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뿌리와도 같은 땅, 네덜란드. 마네의 꼿꼿한 의지가 미술사의 새로운 씨앗이 되고, 또 여러 후배 화가들이 그 터전 위에 줄기를 뻗친 도시, 파리. 모네가 자연의 빛을 벗 삼아 평생 인상파 미술의 꽃을 피웠던 노르망디 해안마을과 지베르니. 나는 그 발걸음을 따라갔다. 젊은 날의 체취 앞에서는 심장이 두근거렸고, 실패와 좌절의 기록 앞에서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림의 배경들은 긴 세월 끝에서도 생생하게 다가왔고, 화가들이 태어나고 살고 작업하고 죽어간 과거의 자취는 나의 하루하루를 요동치게 했다. 19세기의 환영은 길을 가는 내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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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화가의 인생이 담긴 그림들과 지그시 눈을 맞췄다. 그가 짊어졌을 삶의 무게에 가슴이 내려앉고 그가 바라봤을 어느 고적한 농가에 몸이 이끌렸다. 검붉은 저녁노을을 등지고 선 황량한 벌판의 오두막집 두 채, 이파리를 다 떨어뜨린 앙상한 자작나무, 얼굴에 두 손을 파묻은 남루한 노인과 다 낡아빠진 신발 한 켤레, 식탁 앞에 둘러앉아 감자를 먹는 여인들이 전시장 벽을 타고 내게 다가왔다. 푸르스름하고 누르스름한 파리의 풍경도,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노란 집도, 그리고 까마귀가 우는 밀밭도 반 고흐가 감당해 온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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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여행은 두 단어의 연속이다. 긴장과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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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3년 여름날의 파리 거리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이 모든 장면들은 지금 내가 나의 기분대로 내 시각대로 바라보는, 하나의 ‘인상’일 것이다. 풍경 자체가 아니라 풍경이 낳은 감각을 느끼고 묘사하는…. 그러나 1870년대에는 이 당연한 감성을 지키기 위해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 했던 화가들이 있다. 모네가 말했듯이 그냥 ‘인상’일 뿐인데.
“풍경은 인상 그 자체에 불과하다.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것이다. 전시 도록에 들어갈 그림의 제목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즉흥적으로 그려 낸 르아브르의 풍경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인상〉이라고 하게나!--- p.로버트 고든, 『모네』 중에서)” 그리고 모네가 불쑥 던진 이 한마디로 인해 1874년 5월 이후 이들은 ‘인상파 화가’라 불렸다. 물론 이 용어가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임은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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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 있는 물의 잔잔함을 응시하다 보면 긴장된 신경들이 풀어질 겁니다. 이 방은 꽃이 만발한 수족관 한가운데에서의 평온한 사색을 선사할 것이라오.” 전쟁 후 피폐해진 파리지앵들에게 평화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싶었던 모네는 그의 말대로 오랑주리를 찾아올 관람객들에게 거창한 감상평을 바란 게 아니었다. 그저 편히 쉬었다 가라고. 잠시 현실의 짐을 내려놓고 꿈을 꾸듯 명상에 잠겨 보라고. 눈을 감기 직전까지는 이 그림들이 지베르니의 집, 자신의 품을 떠나지 못하게 해달라는 요청 때문에 1927년 5월에서야 오랑주리로 영구 안착할 수 있었던 마지막 수련들. 모네 자신은 정작 전시장에 앉아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 p.215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했던 내 여정의 일부도 일단락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해 누에넨과 준데르트를 거쳐 파리에서 오베르까지, 한 남자의 곡절 많은 삶이 막을 내린 이곳에서 나 역시 여행의 문 하나를 닫아 가고 있다. 나란히 놓인 형제의 묘비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공동묘지 밖으로 나왔을 때는 넓디넓은 밀밭이 두 팔로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삶을 버리고 싶었든 끌어안고 싶었든, 외로움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웠든 납덩이처럼 무거웠든, 이제 그는 등 위에 얹힌 모든 슬픔을 날려 보내고 저 광활한 땅 위를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키 큰 아카시아나무가 있는 고향 준데르트의 들판에서 테오와 함께 뛰어놀던 푸른 눈의 소년 빈센트처럼.
--- p.274
절벽 뒤쪽의 산책로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말과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장이 있는가 하면 낭떠러지 밑에서는 허연 암석이 파도에 맞서고 있다. 깊게 골이 패인 바위 밑으로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검푸른 바닷물이 주변을 맴돌고, 갈매기들은 그 사이를 수직으로 오르내리며 울어 댄다. 화가의 능력을 지녔다면, 음악적 재질이 탁월하다면, 필력이 뛰어나다면 무엇이든 표현할 방법이 있으련만, 나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p.주인을 따라온 개들마저) 그렇게 앞을 보며 앉아 있다. ‘에트르타는 너무나 경이롭고 대단해서 그 모습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무능함에 화가 날 지경’이라고 했던 모네. 우리 같은 범인들은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조용히 가슴에 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책감은 생기지 않는다.
--- p.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