기들로 가득 찼더라고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