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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내민 남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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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42g | 151*212*29mm
ISBN13 9791198087485
ISBN10 119808748X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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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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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사랑하는 건 쉽지. 이해하고 보살피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하고 누군가가 어떤 영적인 존재가 속삭이는 듯했다. ‘알고 있습니다. 사랑은 쉽죠. 먹여 살리는 건 힘듭니다.’ 무종도 한마디 했다. ‘바보, 그게 사랑이야. 넌 그조차 부족한 거야.’ 목소리가 말했다. 무종은 바로 외쳤다. ‘그래, 연인도 가장도 잘 못 되는 남자가 여기 있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무종은 1인 2역을 하며 머릿속에서 실내극 한 편을 완성하였다. “이제 제가 드릴 말씀은 다 드린 것 같습니다. 초면에 실례가 안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초면은 무슨… 블루리버 호텔에서 젊은 여자 끼고 논 건 뭔데?
--- p.17

“전 내 편이 필요했어요. 미안해요.”
사심 없이… 내 편… 무종은 듣고만 있었다. 이런 얘기를 두 사람이 하게 되리라고 그때 17년 전엔 상상이나 했던가.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공모자가 되어, 좋게 말해 한 편이 되어 창밖으로 땅거미가 지는 커피숍에 앉아 있다. 치정, 불륜, 돈, 욕망, 파멸 그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외국영화에서 젊은 여자가 남자를 파멸시키고 타낸 보험금으로, 콜드크림 바른 몸에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휴양지의 오후를 만끽하는 장면도 떠올랐다. 그런 영화에선 남자도 공모자도 결국은 차례차례 여자에게 배신당하고 만다. 무종은, 그녀가 그런 여자가 되어 그를 버릴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긴 뭘 버린다는 건가. 가진 적도 없는데, 김무종 따윈 가지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무엇이건 간에 돈이 개입되는 순간 두 사람은 계약관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다.
--- p.42

브람스가 끝나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향해 수없이 박수를 보낸 무종은, 퇴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밖으로 나와 그 자신 또 하나의 음악이 되어 로비로 계단으로 물 흐르듯이 떠내려갔다. 역시 반은 음악이 된 아내가 말없이 그와 동행하고 있었다. 극장 밖에는 갑자기 펼쳐진 것 같은 청동빛 밤하늘이 아스라이 빛나는 별들을 품고 머리 위로 광활하게 떠 있었다. 이 밤하늘 아래 세계는, 음악 후의 침묵이 던지는 미세한 파장에 가녀리 떨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이러한 밤, 부부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이 일대에서 알아주는 호프집을 찾아 들어갔다.
--- p.154

집에 들어서자 현관에 내팽개쳐진 경서의 가방이 그를 맞이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마구 벗어 던지느라 뒤집힌 채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도 눈에 띄었다. 오늘도 화장실 앞에 내복하의와 골덴바지가 둘둘 말려 계셨다. 그 풍경을 평소에 무종은 좋아했지만 오늘은 어떤 통증 같은 게 거기에 있었다. 작은 방의 문을 열자 경서와 민주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목만 내밀고 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한테 야단을 맞았는지 둘 다 까부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때 등 뒤에서 안방 문이 벌컥 열렸다. 변가영이었다. 아직 일하러 안 간 것이다. 그녀가 불쑥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뭐야?”
코앞의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전세보증금 2천만 원에 가압류가 들어와 있었다. 가압류한 회사는 사금융업체인 은하 파이넌스였다
--- p.181

“성종수 이 쌍놈의 새끼. 그년이 하도 졸라서 오빠라는 3류대 나온 새끼를 회사 넣어줬더니 짜고 협박을 해?”
“원래 불만이 많은 놈인데… 은하 파이넌스에서 모닝샴푸로 전출돼 온 게 분한지 평소에도 인상을 쓰면서.”
“미친 새끼. 일류대 나온 놈도 골라 받는데, 지깟놈이… 야채가게 하나 있는 거 말아먹고 아동전집 나까마나 하는 놈을 금융팀에 박아줬더니… 그런데 그년 혹시 이복동생 아냐?”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루지 못할 사랑이네.”
“네, 뭐 형사도 아마 그렇게 결론 내릴 걸로.”
“부검했다는 소린 못 들었지?”
“전혀 못 들었습니다.”
“내가 만약 마약을 했다면 그년도 같이 했겠지, 안 그래?”
“아… 그래서 부검 없이.”
“뭐가 그래서야? 마약 같은 소리 입 밖에 내는 순간 니가 바로 약쟁이가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압니다. 마약은 우리나라 사람은 잘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아네. 마약도 그렇고 총질도 그렇고 백의민족이 그런 걸 하겠냐고.”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로.”
“그걸 다 알면서 희망도 없는 백성처럼 조직을 이따위로 운영하냐?”
“희망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회장님.”
--- p.234

“감독님, 제가 아는 아이들 중에 일진 소녀들이 있습니다. 중삐리들인데 보통 대찬 게 아닌데 모닝샴푸를 이미 사용해 본 적이 있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고 감독이 무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배우가 고아원에 봉사 다녔는데 그때 알았던 동생들로 설정을 잡고, 그 아이들이 깡패들에게 복수를 하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무종은 이 아이디어에 스스로 놀라 얼굴이 벌겋게 흥분되어 있었다.
“복수라… 소녀들이?”
“네, 아무래도 요즘은 페미니즘이 대세니까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시는 게.”
“그게… 좀 일본 애니 같지 않소?”
“앞으로는 소녀들이 비전이 될 수 있습니다. 티란티노 감독 같은 분에게 조언을 한번 구해 보시면 어떨지.”
“그 사람 알아요?”
“… 박찬욱 감독이 친한 걸로.”
“박 감독은 알고?”
“그런 건 아니지만 …….”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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