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든 케이블 방송이든 가릴 것 없이 앞다퉈 리얼리티쇼를 제작하면서 시청률 경쟁에 나서다 보니 다른 유사 프로그램들과 차별성을 줘야 하겠고, 결국 출연자들을 상대로 톡톡 튀는 발언을 유도하고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 더욱더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광고수입도 늘리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리얼리티쇼란, 시청자들에게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착각이 들도록 ‘허구’를 곁들여 만들어 낸 ‘가상의 현실’을 다룬 프로그램이라고 봐야 한다. ---p.25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미국 텔레비전 방송이 동성애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보다 전향적이고 긍정적으로 묘사해 미국인들의 폭넓은 공감과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여 여론의 향방을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성애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텔레비전이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했던 여러 주제, 예를 들어 흑백 인종차별 문제, 반전시위, 드라마 내 섹스 묘사처럼 한때 금기로 여겨지던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바꿔 놓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하다. 동성애와 성소수자들에 대한 미국 텔레비전의 전향적 태도와 긍정적 묘사는, 원만한 사회통합과 문화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텔레비전매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효과적인지를 입증하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되고 있다. ---pp.50-51
문제는 이처럼 텔레비전 방송 출연자나 기자, 아나운서로 대중적 인기를 누린 인물이 정치인으로 변신할 경우, 평소 방송에서의 발언이나 취재 보도내용이 정치권력을 잡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 만큼 어느 누구도 이들의 정계진출을 가로막을 권리는 없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얻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하려는 인물들이 넘쳐 나는 나라에서는 결코 정상적이고 내실 있는 정치가 이뤄지지 않고 근시안적이고 대중선동을 기반으로 하는 이미지 정치가 판치게 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았다는 친근함에 이끌려 이들을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등으로 손쉽게 뽑아 주는 유권자들의 얄팍한 정치의식과 투표관행도 반드시 사라져야 할 우리 시대의 악습이다. 그런데 오늘 이 순간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텔레비전 출연자가 내일이면 대중적 정치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텔레비전매체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여실히 입증한다 하겠다. ---pp.102-103
시청자 기부금과 연방정부 보조금으로 하루하루 연명하기에 급급한 미국의 공영방송 체제를 살펴볼 때,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수신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재원확보 방안보다는 시장논리에 따라 상업방송과 경쟁하면서 시청률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자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시청자에게도 더 유익한 길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결국 KBS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의 수입은 시청자들이 납부하는 수신료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방송광고를 통해 충당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공영방송에서 방영하는 방송광고를 없애면 당장은 기업이나 재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고 상업성을 배제하고 공영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여론몰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0퍼센트 수신료로만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되면, 5-6년에 한 번씩 수신료 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부와 국회, 정당 관계자들에게 수신료 인상안을 들고 가 읍소해야 하는 등 정치권의 영향력에 더욱 휘둘리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공영방송도 재원부족과 정치권의 공방에 시달리면서 소수의 시청자와 청취자들만을 상대하는 미국 공영방송 PBS나 NPR처럼 고독한 방송으로 전락하게 될지 모른다. ---p.125
대선후보들 간의 텔레비전 토론은 1960년 공화당 리처드 닉슨과 민주당 존 F. 케네디 후보 간에 사상 처음으로 이뤄졌다. 당시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노련하지만 지치고 병약한 모습의 현직 부통령 닉슨보다 젊고 잘생긴 용모의 상원의원 케네디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케네디가 대선에서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텔레비전 토론이 큰 원동력이 되었다. 당시 대선후보들 간의 텔레비전 토론을 계기로 미국 언론학계에서는 텔레비전매체의 후광효과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풍부한 국정경험이나 정치경력, 원숙함을 내세우는 것보다 온화한 미소와 호감 가는 용모, 그리고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긍정적 관심과 지지를 더 얻게 돼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 실질적인 내용보다 겉치레와 이미지가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대목이기도 하다. ---pp.138-139
아시아나항공기 착륙사고를 계기로 우리 텔레비전 방송이 보다 더 노력해야 할 것은, 한국과 미국 또는 한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와의 이해가 걸린 국제선 항공기사고 보도에 있어서는 방송뉴스가 때때로 불균형적이고 일방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다는 국제뉴스의 특성과 한계를 인정하면서, 사고 관련 보도가 마무리될 때까지 균형과 공정함의 잣대를 상대 국가의 방송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면밀히 적용하는 것이다. ---p.187
