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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182g | 125*200*10mm
ISBN13 9791192333670
ISBN10 1192333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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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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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바람 조께 갔다 와야 쓰것다 웃동네 점빵에 가서 술 한 주준자만 받아 가꼬 오니라 해찰허지 말고 뽀로로허니 갔다 와야 혀 알았쟈

다섯 살 동생하고 웃동네로 막걸리 받으러 가면 주전자 가득 막걸리를 부어 주시던 성낭골 점빵집 할아버지, 어린 아그덜이 춘디 기특하다고 왔다껌 한 개씩을 주시곤 하던 할아버지 수염이 염소 수염맹이로 희고도 검었다

먼 산에서 뻐꾸기 울던 봄날 버들강아지 핀 실개천 새 쑥이 올라오는 언덕배기에서 꼴깍꼴깍 주전자 꼭지를 물고 막걸리를 마셨다 새콤한 맛에 취해 동생이랑 개울가에서 춤을 추며 놀았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들녘 동생이 팔랑거리는 나비 같았다 봄이 개울을 따라 졸졸 흐르던 아득한 날 마신 술만큼 개울물을 채워서 뒷밭으로 갔다

옴마! 뭔 술맛이 물맛이댜? 주준자에 빵꾸가 나번짔댜? 야덜뜰이 맹물로 막걸리를 맹글어 갖고 왔네 옴마! 얄뜰이 술을 먹었는가 보네 하이고 즈가부지 안 탁힜다고 헐깨미 일찌감치 술을 알아서 배웠고만 저 밭두럭 가생이 가서 둘다 엎드려 뻐쳐 옴마! 얄뜰이 대근헝가 보네 시방 자네 자 어어 데걸데걸 궁구네 궁구러

동생은 엄마가 보듬고 나는 아버지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서쪽 하늘이 참 발그란한 저물녘이었다
---「뽀로로-모롱지 설화 19」 전문

야! 이늠아! 구랭이는 업이여
업을 잡아서 묵으먼 벌받는 거여
묵을 게 읎다고 업을 잡아묵냐
성주신이 노하면 집안이 망하는 뱁여
아 그라믄 안 된당게로
당최 그러들 말랑게로

(중략)

불이 지펴진 솥단지 안에서 먹구랭이가 머리를 툭툭 치는 드끼 소두방이 들썩거렸다 동네 삼춘들은 소두방을 손으로 누르며 구랭이가 익기를 기다렸다
하따, 국물 뽀얀허고 지름 자글자글헝 거시 알마침 익었네 올봄 몸보신은 이것으로 때우것다 아따, 이놈 고아 먹으먼 우리 성수님 좋아하시거써 성도 이 말국 잠 먹고 심 좀 써 볼 텨?
국물부텀 쭈욱 디리마셔 양기 보신에는 비얌탕만 한 것이 있드냔 말여? 괴기 흐트러징게 살살 건드려 아! 괴기 흐트러지자녀 옴마? 근디 배가 불룩허니 머시 들어 있다 오매 이기 머셔 쥐새끼네 야가 쥐새끼를 잡아묵었는갑네 아이고 나는 죽어도 거역시러 못 묵것다고 칠성이 삼춘이 손사래를 쳤지만 다들 땀을 뻘뻘 흘려 가며 구랭이탕을 디리마셨다

성주신이 노하실까 싶어 내 또래들은 멀찌감치 서서 귀경만 했는디 뱅노가 침을 꿀떡 생키는 것이 얼칫 보였다
---「먹구렁이 업보-모롱지 설화 21」중에서

어릴 적 우황을 잘못 먹었다는 석찬이 성은 말이 어눌하고 모지라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등치가 크고 시마자구가 장사였다 잘 얘기허다 뻔뜩하먼 뚜디리 팬다고 해서 동네 알뜰이 살살 피했다 그 성이 고사평 열닷마지기 독다리를 지키고 서서 삥을 띧는다고 허니 학교가 끝난 알뜰은 무서워서 전룡리까지 길을 돌아 집으로 갔다

(중략)

어, 거그 오는 거시 누구여?
야, 일루 좀 와 봐라잉

야, 너 몽홀주사 아냐? 그 주사 한 방이먼 확 나서분다는디 발바닥이 너무 아풍게 그려

가까이서 보니 뚱뚱 부은 발바닥이 길게 갈라져 피고름이 흘렀다 재생빙원 가서 몽홀주사 한 방만 맞으면 금방 나슨단디 우리 집은 돈이 없어 그 주사 한 방이면 내 언챙이도 낫게 해 준단디 그 주사 한 방이면 우황 때미 멍충해진 나도 똑똑해질 수 있단디 너는 석골서 공부도 첼로 잘헝게 나중에 크게 되먼 나 몽홀주사 한 방만 노아도라

그러마고 약속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은 없다 그 뒤로 성이 유난히 나를 잘 대해 줬고 석골 알뜰은 영문을 몰라 했다 성은 그해 겨울에 물에 빠져 죽었다 가끔 성이 얘기했던 몽홀주사 생각이 났다

석찬이 성! 성이 얘기했던 몽혼주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크면서 어쩌면 나도 몽혼주사가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 그래서 몽혼주사를 찾아댕겼는지도 몰라 그런 주사는 원래 없는 것이랴 그렁게 인자 잊어 먹어 나도 잊어벌랑게로
---「몽혼주사-모롱지 설화 25」중에서

