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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나라 길동무

멍청나라 길동무

주영희 저 / 남태영 그림 | 이음솔 | 2023년 02월 1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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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516g | 152*225*20mm
ISBN13 9791187695097
ISBN10 1187695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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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내일 아침 9시 40분발 중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러니까 5시에 나가야 한다고 남편은 고집하고 나는 6시에 가면 될 거라고 옥신각신했다. 남편이 4시 반에 휴대전화의 알람을 맞춰두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뒤척이다가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6시가 넘었다. “6시 9분”이라는 나의 외마디 소리에 남편은 평소와 달리 전기에 감전된 듯 단숨에 기상했다.

나는 얼른 옷을 챙겨 입고 세수하고는 아침에 먹고 가려고 준비해 뒀던 조반을 공항에서 하려고 챙겼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옷을 걸치고 간밤에 내가 준비해둔 양말을 한 짝만 신고는 다른 한 짝을 찾아다니고 있다. 행방이 묘연한 양말 한 짝은 찾을 수가 없다고 택시 잡으러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전화로 프런트에 부탁하면 된다고 해도 내려가는 것이 빠르다고 그 바쁜 시간에 고집부리고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나 혼자서 숨 가쁘게 마지막 점검하는 과정에 남편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앞에 떡 버티고 서서 수선스럽게 맘을 더 급하게 한다. 이럴 때는 도움받기보다는 방해만 덜 받았으면 좋겠다.

그를 모른 척하고 프런트에 전화해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호텔 방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가면서 쉽게 끌고 갈 수 있는 가방을 힘들게 들고 가면서 남편은 벌써부터 쓸데없이 진땀을 빼고 있다. 내가 남편 손의 가방을 받아서 손잡이를 빼 올려 쉽게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세수도 안 한 눈곱 낀 눈을 크게 뜨고 날 가만히 쳐다본다. 아마 존경의 눈초리 이리라. 가끔 남편이 이렇게 외계인처럼 행동할 때는 참 난감하다.

호텔 로비에 가니 엄마는 우리가 궁금하셨던지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신다. 미국에 사는 우리 가족과 동생 가족이 엄마 구순을 축하하기 위해 귀국해서 호텔로도 쓰이고 있는 엄마의 노인 아파트에 숙식하고 있다가 남편의 학회가 있는 중국으로 동반 여행을 가는 중이다. 우리는 3층에 머물렀고 엄마 아파트는 1층이다. 지난밤에 아침 5시에 나가야 하니 아침에 인사 못 드릴 것이라고 미리 엄마께 인사를 했었다. 근데 나는 양말 한쪽만 신고 요란하게 덜렁대는 남편 때문에 폭발하는 웃음을 가눌 수가 없어서 엄마께도, 프런트 데스크에서 택시 불러준 분에게도 인사를 대충 하고 문밖으로 나섰다. 아마 나는 이런 남편과 사는 동안 큰 웃음보가 하나 생겼는지 실없이 잘 웃어서 사람들의 눈에 나도 외계인처럼 보일 때가 많을 것이다.

남편의 머리도 못 빗고, 세수도 못 하고, 셔츠 단추도 잠그지 않고, 양말은 한쪽만 신고 있는 모습이 택시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 내 눈에 들어온다. 생수병을 주면서 물 마시라고 하니 미처 화장실 갈 시간이 없었기에 방광이 꽉 차서 못 마시겠다고 한다. 잠자리에 나와서 옷만 걸치고 나온 것이다. 나도 급하게 나왔으니까 남편과 별로 다른 모습이 아닐 것이니 남편 흉볼 것도 없다.

근데 참 신기하다. 우리는 거의 같이 일어나서 나는 세수하고 옷 입고 용변 보고 짐 챙기고 택시도 부르고 했는데 어떻게 남편은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섰는지…. 남편의 앞 단추를 여며주고 나는 생수 한 병을 열어 달래서 마시면서 택시로 들어갔다. 택시 속에서 물 마시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잔돈을 달라고 해서 천 원짜리와 오백 원짜리를 찾고 있는데 휴지를 또 달라고 한다. 남편은 택시 속에서도 나를 정신없이 만든다. 그러는 사이 금방 공항버스 타는 곳에 도착했다.

