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시야가 트였다. 숲이 끝나고 눈앞에 커다란 양옥이 나타났다.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홈페이지에서 본 사진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2층으로 된 건물에는 거실, 주방, 식당을 제외하고도 방이 8개나 있고 지하실까지 있다고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홈페이지에는 지어진 지 10년 되었다고 적혀 있었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파스텔 브라운으로 칠한 벽, 진갈색 지붕. 남프랑스의 별장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믿었을 것 같다. 역시 올바른 선택이었다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여행 가방을 끌어 문 앞으로 다가갔다. --- p.87
다시 잡지로 눈을 돌렸을 때 희미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들었던 소리다. 바스락하고 무언가가 서로 스칠 때 나는 소리다. 와타누키나 다른 사람들은 정원이나 숲에 있는 나무가 바람 때문에 서로 스치며 나는 소리라 했고 리사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지금까지는 한밤중에 들렸는데 방금은 달랐다. 9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욕조에서 일어나 욕실 상부에 있는 환기구를 통해 밖을 엿보았다. 바람 소리가 들렸지만 강한 바람은 아니었다. 정원에는 여기저기 수목이 심겨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다시 한번 따뜻한 물에 하반신을 담갔다. 정원이든 숲이든, 어디서 소리가 들려오든 상관없었다. 바람을 멈출 수 있는 방법 따윈 없으니까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 p.78
갑자기 리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 표시에 레나의 이름이 떴다. “리사? 너 지금 어디야?”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쇼난 체육 대학 근처라고 리사는 대답했다. “스즈키 오빠가 아르바이트 소개해 준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어. 근데 오빠가 아직…….” 진정하고 들으라며 레나가 목소리를 낮췄다. “있잖아,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와타 오빠가 경찰한테서 연락을 받았거든.” “경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스즈키 오빠가 죽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