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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리운 그날들

: 어느 여자의 두려움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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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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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38쪽 | 628g | 151*224*30mm
ISBN13 9791190822299
ISBN10 1190822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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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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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만 가끔 말씀하셨다. 그 시절에 딸을 낳고도 으스댔다고…. 그렇게 양가 모두가 처음 맞는 손녀였다. 외할아버지는 왜정 치하에서 갈수록 흉포해지는 공출을 피할 수는 없고, 딸의 해산 시기는 한참 보릿고개라서 출산 후 쌀밥도 제대로 못 먹일 것을 염려해서 할머니와 두 분만 아는 비밀로 두꺼운 요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특수제작품인 그 요 속엔 푹신한 흰 솜 대신 하얀 쌀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러니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두껍고 푹신한 쌀 침대에서 태어난 것이다.
--- p.40

세 살, 여섯 살, 아홉 살의 우리 3남매는 잠을 깨면 항상 다른 집에 있었다. 한번은 우리 집 머슴살이를 하던 한 서방네 다락에 셋이 앉아서 자고 있었다. 벽장이 너무 좁아 셋을 누일 수도 없었던가 보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쌀밥을 자주 먹을 수 있었던 건 엄마의 기막힌 기지와 배짱 때문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때 우리 집에 쌀 넣어 두는 광(안방 뒤에 윗목 측엔 뒷마루, 아랫목 측엔 오시이레라고 하는 마루방이 있었는데 우리는 쌀 광으로 썼던 것 같다)은 물론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지만, 광의 마루 밑이 부엌 찬장 밑과 연결되어 있던 것이다. 엄마는 부엌 찬장 밑을 파고 들어가 쌀 광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쌀가마마다 조금씩 표나지 않게 쥐가 파먹은 것같이 쌀을 꺼내왔다. 정말 그 배짱이 대단하지 않은가? 우린 그렇게 엄마의 기지로 굶주리지 않고 쌀밥을 먹으며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 p.58

엄마! 울 엄마! 40년도 못 채운 짧은 생을 살다 홀연히 세상을 떠나버린 우리 엄마! 난 엄마 딸로 태어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엄만 나의 전부였고, 나를 위해선 뭐든 했던 엄마는 열아홉 살이나 먹은 딸에게 유산 사실도 숨기며, 생리대까지 빨아주었던 분, 우리 다섯을 위해 희생만 하다가 간 우리 엄마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고 마음씨까지 천사 같았다. 엄마는 그렇게 짧게 살다 가려고 그리 모습도 아름답고 마음씨도 순결하고 곱게 향기로운 목련꽃처럼 태어났나 보다.
--- p.92

밥은 굶어도 먼저 동생들 학교에는 보내야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건 또 엄마의 뜻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패기가 생겼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지금의 이 상황을 극복하려면 내가 좀 더 독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셋째 혜정에게 내년에 오빠를 먼저 고등학교에 보내고 한해 뒤에 중학교에 가도록 양해를 구했다. 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희생해준 혜정. 언제나 양보로만 일관되었던 셋째에 대한 미안함은 지금도 내 가슴 한구석에 앙금이 되어 아픔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집안을 챙겨놓고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 p.136

이사를 하기로 했다. 남편의 문패를 처음 달아놓고 그이와 함께 드나들었던 대문. 집안 곳곳에 그이의 체취로 가득한 그 집에서는 그리움의 눈물과 외로움의 한숨으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복덕방에 집을 내어놓자 반듯하고 향이 좋아 금방 팔렸다. 새집을 구해 이사했다. 모든 것을 잊고 마음을 잡아 새롭게 시작하려 한 그 집도 ‘남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그런 집이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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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 몸은 약해지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용기를 가지게 된다. 대개 소설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것으로 시작하면 불행으로 막을 내린다. 이 여성은 소설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극적이다. 술술 읽기 편한 책으로 그냥 생활 자체가 덤덤하게 전개되는 것이 좋다. 나와 같은 때를 살고 있으나, 나는 원시시대, 그녀는 화려한 귀족처럼 대조된다. 그녀는 40도 안 된 어머니를 잃고, 좋은 남편을 만나서 사별한다. 실패와 성공이 교차한다. 고령자로서 재혼한다. 영광과 창피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 사랑과 신앙으로 살아간다. 좋은 삶이다.
- 최길성 (일본 동아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전쟁의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세계 유일의 사랑의 쌀 침대 위에서 태어난 저자의 책을 읽어 갈수록 고통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할까? 10대에 어머니를 떠나보낸 맏이로서의 5형제 가장의 삶, 30대 초반에 3자녀를 남겨놓고 떠나버린 남편과의 이별, 60대에 재혼의 용기, 그녀에게는 고통을 발효시켜 삶의 동력으로 승화시키는 마법이라도 가진 것일까? 저자는 삶의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 맑고 향기로운 샘물을 퍼 올려 주변에 공급하는 삶을 살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무거운 삶의 고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승화시켜 아름다운 삶을 이룬 연약하면서도 강한 이 시대의 여인 중 군계일학의 일생을 산 주인공이었다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저자는 단수이지만 복수의 삶을 살아온 이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이고 어머니이기에 그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 장인순 (前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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