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민주주의의 사상적 근간, 자유
-루소와 헤르더의 자유개념과 인본성을 중심으로-
1. 인간의 의제설정: 인본성과 자유
역사의 목적은 인본성(humanity)의 완성이다. 인본성으로 충만한 사회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선한 삶이 가능한 선한 사회를 의미한다. 인본성을 통하여 인간은 인간의 본질적 조건을 그 자체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인본성 완성을 위한 선결 조건은 인간의 자유이다. 사실상, 인본성은 ‘자기실현(self-realization)으로서의 인간의 자유’라는 사고방식의 개념적 근거를 형성하고 있다. 자유를 자기실현으로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그린(Thomas Hill Green)은 자기실현이란 또한 타자의 실현과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사회 공동의 도덕적 목표라고 주장한다. 특히 인본성은 모든 인간의 선한 삶에 대한 이해에 근거한 삶의 양식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 개념은 그 사회적 상황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자유란 인간의 선한 삶을 위한 선결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는 가정과 또한 훌륭한 사회는 자유 사회여야 한다는 신념이 필자의 기본적 전제이다. 사실상, 역사에서 자유에 반대하는 자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개념과 방법론 - 자유가 무엇인가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자유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여기서 필자는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필수 조건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Man is born free.)’는 루소의 명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한다. 여기서 자유는 인간의 태생적 자유를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자율적이고,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고, 규제 받지 않는 인간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인간은 도처에서 사슬에 매여 있다.(man is in chains everywhere)’는 명제에도 또한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여기서 ‘사슬’은 원래 인간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공동체가 원인이 되어 형성된 것이다. 루소는 이 두 가지 측면을 역설적으로 연결시켜 하나로 통합시키고 있다. 즉, 인간은 끊임없이 세상이 주는 질곡과 사슬로부터 벗어나 사회에서 상실해 버린 태생적 자유를 회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자유를 회복하려는 역사적 과정에서, 루소는 자유를 자연적 감정(natural sentiment; amour de soi & pitie)과 이성(reason)의 결합이라고 규정한다.
“외부적 장애 없는, 그러나 내부적 규제 하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루소의 자유에 대한 정의에 동의하면서, 헤르더(Herder)도 또한 자유를 내적 구조뿐만 아니라 외적 조건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개별 인간의 내재적 자유 개념에 동의하면서도, 헤르더는 타자(other)의 존재 없이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자유로운 개인이란 본질적으로 자율적이며, 자기-결정적이라는 칸트(Kant)의 주장은 루소의 ‘자기 부과적 명령(self-imposed command) 개념의 영향력 하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의 자유’라는 헤르더의 주장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한마디로,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인간은 우선 자신의 이기적 열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인류의 공동선에 근거한 삶의 기초를 이루는 인본성이라는 관점에서, 자유 개념은 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자유는 장애나 규제로부터 자유로우면 된다거나, 행동하고 선택할 자유가 있으면 된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인의 자유는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그의 지위에서 시작한다. 인본성의 시각에서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의 자유만이 존재한다. 여기서 필자는 자유 개념을 인본성 관점에서의 통합 개념으로 설명하고, 사회구조 안에서 자유를 추구하고자 한다. 자유 개념의 역사를 보면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마디로 자유란 개인적 차원에서는 칸트의 자율성 개념에 따라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이라고, 사회구조와 관련해서는 인간 존재의 조건이라고 필자는 규정한다.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o Croce)는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인본성은 언제나 그 자체로서 전부라고 말한다. 우리 개인은 인본성과 더불어 발전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인본성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전체의 발전 없이, 우리의 도덕이나 물질적 상황도 개선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체와 개인 간의 유기적 관계가 전체주의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발전이 사회 발전의 전제 조건임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우선 목표는 여전히 각 개인의 도덕적 발전인 것이다.
헤르더는 인본성이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이상적 상태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그 이상적 상태를 달성하기 위하여 지니는 잠재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본성은 이상적 조건이자 동시에 규범적이고 실증적인 현실적 가치인 것이다.(Herder 1800, Book IV, Chapter VI) 한마디로 역사는 인본성의 역사이며, 인간 존재의 목표는 인본성의 형성에 있다고 하겠다. 쥐제뻬 마찌니(Guiseppe Mazzini)는 헤르더와 마찬가지로 인본성이란 신이 부여한 인간의 운명이자 의무라고 역설한다.
인생은 짧고, 인간의 능력은 약하고 불확실하여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제 신은 인간에게 지속적이고 수만 년간 모든 개인의 능력이 축적된 그 어떤 것을 내려 주었다. 그것은 인간의 수많은 실수와 잘못 가운데에서도 지혜와 도덕을 진작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인본성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 그러나 인간이 밝혀낸 진실, 인간이 행한 선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본성이 그것들을 보존하고 인간은 그 수확을 거둬들여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이다.(Mazzini 1929: 37)
인본성에 대한 능력은 인간만이 지니고 있으며, 오직 인간만이 인본성을 일궈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의 목적도 인본성을 밝혀내고 이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데 있다. 오직 인본성만이 인간에게 행복과 자기실현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인본성은 또한 역사에서 개인적 양상을 드러낸다. 실제로, 개인주의는 자유의지와 개인의 발전을 강조한다. 개인주의는 인간을 중세적 세계관에서 해방시켰으며, 새로운 사회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한다. 인간이 자기형성 능력을 개발할 때, 다가오는 시민사회의 동력이 될 사회의 역동성이 살아나게 된다. 따라서 인본성의 기본 개념은 바로 자유이다. 자유는 인간의 선한 삶을 가능케 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플라톤 이래로 모든 종류의 장애, 위험, 압제 없는 자유의 세계를 갈망하여 왔다. 플라톤은 인간을 동굴에서 끌어내어 이상사회로 인도하기 위하여 인간을 교화시키려 한다. 플라톤의 주장은 사실 소수의 현자에게만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 정신을 교화시키기 위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사회는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이라면, 헤르더는 이를 다수 대중(헤르더의 용어로는 민족[volk]이다)으로 확장시킨다. 헤르더에게 선한 사회라는 이상은 인간적이고 교화된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는 인본주의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회의 자유는 인간의 권리와 이익에 대한 이해로부터 가능하다. 이를 위하여,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정신이 필수적이다. 이 자유에 대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 자유는 인간에게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이는 개인의 사적 이익과 전체로서 사회의 선을 조화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때로 우리는 ‘개인과 사회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해야만 한다. 개인과 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이는 어리석은 질문이다. 자유는 때로 ‘타인을 괴롭히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개인 자신의 발전과 사회에서 개인의 발전은 조화될 수 있다. 개인도 사-회도 모두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따라서 개인이 자유 사회의 시민일 때 비로소 그 개인은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개인이 규제 받지 않은 진정한 자신의 의지로 한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자율적일 때 개인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루소와 헤르더와 같은 학자는 사회의 모든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개발하면서 공동체 전체의 선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은 타인의 바람과 의지와의 투쟁에 있어서 바른 길을 찾아내도록 하는 법을 따르는 것이다. 여기서 마찌니의 주장을 다시 들어보자.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