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어느 책을 먼저 쓰고 뒤에 썼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두 책에는 각각 다른 책을 언급하는 부분이 많다. 가령 『군주론』 2장 처음에서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길게 논의했기 때문에 이에 관한 논의는 생략”하고 “나는 오직 군주국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다른 곳’이란 바로 『리비우스 강연』을 말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같은 입장에서 하나는 군주제, 다른 하나는 공화제에 대해 쓴 것이지 『군주론』은 군주주의, 『리비우스 강연』은 공화주의의 입장에서 각각 달리 쓴 것이 아니다. 반드시 그 중 하나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주가 되는 주장은 있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민주공화국 입장이었다.
--- pp.94-95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라는 문제에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인간을 다양한 가능성의 존재, 즉 상황에 따라 그 어느 측면을 드러내는 존재로 보고 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인간이란 전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하고(강연1권26장), 어떤 참주를 평가하면서 “사람이란 어떤 악이라도 태연하게 범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하여 완전무결한 성인일 수도 없”다고 한다(강연1권27장).
--- p.127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귀족과 인민 세력의 갈등과 대립을 현실의 정치로 긍정하고, 그 둘이 상호 균형과 견제하는 과정에서 법을 만들고 법에 의한 통치를 이루어 자유롭고 강한 로마를 완성하였다고 보았다. 이는 삼권분립이라고 하는 권력 간의 수평적 균형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더욱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리비우스 강연』에 담긴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한마디로 인민의 참여에 의한 ‘자유’와 ‘자치’라고 볼 수 있다. 로마 공화정의 성공 원인도 ‘자유’와 ‘자치’에 있다.
--- p.211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고대 역사가들이 운을 강조하는 이유는 로마가 강적을 만나 전쟁을 치른 적이 없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로마가 치른 여러 전쟁을 분석한 뒤 그 모든 승리는 “뛰어난 실력(비르투)과 신중한 배려가 종종 행운(포르투나)과 결합되어 얻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 p. 234
다시 『리비우스 강연』 1권 16장 「군주정의 지배에 익숙한 인민은 우연한 사태로 인해 자유를 회복하여도 자유를 유지하기 어렵다」에서 대다수 인민은 삶의 안전을 위해 자유를 원한다고 하고, 또한 1권 17장에서는 제목부터「부패한 인민은 자유를 얻더라도 자유를 유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나아가 1권 28장에서는 “인민은 자유를 잃지 않고 지속할 때보다 도리어 일단 잃었던 자유를 되찾을 때 더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고 하고, 두 나라가 경험한 바가 달라 차이가 생겼을 뿐이므로 아테네를 비방하고 로마를 찬양할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1권 29장에서는 “자유를 누리는 국가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는데, 첫째는 자국을 강대하게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자국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자유란 공화정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 p.252
로마가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제정된 모든 법률은 그들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즉, 평민과 귀족의 대립과 갈등이 로마를 약화시키기는커녕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로마가 몰락한 이유는 인민이 사적 이익을 위해 자유를 포기한 탓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것이 “불평등으로부터 유래”했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불평등을 제도화하는 것은 귀족이므로, 특권 계급(귀족)이야말로 로마 멸망의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 p.283
마키아벨리는 “덫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고 늑대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사자가 될 필요가 있다(군주18)”고 말했을 뿐, 군주가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여우나 힘을 쓰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음을 주의해야 한다. 즉, 여우는 현명함, 사자는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리를 규제하는 위엄성을 상징할 뿐이다. 이러한 주장은 정책과 치안의 원리에 불과한 것이지 특별히 사악한 통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 두 가지는 군주가 지녀야 할 바 중에서 ‘짐승’ 차원의 낮은 가치의 일부에 불과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인간’ 차원의 가치, 즉 법에 의한 규율과 정의의 확립이라는 더 높은 가치가 있음을 마키아벨리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처럼 마키아벨리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말한다. 즉, 정치에서 도덕은 중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도덕에 반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본 것에 불과하다.
