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정말 볼수록 신기해. 이 많은 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추운 날씨에 아주 작은 물방울을 뿌려서 얼리는 거야. 특수한 모양의 프로펠러를 이용하면 물방울을 5㎛ 정도로 쪼갤 수 있대. 그럼 공기와 닿는 표면적이 넓어져서 물이 빠르게 얼어 눈처럼 변하는 거지.”
“그렇구나.”
리나는 나기에게 무언가를 물어볼 때마다 대답이 척척 나오는 게 좋았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자신은 참 궁금한 게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엄마나 아빠에게 무언가를 물으면 ‘나도 몰라’ ‘그건 알아서 뭐 하게’ ‘네가 좀 찾아봐’ 같은 답변이 돌아올 때가 많았다. 그렇게 리나는 점점 질문이 없는 아이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기는 참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았다.
--- p.20
지금도 나기의 의심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왜 굳이 알칼리 금속을 물에 넣게 했을까? 알칼리 금속은 물과 만나면 격렬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어서 전혀 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깜짝 놀라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둥지가 있었던 곳의 높이를 생각하면 의자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만했다. 하지만 단순히 악의적이라고 생각하기엔 금속의 조각이 작았다. 만약 금속 조각이 콩알이 아니라 메추리알만 했다면 깜짝 놀라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폭발이 일어났을 것이다. 아니면 주기율표 더 아래쪽에 있는 알칼리 금속을 썼을 수도 있다. 알칼리 금속은 주기가 증가할수록 물과의 반응이 격렬해진다. 같은 크기의 칼륨이라면 수면에 닿자마자 흩어지며 폭발을 일으켰을 것이고, 루비듐이라면 유리병째로 폭발했을 것이다.
‘누가? 왜?’
나기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의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가장 중요한 의문은 프로젝트 가디언즈와 학교의 비밀 사이의 연관성이었다. 하지만 지금 판단하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 p.44
공위성 선생은 아이들 사이를 걷다가 인자의 옆을 지나칠 때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갔다. 그 가벼운 진동에, 불쑥 인자의 마음속에 있던 질문 하나가 튀어나왔다.
“선생님, 전기란 무엇인가요?”
인자가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모르는 게 있으면 악착같이 찾아봤지만, 누구에게도 그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전기는, 얕은 단계에서 설명하면 도선 속을 움직이는 전하의 흐름이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면 빛 또한 전자기파의 일종이며, 자기장 또한 전기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전기에 대한 정의는, 전하가 존재함으로써 생기는 모든 물리 현상으로 확장된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전자기력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 p.102
인성과 나기가 정답이 적힌 화이트보드를 흔들고 있을 때 인자는 ‘이인자가 No.2’라고 적은 화이트보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성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되면 No.3 아니에요?”
“아무도 못 봤을 것 같지?”
인자의 한마디에 인성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 뭐…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인성이 표정 관리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인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그를 비웃었다.
“쭉 그렇게 살아. 난 No.2지만, 넌 아무것도 아니야.”
인자가 자리를 떠나기 무섭게 1학년들이 달려와 인성을 헹가래질했다. 1학년에겐 2학년과 함께한 경기에서 마지막 문제까지 통과한 인성이 영웅이었다. 수많은 손길과 무중량 상태를 오가는 동안에도 인성은 웃을 수가 없었다. --- p.143
“나는 백화란 선생님을 따라갈 거야. 그리고 먼 훗날 언젠가, 그 길의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거야.”
미도는 리나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이 확신으로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리나는 백화란 선생과 있는 시간 동안 자신이 따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따라 할 생각이었다. 잃어버린 3년을 메꾸는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목표는, 자신의 춤으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발레는, 아니, 인류가 이루어 온 문명은 대부분 그렇게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 p.182
“안전 계수는 실제 구조물이 버티는 값과 계산상 필요한 강도의 비율이다. 로켓의 경우 안전 계수는 1.2~1.4 정도의 값을 가진다. 로켓을 설계할 땐 계산상 필요로 하는 힘보다 20~40% 더 버틸 수 있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이 이상의 힘을 버티는 건 단순한 낭비다. 로켓은 200%의 힘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드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화제와 연료를 가득 싣는 추진체 탱크처럼 많은 질량을 차지하는 부품의 경우 수압으로 파괴하는 실험을 해서 150%의 힘에도 파괴되지 않으면 설계를 다시 한다.” 학생들은 공위성 선생의 로켓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현장감 있고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고강도 소재의 취성 파괴 특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한참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아이들 몇몇이 아쉬운 탄성을 질렀다.
--- 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