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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계시처럼

마치 계시처럼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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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2월 3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87쪽 | 420g | 140*210*20mm
ISBN13 9788932025070
ISBN10 89320250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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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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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하소연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 이미 다 알잖아요, 그렇다고 말해줘요, 하는 투. 그런 투정에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서려 있다. 그런 믿음에 이미 나는 약속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요” 하고 대답했다. ---「숨결」 중에서

생전에 나는 그토록 아름다운 노을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아, 이럴 때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거구나. 그랬다. 딱 거기서 죽고 싶었다. 내가 그 언덕을 향해 휘적휘적 올라가자 형란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섰다. ---「완전한 그림」 중에서

맙소사, 기차가 소복 차림이라니. 새하얀 소복을 만들어 입고 기차는, 내 꿈의 저 모퉁이 벽을 허물고 달려들어 오는 것이었다. 내 꿈의 저 모퉁이를 허물고 쳐들어왔다가 다시 반대편 모퉁이를 허물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 무서운 돌진력으로 나를 압도하는 시간은 불과 3초나 될까. 그 3초 동안 기차는 하얀 소복을 펄럭이며 꽥꽥 소리와 함께 달려왔다가 달려가는 것이었다. ---「마치 계시처럼」 중에서

선산의 양지바른 곳에 두 기의 무덤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두 무덤 앞에 선 그는 갑자기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그곳에 가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가 불거져 있었다. 그는 두 무덤 중 어느 쪽이 자신의 생모인지 알지 못했다.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거기에 두 어머니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 하지만 어느 쪽이 자신의 생모인지 구별해본 일이 없다는 사실을 왜 그곳에 가기 전에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통증」 중에서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속에서 퍼덕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퍼덕였던 게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던 점은 두고두고 의문이었다. 귓전에 남아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베토벤 교향곡은 지금도 여전히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변신의 끼」 중에서

나는 그를 보지 않았지만, 본 것 같았다. 얼굴색이 창백했던, 수줍음이 많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내였다. 내게 옆모습을 보이며 구멍을 빠져나갔던 그 사내였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쩌자고 내 상상력은 이리도 질긴 것일까. 나는 끝내 묻고 말았다. 네가 바로 그냐? 나는 허공 속 사내에게 물었다. ---「푸른 여로」 중에서

모든 이야기는 평면의 기억에서 오며 입체의 기억을 향해 나아간다. 세상에 기억만큼 이야기를 지켜줄 완강한 성체는 없다. 따라서 이야기는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작은 기회라도 그 생존 확률은 매우 높으며, 강한 활성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이야기가 모든 것을 이기게 된 이유이며, 그것이 가진 힘이다.
---「국경, 취우령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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