줄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우리를 태워줬던 택시 기사 아저씨가 택시에서 내려서 우리에게로 웃으며 다가온다. 남편이 덜렁거리다가 천 원을 덜 준 것이다. 더 주지는 못할망정, 남편의 실수에 바쁜 기사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서 오면서도 우리 대화를 듣고 남편의 별난 품성을 터득했는지 화내는 대신 웃음으로 대해주니 고맙고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공항까지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공항버스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큰 숨을 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남편이 맞춰둔 휴대전화의 알람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였고 우리가 가는 날은 일요일이란 것을 우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한쪽만 신은 남편의 양말을 벗기고 새 양말로 갈아 신기려 했지만, 남편은 고집을 부리고 거부를 한다. 나는 덩달아 보란 듯이 사진까지 찍어서 가족들에게 돌렸다. 남편은 한곳에 꽂히면 다른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다. 지금은 중국서 발표해야 할 세미나 준비에 꽂혀서 다른 것에는 전혀 마음이 가지 않는 것 같다. 아마 발가벗었어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중국의 대련 대학에서는 세미나가 끝나고 이제는 서남 대학에서 세미나를 하려고 남편은 강단에 섰다. 남편의 세미나 동안 대련 대학에서는 책을 갖고 가서 봤는데 이번에는 가져가려고 했다가 깜빡 잊고 갔다. 할 수 없이 남편의 세미나를 들어야 했다.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수학 이야기들이 내게 무슨 흥미가 있겠는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 남편의 신비한 표정과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아우라가 퍼져 나오는 것 같은 모습에 빠져들어 가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있던 이연주 교수는 “진짜 수학을 하시는 분이에요. 저도 저렇게 수학을 하고 싶어요. 진짜 부러워요. 정말 신나셨어요.” 이 교수에 덩달아 나도 경의에 찬 눈으로 한 시간 세미나 동안 계속 남편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정말 이 교수 말이 맞는 것으로 보였다. 평소에 유난히 큰 목소리가 상스럽고 시끄럽다고 생각했었는데 강단에서 저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카리스마와 자신감에 넘치고 재미가 나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다. 우리 아들이 자전거를 배울 때 처음으로 도움 없이 혼자 탔을 때의 표정이다. 저 남자가 내 남자가 맞는지…넓은 칠판에 가득 알 수 없는 수학기호와 숫자들을 몇 번이나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곤 하는 데 목소리만큼이나 글씨도 힘차고 진하다. 정열적으로 온 방을 사로잡고 왔다 갔다 하면서 강의를 하는 손에는 분필 가루로 뒤덮여있다. 중간중간 첸 교수가 학생들에게 중국 말로 설명해 주고 있다. 첸 교수가 남편에게 위임해서 남편과 같이 연구하고 있는 그의 수제자라는 ‘증 유’가 보충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남편의 강의를 ‘증 유’는 잘 이해를 하는지 내 뒷줄에서, 옆의 나이 든 교수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첸 교수의 질문에 남편은 눈을 반짝이며 쉬운 것 같은 예를 여러 가지를 들어가면 성심껏 답을 한다. 강의가 끝나자 첸 교수와 강의실의 모든 사람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다. 남편이 기를 쓰고 방학 때마다 고생스럽게 먼 나라들을 무거운 책을 짊어지고 다니는 이유를 이제야 대강 알 것 같다. 이 남편이 덜렁대며 양말 한쪽만 신고 왔던 그 남편인지 참 헷갈린다. 34년을 같이 살면서 처음 본 남편의 모습이 꽤 괜찮아 보였다. 완전한 반전이다. 남편이 두 얼굴의 사나이였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
---「두 얼굴의 사나이」중에서