할아버지와 나는 마롱에 앉아 있었다 어스름하게 어둑발이 내리는 초저녁 무렵, 해가 지고 난 뒤에도 햇살은 잔자락이 남아 있어 사물이 희끗새끗 보일 듯 말 듯한 그날 저녁, 아버지는 모깃불을 놓을 쑥대를 모아 불을 지피고 마당에 멍석을 깔아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어스름을 뒤로하고 불덩이 하나가 텃뵈미 건너 몽실이네 집 지붕을 넘어 저녁 하늘로 날아올랐다 불덩이는 동네를 내려다보듯 잠시 허공에 머물다가 휙허니 우리 집 지붕을 넘어가 버렸다 크기는 농구공만 했고 동그랗고 새까만 덩어리에 노란 불빛이 일렁이는데 꼭 횃불이 잉글거리는 것 같았다

얼래 저 집이 혼불 나간다
저시기 저 널러가는 것 좀 봐라
불빛이 노랜 것이 나이 든 냥반인디
인지 봐라
앞집 으르신이 돌아가셨능개비다

(중략)

동네 어른들은 저녁밥을 먹고 앞집 어르신네로 모여들었다 어르신 큰아들이 지붕 위에 올라 적삼을 흔들며 혼을 불러들였다

가끔 혼불이 잘못 나갈 띠가 있디야 그럴 띠는 저렇게 불러들이면 다시 돌아오기도 혀 아, 하가리 박새완네는 초혼을 헌 뒤로 혼이 다시 와서 돌아간 박새완네 아부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당게로
---「혼불-모롱지 설화 31」중에서

저녁밥을 먹고 나서 모롱지 남자들은 목침이나 수건 하나씩을 들고 갱변 모새바탕으로 나갔다 어짜피 집에 있어 봐야 모구떼만 뎀비고 더우도 피할 요량이다 어른들은 모새바탕 옆 바우 언덕에 옷을 벗어 놓고 앳덜을 데리고 물로 들어가서 모욕을 했다

(중략)

야! 저그 빌똥이다
야! 느그덜 아냐?
저 빌똥을 주서 먹으먼 그르케 쬘깃쬘깃허고 마싯단다
차말여? 그짓꼴 아니고 차말여?
누가 먹으 봤는디?

두룸박시암에서 누이들이 물을 찌클고 모욕을 하느라 키득거리는 소리가 갱변까지 들리는 날도 있었다
---「별똥-모롱지 설화 63」중에서

물에 빠져 죽은 석찬이 성이 물 위로 떠오른 것은 날이 풀리고 냇깔 얼음이 거지반 녹아 가리네 수문 쪽으로 둥둥 떠내려가던 이월 초순 무렵이었다 개학을 해서 학교를 갔다 오던 동네 성들이 섶다리를 건너는디 다리 말목 쪽에 걸쳐 있었다고 했다

석찬이 성이 물에 떠 있는디 꼭 송장시엄 치듯끼 웃덜을 보고 떠 있능 거셔 근디 꼭 산 사램 같드랑게로 폴뚝이랑 넙덕단지를 네 활개 치듯 벌리고 떠 있는디 웃덜보고 꼭 일로 와 일로 와 부르는 것 같았당게로 눈도 안 감고 입도 안 다물고 웃덜을 쳐다보드랑게로

(중략)

그날 저녁 석찬이 성네 아버지는 혼차 성을 거적에 말아 지게에 지고 뒷산을 올랐다 애린것덜이 죽으면 상여가 못 나가고 저르케 지게에 져다 묻는 거셔 동네 사램덜 무섬 주지 말고 해꼬지허지 말라고 엎어서 뉘고 묻는 거셔

누구도 석찬이 성 뫼똥이 어디 있는 줄 모른다 어려서 죽은 애들은 뫼똥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석찬이 형-모롱지 설화 97」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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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올라와 수도권에서 사는 나는 햇수를 세어 보니 고향에서 산 날보다 이제 고향을 떠나 산 지가 더 오래되었다. 그동안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애를 썼는데 단어는 어찌어찌하여 고치게 되었으나 억양만큼은 아직 어쩌지 못하고 있다. 조심조심 이야기하고 있으나 술에 취하면 그 억양이 제대로 뻗어 나온다. 그 말과 그 억양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언어를 잃어버리면 사실 그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표준어라고 일컬어지는 이방의 언어로는 「몽혼주사」의 석찬이 성도, 「혼불」의 풍경도 제대로 보여 줄 길이 없다. 그때의 사람들을 그려 보는 방법은 그때의 언어가 아니면 안 된다.

어디까지가 가족이냐고 물으면 나는 가족 그림을 그려 보라고 한다. 거기에 그릴 수 있는 사람까지가 가족이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부탁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리는 아이가 드물다. 그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족이었다. 동네 사는 형들도 가족이었다. 「연옥분」의 이야기를 읽으면 누군가의 죽음이 내 꿈과 연결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연결된 사람은 수십 년간 만나지 못해도 가족이었다. 꿈속에 찾아온 성님을 보러 마침내 초상에 도착한 연옥분 씨가 업어 키우던 뱅도가 반백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도 가족이었다. 상주보다 더 서러운 울음이 가족을 증명한다.

현대 사회는 가족의 범위가 좁아져서 내 가족은 나밖에 남지 않아서 우리가 외롭게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시집은 색다름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움에 중독된 우리는 우리가 지워 가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부끄러워서 내가 지우고 있었던 사투리로 시인은 그때를 완벽히 복원한다. 이 시집은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리움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시집은 너무나 소중하다.
- 하상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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