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거정은 세종 2년에 태어나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조선조 최고의 문장가요 학자였다. 자는 강중(剛中) 또는 자원(子元)이며,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으로 불렸다. 목사를 지낸 달성 서씨 미성(彌性)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 세종 20년에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하고, 세종 2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의 학문은 폭이 넓어 천문·지리·의약·점성술·풍수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종사관으로 다녀왔고, 세조가 즉위하자 세자 사부로 보임될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사은사로 중국에 갔을 때 그의 문장을 대륙에까지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국가의 전책(典冊)과 사명(詞命)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성종 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조선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 찬수에 깊이 관여하였고,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동문선(東文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의 편찬도 그의 손을 거쳤다. 예문관 대제학과 성균관 지사를 오래도록 겸하면서 문형(文衡)을 맡았는데, 45년간의 관직생활 동안 절반이나 문형을 관장할 정도였다. 아울러 전후 23 차례에 걸친 과거 시험을 관장하여 수많은 인재를 그의 손으로 뽑았다. 학풍과 사상은 조선 초기 관학의 분위기를 대변하였고, 정치적으로는 훈구대신 입장을 견지하기도 했지만, 여러 전적들을 편찬할 때는 신진 사림계의 인물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가 주축이 되어 편찬한 사서·지리지·문학서 등이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문집 ≪사가집(四佳集)≫이 세상에 전한다. 대구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역자 박홍갑은 1980년대 중반 이래 줄곧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곰팡이 냄새나는 고서들과 씨름하며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조각들을 꿰맞추며 살아왔고, 그 미완성의 퍼즐이라도 널리 알리기 위해 강의실에서 혹은 방송이나 신문 잡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문음제도 연구≫(탐구당), ≪병재 박하징 연구≫(경인문화사) 등과 같은 묵직한 전문서적이나 삼십여 편에 달하는 조선시대 정치사, 사회생활사 관련 논문들도 있지만,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가람기획), ≪양반나라 조선나라≫(가람기획)와 같이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문 교양서들을 보급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틈틈이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작업해 펴낸 ≪한국전통문화론≫(북코리아), ≪교양한국사≫(도서출판 서원) 등의 공저도 그러한 결과물들이다. 상아탑에 갇힌 우리 역사 및 문화를 대중들 사이로 과감히 물길을 튼 시도는 좋았지만, 만족할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것이 본인 스스로의 평가다. 그렇기에 박홍갑의 우리 역사 문화 대중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