공항행 버스에 오르는 내게 남편은 “도착하면 전화해” 하고 계속 말한다. 미국인들 앞에서 목청 높여 한국말을 하는 남편이 참 예의 없고 무식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말로 답하지 않고 연신 “오케이” 하면서 버스에 들어갔다. 남편은 내 말을 들었는데도 버스 속에 머리를 디밀고 또 크게 말한다. 버스 속의 모든 사람이 쳐다본다. 창밖에서 또 한참 동안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계속 흔들고 있다. 버스는 다음 정거장에서 사람들을 더 태워서 고속도로로 들어갈 것이다. 그곳은 남편이 직장동료와 만나서 같이 출근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 또한 버스가 다음 정거장으로 들어가려고 커브를 돌 때부터 남편을 찾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버스가 서는 곳에서 벌써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차 밖에서 또 “전화해”라고 입 모양으로 말하고 손을 흔들고 있다. 주위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다. 내가 물을 마시려고 잠시 몸을 돌렸더니 그 새 내 시야 안에 들어오는 차 앞으로 이동해 있다. 기사 아저씨 눈에도 별나게 보였던지 당신도 가느냐고 남편에게 묻는다. 가라고 손짓해도 안 가고 있다가 차 문이 닫히니까 계속 내 쪽으로 바라보고 손 흔들면서 가더니 차가 가는 방향으로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는 온몸으로 손을 크게 흔들고 있다. 한국 방문 3주하고 온다는데 영영 이별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남편의 행동이 민망했다. 버스 속의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남편의 행동에 내내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는 이렇게 어린애같이 행동할 때가 많이 있다. 우리는 30년 넘게 같이 살았다. 처음 10년은 싸움닭처럼 서로 푸다닥거리며 싸워대곤 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철이 없었던 그때는 양보라는 단어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살았다. 나는 그 당시에 내 친구 다이안에게 내 속에 있는 남편에 대한 모든 험담과 분노를 다 쏟아 내곤 했다. 다이안은 언제나 관심 있게 들어주고 상담도 기꺼이 해주었다. 어떤 때는 내 편을 들어서 같이 남편을 성토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의 입장에서 나를 이해시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심각하게 친구에게 남편과 더는 살기 힘들겠다고 했다. 친구 또한 심각하게 끝까지 다 듣더니 내게 물었다. “평소에 네 남편이 널 웃게 하니?” 나는 그녀의 엉뚱한 질문에 다시 생각해 봤다. 그는 날 웃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하는 나에게 다이안은 “그러면 이혼하지 마. 고쳐서 데리고 살아.”

남편은 늘 엉뚱하게 날 웃게 한다. 나는 언제나 정해진 짧은 시간 내에 해야 할 수많은 일에 눌려 긴장해 있었고 웃음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남편은 웃기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그런 쪽에 전혀 소질 없는 남편의 순수한 생각과 행동이 유치해 보일 때도 있지만, 긴장을 늦춰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들이 사춘기 때, 몸에 겨운 힘든 운동을 하고 온 날이면 다음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몇 번 깨우다가 화를 내고야 마는데 남편은 아들을 웃겨서 깨운다.
“아빠, 10분만”
“아빠, 5분만”
“아따, 또 분만하냐? 몇 번을 분만하냐? 도대체 우리 손자가 몇 명이나 태어나는 거야?”
“분만이 뭐야?”
“뭐긴 뭐야. 아기 낳는 거지.”
“푸하하하…”
아들은 피곤해서 눈도 잘 못 뜨면서도 웃으며 일어나곤 했다.

