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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태 | 청어 | 2023년 01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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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3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724g | 128*188*30mm
ISBN13 9791168550964
ISBN10 1168550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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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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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 언덕 잡초 무성한 풀밭머리에 ‘청수리 1.7km’라고 마을 이정비가 볼품없이 풍화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마을버스를 줄곧 뒤따라 들어오면서 청수리 쪽으로 핸들을 꺾고 들어선 사내는 지프의 급브레이크를 밟아가면서 몹시 당황했다. 청수리 들머리 길 초입에 긴 차단목이 가로놓여 있었다. 마을 길이 언제부터 폐쇄된 것인지, 차단목이 다 썩고 있었다. 지프에서 내린 사내는 잡초가 더부룩한 마을 길을 넘어 들어갔다. 마을 길은 차츰 울창한 나무숲으로 어두워지면서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고, 취할 것 같은 산 내음이 코끝에 물씬거렸다. 죽음의 안개와 혼탁한 미세먼지, 자연 속에 선 찾아볼 수 없는 잿빛 하늘, 그런 대기 오염 속에 찾아온 코로나 펜데믹에 하늘로 유배당하듯 39층 아파트 꼭대기에 갇혀 살던 사내는 꿈같은 신천지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는 설레는 동심으로 생기발랄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주저없이 차단목이 가로 놓인 들머리 길로 돌아와 세워놓은 지프를 올라타고 질경이에 민들레, 개망초까지 흐드러지게 피어나 뒤덮인 마을 길을 신나게 달려들어 갔다.

청수리 고향을 찾아가면서 마을을 온전히 품고 있는 우봉산을 마주하고 달려가니 정겨운 청수골이 한눈에 들어온다. 깊숙한 산골짜기에서 졸졸거리는 실개천으로 시작하여 여울목을 세차게 휘돌아 흐르고, 깨끗한 금모래 위를 깔고 흐르는 시냇물이 햇빛을 받아 안은 은물결이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시냇물 건너 층계를 이룬 전답을 비스듬히 끼고 산기슭으로 올라붙은 골짜기는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모두 떠나버린 것처럼 고요하게 삽살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아니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마을 길은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메마른 눈바닥에 토사가 쌓여 있었다. 지프를 몰아 시냇가로 내려온 그는 시냇물을 한 움큼 움키어 시원스레 얼굴에 끼얹으며 마을을 다시 바라보고 난 뒤 지프를 타고 시냇물을 건너갔다.

마을은 놀랍게도 우부룩한 잡초에 묻힌 채 너절한 잡동사니들이 길목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당혹스럽게 달려 올라갔다. 폐허였다. 마을은 아주 오래전에 전쟁이 휩쓸고 간 것처럼 황량한 폐촌이 되어 있다. 고갯마루에서 까맣게 바라보이던 것은 모두 검게 불탄 집들이었다. 서너 채의 집들은 앙상한 숯등걸로 남아 있었다. 바깥마당에 커다랗게 서 있는 모과나무는 절반쯤 불타버린 모습으로 성한 가지마다 익어가는 모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파란 기와지붕에 스라브 단층집, 함석집이며, 겉모습들이 그런대로 성해 보인다 해도 양철 차양들은 거반 떨어져 나가 떨그럭거리고 있었다. 집 주위 텃밭들도 거친 잡초가 무성한 묵정밭이 되고, 희끗거리는 비닐 조각들이 나붙은 비닐하우스는 앙상한 골조만 남아 있었다.

“마을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는 자신이 마치 황폐해버린 것처럼 허탈한 심정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시냇가로 다시 내려왔다.
“신선한 공기, 속삭이듯 수런수런 흘러내리는 시냇물….”
그는 폐촌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찬탄이 절로 나왔다. 이웃지간에 다정다감하던 사람들이 떠난 집들은 흉흉한 폐가로 버려져 거미줄이 얼기설기 걸리고, 방초가 우거진 대지엔 자연이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울창해진 수목들, 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얼른 등산화를 벗어 던지고 시냇물에 발을 담갔다. 발목 위로 물이 찰랑찰랑 올라오고, 발바닥 사이로 모래가 자꾸만 허물어지며 간지럽게 빠져나간다. 떼 지어 물살을 거슬러 오르던 피라미들이 쏜살같이 달아났다. 피라미 떼에 눈을 빼앗기며 안 골짜기 여울목을 올려다보던 그는 산자락 등성이에 희끗하게 바라보이던 것을 다시 바라보며 이상한 예감에 놀랐다. 푸른 묘역 앞자락 하얀 것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그는 한순간 머릿속의 아련한 기억이 피어나면서 먼바다 백파白波처럼 밀려들고, 그 형상에 기억의 한 소녀가 오버 랩이 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스라쳤다.

“그 소녀다. 연희?”
시냇물 속에 발을 담근 채 그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하얀 모습의 사람은 움직임이 없이 앉아 있었다.
“설마, 연희가?….”
그는 터무니없는 환영에 쫓기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한 인생이 아주 멀리 지나버린 세월이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촌에서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신기했다. 그는 두 손에 시냇물을 움키어 얼굴에 쫙 끼얹었다. 연희는 아주 귀엽고 청순했다. 그는 지난 세월의 기억 속에 갇혀 있던 그녀를 그려보았다. 아직 기억 속에 아련히 머문 소녀라면 그녀는 아마 지금쯤 귀밑머리가 희끗거리는 지천명 쉰 줄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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