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이 정말로 고통이고 지옥이 되는 때는 두 개의 시대, 두 개의 문화, 두 개의 종교가 충돌을 일으킬 때예요. 고대의 한 인간이 중세 때 살아야 했다면, 그는 그 문명의 한복판에서 고통스럽게 질식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두 개의 시대, 두 개의 삶의 양식에 끼어 살고 있지요. 그래서 자명한 윤리도 안정감도 순수성도 잃어버린 겁니다.”
정신을 죽이고 현실에 만족하는 이 시민적 시대의 한복판에서, 이따위 건축물들과 사업들과 회사들 사이에서, 이따위 정치와 인간들 속에서는 그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렇듯 추구하는 목적과 기쁨이 나와는 전혀 다른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어찌 내가 한 마리 황야의 늑대가, 거친 은둔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내일이면 잊히거나 비웃음거리가 될, 마지막으로 남은 소수의 까칠한 노이로제 환자가 아닐까? 문화, 정신, 영혼, 아름다움, 성스러움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오래전에 죽었는데, 우리 몇몇 멍청이들만 그것이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유령이 아닐까? 우리 같은 바보들이 잡으려고 애쓰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한쪽 길은 성자, 정신에의 순교자, 신을 향한 귀의의 길이고, 또 다른 길은 탕자, 본능에의 순교자, 자발적 타락의 길이다. 시민은 이 두 갈래의 길 사이에서 중용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시민은 신에게 귀의하기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타락하고 싶어 한다. 그는 결코 그 두 갈래 길 중 한쪽에 빠지거나 의지하려 들지 않는다. 시민의 이상은 자아 희생이 아니라 자아 보존이기 때문이다. 시민은 신성함도 그 반대도 지향하지 않는다. ‘절대성’이란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은 신에게 귀의하기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타락하고 싶어 한다. 덕성을 갖추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한다. 요컨대 시민은 양극단 사이의 중간, 다시 말해 격렬한 폭풍우로부터 비껴나 있는 안전한 회색지대에 안주하려 한다.
성인과 죄인을 비롯해 모든 절대성을 추구하는 자들이 중립적이고 미온적인 중도, 즉 시민적인 것을 긍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위대한 것을 행하라는 소명과 재능을 받았으나 그를 이루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들의 훌륭한 발명품이라 할 수 있는 유머, 인류의 가장 독특하고 탁월한 업적인 유머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유머의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라야 인간의 모든 영역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속에 살면서도 마치 세상 밖에 있는 듯 사는 것, 법규를 준수하면서도 법을 초월하는 것, 소유하면서도 소유하지 않는 듯 사는 것, 포기하면서도 마치 포기하지 않은 듯 사는 것 등, 고차원적인 삶의 지혜를 실현시켜 주는 것은 오로지 유머뿐이다.
그래도 아무튼 우리의 황야의 늑대는 적어도 파우스트적인 이중성은 자신 안에서 발견했다. 자신이 하나의 육체 속에 하나의 영혼이 깃든 통일체가 아니라, 기껏해야 그러한 조화로운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기나긴 순례길에 오른 존재임은 깨달은 것이다.
“춤은 전혀 못 춘다고요? 원스텝조차? 그러면서도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고 주장하는군요. 그건 엄사라이에요. 춤 하나 배울 의지도 없었으면서 어떻게 치열하게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나에겐 더 이상 조국이란 것도, 이상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들은 다음 살육을 준비하는 양반들을 위한 장식품일 뿐이야.”
이 전쟁에서는 황제, 공화국, 국경, 깃발의 색깔 등 장식적이고 연극적인 시시콜콜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질식해 버릴 것 같은 인간, 더 이상 삶의 낙을 찾지 못하게 된 인간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해 차가운 회색빛으로 물든 문명 세계를 해체하려 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인간이 영속적인 통일체라는 견해는 오류일 뿐만 아니라 불행까지 초래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인간은 수많은 영혼과 자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겉보기에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는 개성을 그토록 많은 형상들로 분열시키는 것은 어쩌면 미친 짓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은 그것에다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까지 했지요. 어떠한 다양성도 통제 없이는, 다시 말해 규칙과 체계에 따르지 않고서는 길들일 수 없다는 점에서는 그러한 과학적 입장은 타당하다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수많은 잠재적 자아마저도 어떤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이며 평생을 따라다니는 질서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 믿고 있다는 점에서는 과학은 틀렸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