남편은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데 자식들과 마누라가 제일 무섭다고 한다. 딸에게는 큰 호랭이, 아들은 작은 호랭이, 나는 만만한 호랭이라고 한다. 자기는 못된 호랭이들을 사육하는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토끼라고 한다. 딸이 전화하면 남편은 반가워서,
“아이고 야가 누고?”
“큰 호랭이” 하고 딸은 대답한다. 우리는 동물 가족이다. 남편은 전화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러면 딸은 다시 전화해서 아빠에게 통화 예절에 대해 한참 강의한다. 그러면 남편은 “각하 알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해놓고 다음에 또 그렇게 전화를 받는다. 교육이 안 되는 사람이다. 오랜만에 내 동생이 형부하고 통화하게 되니 반가워서 말을 하는 중에 남편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나를 바꾼다. 동생이 섭섭해해서 다시 바꿔주니 그제야 한참 식구대로 바꾸어 가며 전화를 한 날을 동생은 기념할 만한 날이라 했다.

이른 아침에 야채 주스를 침실로 갖다주면 내 야채 주스 컵하고 쨍하고 건배해야 먹겠다고 떼를 쓰는 것은 우리 애들이 세 살 때 하던 행동과 똑같다. 가끔 장 보러 같이 가면 애들처럼 큰 식료품점의 카트에 올라타고 주차장에서 쏜살같이 달린다. 식료품의 시식 행사에는 절대 빠지는 법이 없다. 입맛에 맞으면 눈치 없이 자꾸 가서 기웃거린다. 진료실에서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에 서랍 속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끝내는 열어 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치아 건강이 엉망인데도 치과에는 겁이 나서 못 간다. 보험료는 꼬박꼬박 내는데 치아가 건강해서 보험이 필요 없는 나만 혜택을 받는다. 일 년에 한 번 정기 의료 검진도 한참 다투고는 겨우 날을 잡는다. 헬스클럽에 같이 가면 여자 샤워실 앞에서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댄다. 딸을 방문할 때마다 딸 아파트 앞에 있는 옷을 벗는 나무에다 내 이름을 쓰고 장난한다. 그러면 딸은 사진을 찍어 돌린다.

화장실이 세 개인데 꼭 내가 사용하고 있는 곳에 와서 급하다고 빨리 일어나라고 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나를 밀어내고는 변기통을 타고 앉아서 큰 것이 빠져나오는 과정을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중계한다. 안 그래도 큰 목소리로, 오르락내리락, 때로는 숨 막히게, 때로는 간드러지듯, 해석을 곁들여서 상세하게, 단계적으로 정열적으로 온몸을 흔들어가며 중계한다.
“아… 난산입니다.”
“끄응”
“고지가 바로 눈앞입니다. 조금만 힘을 더 쓰십시오.’”
“끄으응”
“자 이제는 호흡을 가다듬고 젖 먹던 힘까지 보태서 더 길게 한번 쏘아 주세요.”
“끄으으… 응”
“국민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아들이 해냈습니다. 오랜 산고 끝에 황금알이 탄생했습니다. 난산을 순산으로 이끄는 대단한 기술입니다. 뼈를 깎는 인내와 번뜩이는 기지로 해냈습니다. 역시 대한의 자손입니다. 빵빠라 빵…”
일인이역의 이 희귀한 중계도 내가 듣고 있을 때만 한다.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집이 떠나갈 듯이 나를 불러들인다. 나 혼자 유일한 그의 청중이다. 하지만 아래층에서도 너무나 소상하게 잘 들릴 뿐만 아니라 그 기막힌 모습을 보는 것과 진배없다.

다이안은 내가 남편을 잘 고쳐서 데리고 산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나를 고쳐서 데리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일찍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속담을 깨친 것 같다. 그리고 마누라의 힘을 빨리 깨달았던 것 같다. 그는 내 이름의 ‘ㅎ’자가 범상치 않다는 것이다. ‘히틀러’, ‘히데요시’, ‘히데기’ 등 독재자들은 ‘ㅎ’자 항렬이니까 진작 숙이고 들어왔다고 한다. 요즘 한국에 회자하는 말로 남편은 나더러 ‘갑 양’이라고 부르고 자기는 ‘을 군’이라고 스스로 칭한다. 또 나를 마님이라고 하고 자기는 마당쇠라고 한다.

