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그 대상을 만나면, 거기 그 대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집착이다. 그 다음 그 대상을 자기화(소유)하려고 한다. 이것이 욕망이다. 그러나 이 욕망이 충족될 수 없을 때, 거기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극심한 투쟁력이 생긴다. 이것이 분노다. --- p.46
고요한 연못에 나무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 바람이 불어오면 나무 그림자는 산산조각 부서져 버리고 만다. 고요한 우리의 마음에 분노의 바람이 불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는 미망의 물결이 인다. --- p.47
이 삶을 버리고, 뜨거운 가슴을 버리고 어디 가서 무엇을 얻겠단 말인가. 차라리 이 삶의 한가운데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 나가며 그 일을 통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 p.125
나는 지금 그대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그대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나는 지금 꽃향기를 맡고 있다. 나는 지금 음식을 먹고 있다. 나는 지금 몸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지금 잠자고 있다. 나는 지금 숨 쉬고 있다. 나는 지금 그대와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 두 눈을 뜨고 있다. 나는 지금 두 눈을 감고 있다. --- p.111
‘고요한 것’은 좋다. 그러나 그 고요함이 진정한 고요함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거기 ‘시끄러움’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상대적으로 ‘고요함’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빈 산’만 있다면 이건 고요가 아니라 죽은 적막이다. 그러나 거기 문득 솔방울이 한 개 떨어진다면, 이 솔방울 소리로 하여 이 솔방울 소리 뒤에 오는 고요는 그 깊이를 더하게 되는 것이다. --- pp.285-286
냄새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 냄새가, 땀에 절은 겨드랑이 냄새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고 있는 초월은 결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깊은 산중에 들어가 약초나 캐 먹으며 살아 보라. 이 세상에서 누가 ‘초월한 성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밥걱정 집 걱정 없이 가져다주는 밥 세끼나 먹으며 흰 구름이나 보고 앉아 있어 봐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나 지껄이며 팔을 베고 누워 있어 봐라. 이 세상에서 누가 ‘도사’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