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할 수 없었거나 좌절했던 인문학 공부를 여럿이 함께 모여 도전하고, 매일 인문학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습관 만들기를 통해 느리지만 부단히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기에 글을 올린 분들은 각자에게 닥친 현실의 여러 문제를 책과 글쓰기 혹은 자신만의 인문학 소양으로 풀고자 노력한 분들입니다.
--- p.14
단순히 책만 읽는다고 해서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함께 읽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에 대한 태도와 입장을 스스로 정리합니다. 삶의 기준을 만들기 위한 여정은 도전과 좌절의 롤로코스터와 같습니다. 덜컹거리는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출발점에는 언제나 ‘성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p.31
더 많은 여성 작가들이 말할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고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어 우리는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저처럼 자신을 찾고, 친구를 만나고, 치유의 경험을 한 여성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 p.43
심리학책을 읽는 시간은 ‘나를 읽는 시간’입니다. 나를 만나고 이해하는 방법이 꼭 책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리학 책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다양한 관계와 일로, 여가와 취미 혹은 신앙을 통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문학과 그림책, 과학과 철학 등 다른 책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책을 통하게 되면 나를 읽는다는 목적이 조금 더 명료해집니다.
--- p.53
인간만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매일 책을 읽는 행위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입니다. 저는 매일 책을 읽는 것이 내면의 거울을 닦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내면의 거울이 깨끗하면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볼 수 있고, 세상이 좀 더 명료하게 보이면 좀 더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습관 아닐까요?
--- p.66
고전 문학 한 권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탈로 칼비노가 말했듯 고전은 기억의 지층에 켜켜이 쌓여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용암이 분출하듯 튀어나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의 타협을 종용받을 때, 나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결정을 하도록 도와 줍니다.
--- p.75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애를 썼지만 자신을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먼 타향으로 쫓겨난 시인의 마음은 참담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거대한 맷돌 위 개미와 같은 자신의 처지가 안타깝고 무력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이루고 싶은 삶은 오른쪽에 있는 것 같은데, 그곳에 다다르지 못하는 저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더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제 자신이 답답했습니다.
--- p.84
철학자의 이름과 핵심 개념, 거기에다 마음에 새겨 둘 명언 한둘 정도만 기억하면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핵심 개념과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을 화두 삼아 잠시 사색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색의 심정을 짧은 글로 써보는 것입니다. 철학 공부는 나의 정신세계를 철학적 사유의 세계로 물들이는 과정입니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머리로 직접 사유하는 것이고요.
--- p.97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내일 당장 혹은 내년 당장 내 인생이 경로를 이탈해서 새로운 길을 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극적인 독서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갑니다. 저는 지난 5년 동안 책을 열심히 읽었지만, 무슨 인생의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성장하는 느낌 같은 것은 체감하고 있습니다.
--- p.108
인문학이란 것이 어렵고 생소하고 저와 먼 거리에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막연히 ‘문사철(文史哲)’이라고,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임을 운영하면서 꼭 그런 것만이 인문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는 일도 생활 속 작은 인문학입니다.
--- p.119
아이들은 책의 주인공을 통해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안정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경청의 태도와 깊이 읽기의 방법을 배웁니다. 토론회에 참여한 아이들은 학교에서와 달리 다른 친구들이 너무 활발하게 얘기해 놀랐다고도 합니다. 진로를 고민하던 한 학생은 책 한 권으로 진로에 대한 여러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 p.129
짧은 한 문단 쓰기지만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독자 없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버거울지도 모르고 꾸준히 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여럿이 모여 서로의 글을 읽고 반응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나’를 설명하는 언어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게 됩니다.
--- p.143
글쓰기는 두려움에 용감히 맞서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나 자신을 알고, 내 안의 두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무지에 대한 두려움, 관계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이 모두를 글쓰기로 이겨낸다면 그것만큼 의미있는 인문학 공부도 없습니다.
--- p.154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책 읽기와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필사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따라 쓰며 텍스트와 대화하고, 저자와 대화하고,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갑니다. 나아가 자신의 글을 쓰게 되면 마치 내면의 안뜰을 가꾸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필사는 거인의 어깨 위해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 p.165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결국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함입니다. 혹자는 인문학 공부라고 하면 이성적 공부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성 이전에 감성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성이 우선이지 그림의 화풍이며 시대적 배경 이런 것은 그다음입니다.
--- p.175
인문학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저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그냥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테지만, 그림을 그리고 짧은 글을 남기는 것이 저에게는 매일 반복하는 성찰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는 시간은 오롯이 나를 만나는 과정이며 저에게는 인문학 공부입니다.
--- p.186
걷기와 달리기는 몸을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활동입니다. 몸이 규칙성을 알아가는 것은 공부하는 과정과도 동일 합니다. 저는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학당에서의 공부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공부의 규칙성을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달리기와 공부 나아가 인문학 공부가 결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기본에 충실한 상태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 p.198
미디어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먹을 음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은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요즘 인기 높은 반조리 식품만 봐서는 원재료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깨끗하게 정리된 정육 코너를 보면 가축 농장에서 처참하게 사육되는 돼지나 소에 대해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고소한 치킨 프라이와 너겟을 보고 케이지의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닭을 생각하는 이는 드뭅니다. 사실 매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알고나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 p.209
스쳐 지나가던 식물에 눈길 한 번 더 주고, 사진과 글로 변해가는 모습을 꾸준히 기록했을 뿐인데 식물은 저에게 삶의 희로애락을 안겨주었습니다. 때로는 손 꼭 잡고 길을 건너야 하는 막내 동생처럼, 어떤 날은 앞서 걸어가는 든든한 큰 오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중략) 식물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여러분도 꼭 가졌으면 합니다.
--- p.219
진정한 여행은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흔적, 특히 깊은 통찰의 흔적이 배어 있는 장소는 몸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생생한 느낌을 줍니다. 책으로 전해 받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중략) 저는 책에서 머물지 말고 책이 알려주는 장소와 공간으로 직접 다녀보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진짜 인문학 공부에 한 발 더 다가간다고 생각합니다.
---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