우리가 젊었을 적에는 맛있는 것은 자기만 먹는 줄 알던 남편이었다. 싫어하는 것이 자기 국그릇에 있거나 먹다가도 먹기 싫으면 나한테 다 갖다 놓던 남편이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아직도 음식 때문에 많이 다투지만, 이제는 맛있는 것은 나부터 주고 내가 먹다가 못 먹으면 남편이 처리한다. 무조건 내 편이다. 이렇게 비굴하게 자기를 낮추면서까지 나를 올려주고 대접해 주면서 평생 나를 죽도록 부려 먹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내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며 나를 꼭두각시 조정하듯 살아가는 것이다. 아마 내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만치 와서 보니 남편의 생각 일부분은 맞는 것 같다. 되풀이되는 인생사, 오늘의 재앙이 내일의 축복이 되는 인생사,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이 행성에서 영원히 살 것도 아닌 것을, 더욱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러니 세상에 매여 심각하게 고민할 일이 무엔가. 감사하며 사랑하며 좀 부족해도 웃으며 사는 것이지.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도 남편의 꼭두각시놀음에 놀아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내 남편은 엄청난 고단수임이 틀림없다.
---「꼭두각시 놀음」중에서

“너거언니는 머리에 베개만 갖다 댔다 하면 코를 엄청나게 골아 사서 내 평생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오빠는 한숨을 푹 쉬며 넋두리한다. 잠 못 자는 오빠도 딱하지만 죄 없이 죄인이 된 언니도 참 안됐다. 그래도 각방 안 쓰는 것을 보면 부부 금실은 좋은 모양이다.

사실 나도 코골이라면 할 말이 없다. 몇 년 전에 친구와 같은 침대에서 이야기하다가 잠들었는데 한밤중에 깨어보니 친구가 없어졌다. 내 코 고는 소리 피해서 거실의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친구에게 피해를 줬다. 집 떠나면 이런 일들이 종종 생긴다. 참 미안하고 부끄럽다.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닌데…. 잠들고 나면 내가 코를 고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올케언니 마음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남편은 한 번도 내 코골이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남편은 언제 어디서나 숙면을 할 수 있으니 코골이가 방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또한 코 고는 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자라서 내 코골이쯤은 문제가 안 되었을 것이다. 공항 대합실에서 자다가 깨면 많은 사람이 남편을 기이하게 쳐다본다고 하니 코골이 실력을 거기서도 유감없이 만인에게 보여준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천둥소리 같은 그의 코골이가 시작되다가 한참 숨을 안 쉬고 있으면 머리를 옆으로 돌려보기도 하고, 깨우기도 한다. 그러다가 도저히 잠들 수 없어서 다른 방에 가서 잠을 청할 때가 더러 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남편 코골이를 핀잔하고 놀려 댄다. 말도 안 되는 나의 타박에도 그는 언제나 빙긋이 웃으며 큰 죄인이 되어 미안하다고만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남편의 그 고약한 코골이가 고마운 콧노래로 들리기 시작했다. 만약에 오빠 부부처럼 나만 코를 골고 남편이 오빠처럼 내 코골이로 인한 불면을 호소하고 다니면 어쩔 뻔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남편의 약점이 내게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는 같이 늙어가면서 비슷한 실수를 많이 한다. 오늘 나는 어렵게 잡은 피부과 의사와의 약속 시간을 깜빡했다. 그리고 남편도 방학 중이지만 직원 사진 촬영 날이라고 학교에 갔는데 이번 주가 아니었고 다음 주라고 한다. 내 말을 들은 다음 순간 남편은 내 실수가 무척 반가운 듯 ‘우리 둘이 같이 멍청해서 참 좋다.’라며 해맑게도 웃는다.

