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카페와 튈리히 공원, 학교 앞 뷔트 쇼몽 공원에서 공연을 준비했다. 연습이 끝나면 친구들과 나른하게 늘어져 책을 펴고 누워 일광욕을 즐겼다. 길거리 연습은 완벽하게 준비된 채 관객과 만나는 시간이 아니다. 미완성 단계에서 연습 과정 자체가 까발려지는 순간이다. 조명이나 무대장치, 의상도 없이 나의 어설픈 실력이 모두 드러난다.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연습하는 순간에는 구경꾼을 의식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앞에 있는 불, 공연 준비를 위한 연습일 뿐이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와 동료들에게 미친 짓을 한다는 손가락질보다 미완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의 질타를 받는 일이 더 두려웠다.
---「놀이터 좀 빌려 쓸게요」중에서
‘Au secour(도와주세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여인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무언가에 쫓기듯 두리번거리는 시선과 함께… ‘뭐지? 누가 나서야 하는 거 아닐까? 축제 기간의 폭력 사건일까?’라고 생각하기엔 이미 익숙해진 극적 장면은 연극 홍보를 위한 거리 공연이었다. 가장 극적인 장면들 또는 흥미로운 부분을 배우들이 반복해서 시현했다. 분장을 한 두세 명의 배우가 공연 팸플릿을 돌리며 극장으로 초청했다. 중심 거리 길바닥에 앉아 홍보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했다. ‘아, 내가 본 사진이 이거였구나.’ 축제의 중심에 내가 서 있음을 실감했다. 온몸으로 축제를 느끼고 즐겼다. 우연히 접한 사진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불씨를 피운 것이다.
---「뜨거운 아비뇽, 한여름 밤의 꿈」중에서
“non, non, non, pas encore, je ne suis pas prete.(아니요. 난 아직 준비가 안 되었어요).” 콰당~
무대 위에 그대로 엎어져 고개를 들고 눈알을 굴렸다. 능청스럽게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 소개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 나의 코미디에 관객들은 박장대소했다. 한국어 인사말을 발음이 비슷한 불어 단어로 바꾸어 어떻게 발음하는지 가르쳐 주고, 따라하게 하자 관객석에서 단체로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갑자기 애국심이 고취되는 듯했다. 모국어인 한국어에 관한 이야기와 무대에서 배우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다. 도입부 말고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원색적이고, 유치한 개그도 섞였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똥 얘기’였던가.
똥 얘기는 어디서나 통하는 이야기임을 알았다. 가족에게만 은밀히 오픈되는 화장실 사정이 무대에서 벌어지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로 어린아이처럼 깔깔 웃는다. 동양에서 온, 그것도 한국에서 온 소녀가 휴지를 엉덩이에 끼고 무대를 뛰어다녔다. 관객 입장에서는 말로만 하는 스탠드업보다 볼거리가 많았을 것 같다. 주어진 12분의 무대가 끝나고 퇴장하는데, 휘파람과 갈채 소리, 앙코르를 외치는 소리에 어리둥절했다. ‘어? 이 정도는 아닌데?’ 사실 말도 안 되는 반응과 과분한 찬사를 받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 무대에 선 이방인 자신들의 언어에 대해 나눈 교감 덕분일 것이다. 고작 1~ 2분 남짓 주고받는 대화 속에 서 짜릿함을 느꼈다. ‘이 사람들이 정말 나에게 집중했구나’라는 희열이 몰려와 꿈을 꾸는 듯했다.
---「무대 오르기 10분 전, ‘주는 빼고 가!’」중에서
티켓 가격이 1,000원이라고 해도 출연 배우가 한 회당 1,000원을 받는 건 아니지만, 입장료 1,000원 정책은 배우와 작품의 자존심 문제와 직결된다. 〈베테랑〉 영화에서 황정민 배우의 대사가 떠올랐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진짜 가오 상하게. 당장 때려쳐!’라는 말을 쉽게 할 수는 없었다. 무대에 서는 게 얼마나 절실한 마음인지 아니까 말이다. 처음 오디션에 붙었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그 후배의 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도 그렇지 1,000원이라니… 물 없이 독한 항생제 가루를 들이킨 듯 씁쓸한 알갱이가 입안에 돌아 다녔다. 차라리 무료 공연이면 배우의 마음이라도 지킬 수 있다. 입장료가 1,000원이면, 관객에게 더도 덜도 아닌 1,000원짜리 가치의 공연인 것이다.
---「나는 1,000원짜리 배우예요」중에서
“여기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바쁜 분들인 줄 압니까? 헌주 씨의 이메일을 받고 설렜습니다. 당신이 궁금해서 이곳까지 왔는데, 이 중요한 만남에 고작 프로필 한 장 들고 온 겁니까?”
결과적으로 빈 수레가 요란했다. 절절하게 써 내려간 편지로 어렵게 얻은 자리였다. 그러나 나는 수레에 아무것도 담아가지 않았다. 그저 무대포 정신 하나만으로 진행한 미팅이었다. 현관을 나서며 ‘그 자리에서 독백이라도 할걸’ 후회해보았지만, 그건 그들도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열정만큼 실력을 갖춘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건강한 태도를 갖춘 배우.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다. 마당을 나서면서 내 어리석음을 탓했다. 부끄러운 나머지 뭐라도 해야 했다. 그날 바로 부랴부랴 개인 독백 영상을 찍었다. 준비 못해간 영상 대신 ‘제가 이 정도는 연기합니다’라는 증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 또한 내 미흡함만 드러낼 뿐이었다. 뜨거운 마음보다 차가운 이성으로 준비된 실력이 필요했다. 붕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이 자리에 고작 프로필 한 장 들고 온 겁니까?」중에서
‘무슨 자격으로? 배우 이야기를 써? 배우의 태도? 고작 몇 작품을 했다고? 단역 배우 주제에!’
이런 질문이 끝없이 밀려왔다. 원고를 쓰는 내내 이런저런 질문이 수시로 떠올라 피로했다. 이미 넘치도록 질문했기에 답도 넘칠 만큼 많았다. 내 그릇이 화려하거나 크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소박하고 담박한 그릇도 필요하다. 배우 모두가 자극적인 맛을 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슴슴한 나물도, 구수한 된장도 필요하다. 개인적인 경험과 이야기를 묶어 원고를 쓰다 보니 연대기적인 느낌의 글이 되었다. 큰 기대를 하신 분들은 실망하겠지만, 진심만은 알아주시기를 바란다.
---「닫는 글(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