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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사랑하지 않는다
중고도서

나는 여행을 사랑하지 않는다

: 스물에서 서른, 가슴 뛰는 삶을 위해 떠난 어느 날의 여행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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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458g | 140*210*20mm
ISBN13 9791158773052
ISBN10 115877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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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지난 여행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아무 이유 없이 여행 때 메고 다녔던 배낭의 무게가 사무치게 그리워지곤 했다. 배낭의 무게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계속해서 떠나야 할 이유였다. 배낭에 든 여권과 돈, 옷과 생필품은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었고, 스스로가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곧 나의 숨결이었고, 걸음이었으며, 삶이었다. 배낭은 삶의 무게처럼 무거웠지만 마음만 먹으면 짊어질 수 있는 무게였다. 오히려 배낭의 묵직함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한창 공연을 할 때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고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에 오른 순간 모든 고됨과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무대 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고, 내가 해내야 하는 무대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작품을 올리는 과정은 언제나 그렇듯 고달프고 지난하다. 하지만 고달픈 만큼 달콤하고 황홀하다. 배낭의 무게는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지금 짊어지고 있는 이 가방의 무게만큼이나 다양하게 마주하게 될 감정들은 역시 전부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혼자서 해야 할 것들과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아주 진득하니, 삶을 여행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한 편의 연극처럼 말이다. 막이 올랐다. 다시 한 번, 배낭을 고쳐 메고 걸어보기로 했다.
--- pp.24~26

한바탕 휴식을 취하고 늦은 저녁, 야경을 보러 가기로 했어요. 전철을 탔어요. 잘만 달리던 전철이 멈춰서더니 알 수 없는 말들로 안내 멘트가 나오지 뭐에요. 고장이 났대요. ‘아, 오늘은 안 풀리는 날이구나’ 하고 주저 없이 밖으로 나왔어요. 전망대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찾아보니 트램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내심 겁이 났어요. 아침 같은 일이 또 생기지 않을까 하고요.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 정류장으로 향해봅니다. 다행히 운이 좋았던 건지 아침에는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탔던 트램을 한 번에 탔어요. 그것도 아주 여유로운 좌석에 앉아서,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아침에 뭐 하러 그렇게 탔나 싶다. 그냥 맘 편하게 아무거나 타면 되는 것을. 훨씬 여유롭고 좋네.” 우린 남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은가 봐요. 유명하다고 하는 건 한 번쯤 해봐야 해요. 그 기준에 갇히길 선택한 건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몰라요.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오늘은 아무 데도 안 가면 좀 어때요.
남들이 하는 거 안 하면 좀 어때요.
그냥 앉아서 멍하니 더위나 식히면 좀 어때요.
오늘은 그거면 충분해요. 지금의 여행은.
물론, 며칠이 지난 후엔 또 어딘가를 가겠죠.
그리고 또, 비슷한 상황을 만날 거예요.
이래서 삶을 여행이라고 하나 봐요.
내일은, 버스를 타야겠어요.
왜냐하면, 유명한 에그타르트를 먹으러 멀리 가야 하거든요.
--- pp.154~156

“남미는 힘들지 않고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는 거야?”라며 볼멘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정상에서 보는 풍경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없지. 그래서 우리는 계속 오르는 거야. 사진으로 보는 건 직접 눈에 담는 것만 못해.” 누군가 답했다. 숙소를 나온 지 9시간 만에 정상에 닿았다. 눈앞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큼의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에서의 여행은 매순간이 감탄이다. 궁금했다. 이 깊은 산속에 있는 보물을 누가 제일 처음 발견했는지. 누군가의 노력과 누군가의 의외의 시선과 누군가의 호기심이. 시간의 여백을 타고 흘러 현재의 나에게까지 닿았다.

여행은 늘 그렇다. 시공간을 초월한다. 나를 또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지금 내가 이곳이 있는 이유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눈과 마음에 그리고 카메라에 풍경을 원 없이 담았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돌아가는 버스 안,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기절했다. 그러나 이 순간 모두 알록달록한 무지개 위를 나는 꿈을 꾸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늘 따라 하늘이 유난히 높고 맑다. 오늘은, 조금은 특별한 그래서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이브다.
--- pp.2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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