--- p.325
이처럼 마키아벨리의 글을 읽을 때에는 그 전후 문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어떤 서술의 전제가 되는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 가령 『군주론』 18장에서 “현명한 통치자라면, 신의를 지키는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자신이 약속한 이유가 소멸할 경우 약속을 지킬 수 없고 또한 지켜서도 안 된다”고 한 문장에도 조건이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즉, “신의를 지키는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또한 자신이 약속한 이유가 소멸할 경우”라는 단서 조항을 두었다. “약속한 이유가 소멸”한 후자의 경우 사정 변경의 원칙에 의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자신에 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전자의 경우 그 불리함이 약하다면 악덕의 권유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조국의 존망과 같은 경우라면 악덕이라고 할 수 없다.
--- p.334
마키아벨리가 특히 중시하는 것은 호민관과 호민관이 갖는 탄핵권이다. 마키아벨리는 호민관이 로마 제국 마지막 왕인 “타르퀴니우스 왕가가 사라진 후” “인민과 귀족 간의 불화로부터 초래된 많은 혼란, 소동 및 내전의 위험을 거친 다음에” “인민의 안전을 위해 창설”했다고 본다(강연1권4장). 이는 “타르퀴니우스 왕가가 사라진 후” 군주정적인 집정관과 귀족정적인 원로원만이 존재하고 민주정적인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인민을 지배하고자 하는 귀족과 인민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면서 인민을 옹호하고 그 이익을 주장하는 관직인 호민관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의 권한으로 탄핵권이 인정되었음을 말한다.
--- p.352
이처럼 선거 제도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은 것은 공화정이 부패한 탓이고, 부패의 원인은 명예를 소중히 여긴 지배 집단의 가치가 붕괴한 탓이라고 마키아벨리는 본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가 『도시가 세워지고부터』 3권 26장에서 들었던 사례를 다시 들어, 킨키나투스와 같은 지도자가 보여 준 청빈함은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의 시대까지 유지되었다고 한 뒤,『리비우스 강연』 1권 55장에서 공화정 말기의 지도자들은 “토지 소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일하지 않고도 사치스럽게 사는 자”들이라고 한다. 즉, 부패의 책임이 지도자에게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부를 경시하여 인민적 삶의 기초를 불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빈곤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물질에 대한 지나친 숭배와 편파적 집중은 용납할 수 없다고 본다.
--- p.368
과연 500년 전 이탈리아 땅에서 살았던 사람을 지금 우리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무엇인가? 우리는 500년 전 이 땅에서 살았던 우리 선조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100년 전, 아니 몇 년 전의 사람도 잘 모르지 않는가? 마키아벨리의 시대는 우리 시대와 반드시 같다고 할 수 없어도 비슷한 점이 많다. 당시 이탈리아는 우리보다 더 잘게 분단되었고, 분단된 도시 국가들도 갈등과 분열로 찌들었으며, 따라서 언제나 강력한 외국의 침략에 시달렸다. 그런 상황에서 나라를 통일하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고민했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기에 무조건 통일해야 한다는 식의 감상주의에 마키아벨리가 젖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모든 이탈리아인, 모든 이탈리아 도시의 완전한 통합을 이루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가 바란 것은 이탈리아가 더 이상 외세에 짓밟히지 않고 해방되어 자유와 평등을 확보하는 것이지 무조건 하나의 나라 아래에 통합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통일 방안은 각 도시 국가의 다양한 개성을 인정하면서 하나로 연결되는 연방제 같은 것이었다. 나는 우리의 통일 방안도 그러해야 한다고 본다. 남북한 통일만이 아니라 동서의 분열을 막는 방법도 그러해야 한다고 본다. 아니 제주도까지 포함하여 모든 지역이 더욱더 독립성을 보장받으며 서로가 연대해야 한다고 본다.
--- pp.422-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