젊었을 때는 숱하게 부부 싸움을 했다. 그러다가 서로의 허점을 드러내 놓기 시작하면서 싸움은 잦아들었다. 그래도 더 멍청한 행동으로 가정사에 손실을 초래하는 일등 공신은 단연 남편이다. 그러니 자연히 남편은 매사에 철저하지 못하고 용의주도하지 못한 것을 이미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가 집안일을 하고 나서 내가 다시 확인해 보지 않으면 나중에 오는 부작용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기 전공 분야는 아직도 주위에서 인정받고 잘 주도하고 있는 것 같으니 모든 면에서 모자란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자기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중하고 있으니 다른 일에는 뇌의 에너지가 잘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포기했다. 아마 나도 그가 저질렀던 수 없는 기막힌 일들로 인해 더 이상 기운 빼는 일은 인생의 낭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서로 닮느라 그런지 이제는 둘 다 똑같이 멍청한 행동을 밥 먹듯 하니까 매일 바보 나라에 온 것 같고 멍청이 대회를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은 예전보다 편하다. 웬만한 일을 저질러도 이제는 웃음만 나온다. 나도 남편처럼 이제는 실수를 저지르면 아예 “오늘도 한 건 했지!” 하면서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실수담을 펼쳐 놓는다. 그러면 같이 눈물을 흘리며 배꼽을 잡고 오줌을 찔끔거리며 웃는다. 고희가 눈앞인데 우리는 갈수록 애들처럼 미숙하고, 나사 몇 개쯤이 빠진 것 같다. 언제 어른이 될지 모르겠다면서 또 마주 보고 킥킥거린다. 멍청한 짓을 하고도 이렇게 즐거운 것을 보면 바보 나라에서는 바보가 더 존중받고 상을 받는 것인가 보다.

이제는 나의 지나온 발자취들을 정리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할 때를 살고 있다. 매일 살아가는 즐거움보다 삶의 무게에 더 기울어졌고 아파하며 지나왔던 숱한 날들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고치고 싶은 수많은 지나온 날의 발자국들이 아프고 안타까워서 스치는 실바람에도 가슴이 서늘하고 쓰라렸다.

하지만 아직도 내 인생의 가는 길을 알 수 없지만 왔던 길을 흘깃 돌아보면 어떻게 나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고 할 수 있으랴? 눈에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나를 여기까지 옮겨 놓은, 수 없는 도움의 손길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절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나를 조성하신 분의 강하고 펴신 팔이 나를 위해 곳곳에 준비해 둔 사람들이 갈 길을 일러주고 안아주고 교육하고 때론 업어 나르기도 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어리석고 무지하게 나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처럼 아파하며 외로워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내 인생 여정의 희로애락 속을 지금까지 함께 가고 있고 끝까지 갈 단 한 사람이 남편이라는 것이 새삼 애틋하게 다가온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같이 지고 가면서 제일 가까이에서 나를 귀하게 여기며 인정해 주는 남편에게 고마워한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그를 나의 짐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가? 그는 내 인생길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참된 친구다. 나의 교만하고 예민하고 까다롭고 절제 못 하고 참을성 없는 성정을 어루만져 둥글게 공글려주는 나의 천사이기도 하다.

그의 코 고는 소리가 이제는 나에게 정겹고 안심시켜 주는 소리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를 위해 그는 거꾸로 누워서 내 발을 주무르다 먼저 잠들어 기차 소리 요란하게 낸다. 거친 콧김을 내 품고 있는 그가 참 고맙고 믿음직하면서 불쌍해 보인다. 심하게 코 골다가 무호흡이 오래가면 고개를 돌려준다. 순간 쌔근거리며 평안한 호흡을 한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손잡고 간다. 40년 넘게 같이 온 우리의 날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세상 끝까지 손잡고 함께 갈 하늘이 주신 길동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가 멍청해 보일지 모르지만 멍청해서 더 행복한 길동무이다.
---「멍청나라의 길동무」중에서