미국 네트워크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와 관련하여 신중한 시각을 유지하며 시위행진이나 체포 등 사실전달 위주의 보도에 치중했는데, 시위 참가자들의 주장과 불만을 집중 조명하거나 근본적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 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들은 전통적 대중매체인 텔레비전이나 신문 보도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주장을 펴거나 시위장면을 담은 글이나 사진을 부지런히 올리고 전파하느라 분주했다. ---pp.196-197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시민혁명은 이미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아랍권의 뉴미디어 혁명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위성 방송과 인터넷의 확산으로 시작된 아랍인들의 자각이 2011년 자유를 갈망하는 신세대 계층의 욕구와 맞아 떨어져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교체 도미노를 불러온 것이다. 대다수 국민과 교감하지 못하고 그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 올드미디어 지상파 텔레비전들은 시민혁명으로 권력에서 쫓겨난 독재자들처럼 쇠락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북아프리카나 중동 지역과 달리 북미와 유럽, 아시아 각국의 지상파 텔레비전들은 아직도 월등히 우수한 콘텐츠와 비교적 충실한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다채널 매체 환경과 눈부신 기술의 진보 속에서 거대방송 또는 대기업이라는 위치에 안주하면서 스스로의 변신을 망설이거나 환경변화에 무감각하게 지내다 보면, 지상파 텔레비전은 어느 날 뉴미디어의 물결 속에서 주도적 역할을 상실한 채 왜소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자화상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p.207
일방통행식 메시지 전달을 중심으로 이어 온 산업화시대의 독과점 방송체제는 이제 작별을 고할 때가 가까워졌다. 방송사와 채널 수의 양적 확대는 기존 독과점체제의 방송구조에 새로운 다양성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방송사가 많아지면서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게 되는 방송사들만이 경영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광고 단가와 물량의 재조정이 이뤄지면서 새로운 방송환경에서 최적의 콘텐츠와 시청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송사들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텔레비전매체는 기존의 공중파 방송이나 케이블 방송 수준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화된 기술을 활용해 날로 진화해 가고 있다. 수많은 미국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거실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이용해 케이블 방송이나 지상파 방송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다가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영화 대여업체인 넷플릭스나 훌루에서 최신 개봉 영화를 직접 내려받아 즐기거나 음원업체인 판도라에서 애청곡을 골라 듣기도 한다. 그야말로 텔레비전은 이제 전통적인 기능 외에도 극장, 콘서트홀, 라디오, 그리고 컴퓨터로서의 기능을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p.218
다매체시대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텔레비전매체와 방송업종이 앞서 소개한 다른 미디어업종들처럼 사양길로 접어들지 않고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매체환경 변화 속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타 매체들과의 경쟁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타 매체의 장점을 융합해 폭넓은 소비계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난 80여 년간 이루어진 텔레비전 매체와 업계의 변화상을 되돌아보면 텔레비전이 환경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하면서 기술과 내용 면에서 변신과 진화를 거듭해 온 사례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앞으로도 텔레비전의 미래가 밝다고 믿게 되는 이유다. ---p.253
지금까지는 시청자들이 DVR에 녹화한 프로그램을 보려면 반드시 집에 돌아와 DVR를 작동시켜야 했지만, 앞으로는 케이블 방송사 서버에 설치된 원격 네트워크 DVR 또는 클라우드 DVR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간편하게 녹화 저장해 두고 지하철이나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이거나 여행 도중이더라도 ‘어디에서든지’ 마음대로 재생해 틀어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시청자들은 기존의 텔레비전 리모컨 외에도 자신의 핸드폰이나 태블릿 PC 등을 이용해 방송 프로그램을 녹화 재생할 수 있다. 언제든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이른바 ‘time shift’ 개념에 뒤이어 앞으로는 어디에서나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이른바 ‘place shift’ 개념으로 DVR의 기능이 확대되면서 시청자의 편의성 또한 획기적으로 증대되는 것이다. ---p.262
텔레비전의 미래에 있어서 어떤 요소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할지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전설적인 방송인 에드워드 머로가 남긴 한마디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통신혁명의 발전과 최신 컴퓨터의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방송인들은 결국 예전부터 끊임없이 고민해 온 한 가지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과연 방송을 통해 무엇을 말해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텔레비전의 미래는 기술발전 이외에도 그 속에 담길 방송 내용과 프로그램 콘텐츠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언론학자들 사이에 텔레비전매체의 변신과 진화와 관련해 의견의 일치가 이뤄지는 부분이 있지만, 장기적인 미래 예측에 있어서는 제각기 의견이 다르다. 이런 학계의 고민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2012년 언론학자들이 텔레비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서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의 명칭은 단순명료했다. “What is Television?” 도대체 “텔레비전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끊임없이 발전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텔레비전의 미래상을 학자들로서도 쉽사리 내다보기 어렵다는 자기고백인 셈이다.
---pp.282-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