주말에 집회가 있는 시카고의 선배님 교회를 방문했다. 감기가 들어서 망설이다가 한 주 전부터 설레며 계획했었고 남편이 중국 비자도 그곳에서 받아야 했던 터라 강행군을 단행했다. 교회 가는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다가 집회가 시작되고 손님 소개하는 순서 때에 들어가서 선배님 부부가 앉아 있던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목사님이 늦게 살며시 들어와 앉는 우리를 소개했다. 앞에 앉아 있던 선배님은 몸을 돌려 이제 막 열리려 하는 크림색 장미 두 송이를 내게 내밀며 “사랑해!” 했다. 나는 너무 뜻밖이고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되물었다.
“예?”
“사랑한다고!”
“아, 예. 감사합니다.”
뭔가 적절한 응답을 해야 할 텐데 나는 어정쩡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선배님은 이렇게 나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계획에는 없었지만, 선배님 댁에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감기가 심하게 들어있어서 선배님 댁에 가기가 꺼려졌지만, 초청을 거절하면 무척 섭섭해하실 것 같아서 염치 불고하고 늦은 시간에 선배님 부부를 따라갔다.

선배님댁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 시정도 취침에 들 시간이었다. 우리가 자야 할 방으로 안내해 주시는 선배님도 무척 피곤해 보였다. 내일 아침에 뵙겠다고 하고 바로 세수만 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그런데 눈보다 더 하얗고 깨끗한, 금테를 두른 이불보와 침대 보가 우리 부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새 침대 보와 이불보인 것 같았다. 꼭 이 집 주인을 닮은 단아하고 고급스러운 침대 앞에서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갈등했다. 우리가 이런 고급스러운 곳에 잘만 한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조심스러워 잠은 잘 수가 있을까. 침대에 들기를 망설이고 있는 내게 남편이
“밤새도록 그라고 있을끼가? 자자 고마!”
하면서 감기약 나이콜 두 알을 건네주었다. 나는 나이콜을 삼키고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은 눕자마자 코를 곤다. 잠자리가 바뀌면 오랫동안 뒤척이는 나도 너무 편안한 침대 탓인지 나이콜 탓인지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맞춰놓은 알람 소리에 잠이 깨었으나 포근한 침대에서 나오기 싫었다. 오히려 집에서보다 더 편하게 잠을 잔 것 같았다. 아래층에서 도마질하는 소리가 아련하고 경쾌하게 들렸다. 먼 옛날 객지에 살다가 집에 가면 지금처럼 아직도 따뜻한 이불 속에 있을 때 부엌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도마질 소리와 비슷했다. 집에 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안심시켜주는 행복을 만끽하는 기분 좋은 소리였다. 그 푸근하고 따뜻한 과거와 현재를 왕래하고 있는 행복한 순간에 남편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선배님은 부엌에서 일하시는데 새까만 후배는 이불 속에 게으름 피우고… 이거 참 그 학교 위계질서는 완전히 엉망일세!!”
나는 얼른 일어나 침대 정리를 하고 샤워를 하고 거기다 화장까지 하니 남편 왈 “이제는 간이 배 밖까지 나왔구먼.”
그 말을 뒤로하고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부엌을 못 찾아 두리번거리는 내게 선배님 남편 되시는 장로님께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아직도 쌀쌀하니까 슬리퍼를 신으라고 하는데 급하게 부엌으로 들어가자 장로님은 슬리퍼를 부엌까지 직접 갖다주셨다. 목도리를 건네주시며 코트 깃을 여며주시던 친정아버지 생각에 콧등이 찡해 왔다.

두 분께서는 우리가 일어나길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갖고 천천히 식사할 수 있게 빨리 잘 내려왔다고 하신다. 내가 뻔뻔스러운 것인지, 선배님 부부가 우리를 너무 편하게 해 주는 것인지, 우리 부부는 넉살도 좋게 선배님이 진수성찬으로 차려둔 식탁에 앉았다. 아침은 왕처럼 먹으라는 말의 모본이었다. 식탁에는 야채가 많이 들어간 맵지 않은 현미 떡볶이, 두부 요리, 김치 볶음, 토마토와 피망 등 생야채들, 간을 많이 안 하는 것도, 야채를 많이 쓰는 것도, 맵지 않은 것도, 우리 집 음식과 비슷했다. 조그만 냄비에 현미 잡곡밥을 소담하게 맛있게 하신 것은 정말 맛있었다. 기도하고 딸기와 레즈 베리를 먼저 먹는 그 댁의 식사법을 따랐다. 식전 과일을 먼저 먹는 것이 소화와 음식 흡수에 좋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남편이 따라주지 않고 나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아서 흐지부지하게 지나갔는데 이제는 우리도 이렇게 해야겠다. 남편에게도 이제는 새로운 명분이 생겼으니 말이다.

모두 모여앉아 식사를 막 시작했는데 선배님은
“깻잎김치 줄까?”
“아녜요.”
그래도 꺼내 오신다. 한 술 떠시다가
“유초이 김치 있는데…”
“괜찮아요.”
또 일어나서 갖고 오신다. 또 한 술 떠시다가
“조기 구운 것 있는데 줄까?”
“아이고, 제발 됐어요. 이제 식탁에 자리도 없는데요.”
장로님께서
“갖고 오지 묻기는 왜 물어. 나는 있는데 안 갖다주고 묻는 사람 제일 싫더라.”
선배님은 또 일어나서 구운 조기 네 마리를 상에 또 올리셨다. 우리 친정엄마도 저렇게 식사 때 여러 번 일어나서 우리를 챙겨 먹였는데…. 남편은 그중 세 마리를 비늘까지 삽시간에 없애버렸다. 근데 선배님이 또 물었다.
“현미밥 더 줄까?”
“아니요. 진짜 되었어요.”
이번에는 장로님께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현미밥 한 그릇을 고봉으로 퍼 오셨다.
“말보다 행동으로 하라니까.”
두 분의 재미있는 대화가 참 아름답고 귀하게 느껴졌다. 장로님께서 또 말린 무화과, 자두와 견과류를 갖고 오셨다. 우리는 정말 맛있는 아침 식사를 왕처럼 했다.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설거지로 실력 발휘를 하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설거짓감을 옮기는데 장로님이 개수대 앞으로 오셔서 요지부동을 안 하신다.
“원래 이거는 내가 평소에 하는 거니까 여기 오지 말아요.”
“장로님, 제가 잘해요. 제가 할게요.”
“안 돼요. 나도 잘해요.”
우리는 끝까지 염치없게 설거지마저도 장로님께 넘겨버렸다.

남편과 나는 부엌에서 쫓겨나서 집 구경을 했다.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실내 장식이 집주인과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있을 것이 제자리에 있고 정리 정돈이 되어있으면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는 것의 정석을 깨달은 것 같다. 손님도 아닌 우리를 눈에 보이게 안 보이게 이렇게 신경 써서 편하게 해 주시는 두 분이 참 편하고 고맙다. 두 분은 성서대로 살아가려고 노력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다. 성서에서 나그네 대접을 잘하라고 했다. 그래서 손님방을 이렇게 예쁘고 편안하게 꾸며 놓았나 보다. 주변에 멘토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 모본이 되는 귀한 분들이다. 객지에 사는 우리는 친정 다녀온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을 듬뿍 담아왔다. 두고두고 내 추억의 창고에 따뜻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날 선배님 댁 방문에 진짜 큰 소득은 따로 있었다. 나는 맹세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설거짓거리는 그날 이후 완전히 남편의 몫이 되었다. 시청각 교육의 효과가 확실히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어른 주위에서 잘 보고 배우라고 했던가 보다. 남편은 오늘도 내가 아침에 쪼금 잘못 씻어둔 그릇을 내 눈앞에 디밀며 확실하게 내 눈도장을 찍는다. 그러고는 기고만장해서 그 그릇을 다시 유난하게도 뽀독뽀독 씻으며 주저리주저리 길게도 나를 타박한다.
“그러면 선반에 있는 그릇들도 다 꺼내서 다시 닦으시든지. 근데 일 절만 하시지….”
“어째 그건 내가 많이 하던 소리 같은데….”
---「일 절만 하시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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